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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관순, 에스테르의 공통점
  • 이기우
  • 등록 2020-03-05 11:47:50
  • 수정 2020-03-05 16: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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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간 목요일 (2020.03.05.) : 에스 4,17⑫.17⑭-17⑯.17㉓-17㉕; 마태 7,7-12


▲ (사진출처=천안시 유관순열사기념관)


오늘 독서에서는 에스테르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에스테르의 이름이 본래 히브리식으로는 ‘하닷사(Hadassah)’인데 늘 푸른 떨기를 지니고 자라는 도금양나무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이 나무는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서는 흔하게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이 나무의 꽃이 별과 닮아있어서 유배당하여 살던 페르시아에서는 하닷사라는 이름 대신에 페르시아어로 별을 뜻하는 에스테르라 불리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래한 라틴어는 스텔라가 되고,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 이름 중의 하나인 ‘마리 스텔라’는 바다의 별입니다. 


또, 이 나무는 늘 푸른 상록수여서 지중해성 기후권의 사람들은 불사(不死)의 표징으로 여겨서 신성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사랑과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해서 신전 주위에 심거나 그 꽃으로 만든 화관을 영웅이나 위인에게 씌워주는 등 종교 의식에서 사용하기도 하고 결혼식 날 신부에게 주는 꽃장식은 물론 예술작품에서도 많이 썼습니다. 바빌론 유배 시절 포로생활을 하던 중에도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 있는데, 에스테르와 다니엘이 그들입니다.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페르시아 왕에게 발탁되어서 궁정 관리로서 왕의 꿈을 해몽하는 등 빼어난 역할을 했듯이, 미모와 교양은 물론 신앙도 돈독했던 에스테르도 왕비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습니다. 


왕비로서 에스테르가 하느님께 바친 기도는 매우 절절합니다. 아버지처럼 키워준 모르도카이가 알려준 진실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인데, 간신 하만은 당시 임금 크세르크세스의 왕명이 없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던 유다인들을 몰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차지하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자 앞에 나서는 심정으로 임금 앞에 나아가서 간신 하만의 역모 사실을 알리고 선처를 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에스테르는 임금의 호출 없이 함부로 임금 앞에 나섰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왕령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힘을 믿고 나섰습니다. 그 옛날 이집트에서도 재상 요셉의 초대로 처음 내려갔을 시절에는 손님 대접을 받았었지만 세월이 흐르자 졸지에 노예로 전락했던 히브리 조상들처럼, 이 두 번째 종살이에서 또 어떤 운명이 닥치게 될 줄을 모르는 상황에서 에스테르의 기도는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모든 유다인을 대신해서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백여 년 전 이 땅에서 독립만세운동이 거족적으로 일어났던 무렵에, 페르시아의 에스테르 왕비처럼 민족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기도 바친 인물이 있습니다. 충청도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입니다. 이화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면서 하느님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3.1만세운동의 현장을 서울에서 목격하고는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서 아버지를 설득했고 아버지는 지인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병천(竝川), 목천(木川), 천안(天安), 안성(安城), 진천(鎭川), 청주(淸州) 등지의 교회학교와 유림을 찾아다니면서 음력 3월 1일에 총 궐기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종용하여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전 날 밤 마치 에스테르 왕비가 했듯이 이렇게 기도 바쳤습니다. 


“오 하나님, 이제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원수 왜(倭)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만세운동 중에 일제 헌병에게 체포된 그는 서울로 압송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숱한 고문을 받았으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판정에서 판사에게는, 나는 당당한 대한의 국민이다. 대한 사람인 내가 너희들의 재판을 받을 필요도 없고, 너희가 나를 처벌할 권리도 없다.고 당당하게 외쳤으며, 고문을 당해 손발이 다 헤어진 채로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순국했습니다. 그래서 유관순은 3.1만세운동으로 불붙은 독립혁명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 당시 조선의 인구는 2천 만 명이요 만세를 부르러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원은 그 10분의 1인 2백여 만 명이었는데, 이 2백여 만 명의 만세꾼들은 그 십 년 전에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이고 자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안중근 토마스가 불쏘시개가 되어 민족의 각성에 불을 붙인 횃불과도 같았습니다. 안중근은 조선의 독립만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과 일본 동양삼국이 형제나라처럼 지내는 동양평화의 이상을 이 세 나라 백성들에게 하나의 꿈과 이상으로 심어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 남북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평화와 공존의 아이콘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 위인에게 하느님 사랑의 기운은 이기심을 넘어 겨레 사랑으로 나타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모범 사례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은 황금률인데, 그 최소한은 남이 우리에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우리도 남에게 해 주지 않는 데에서 출발하고 그 최대한은 남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우리가 먼저 남에게 해 주는 데를 지향합니다. 


안중근과 유관순, 에스테르까지도 통하는 기백의 최소공통분모는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이 혼연일체가 되어 사랑의 황금률을 최대한으로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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