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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물, 어떻게 마실 수 있나 - [이신부의 세·빛] 거룩함의 기운이 종교 영역에 갇히지 않는 길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3-27 12:57:42
  • 수정 2020-03-27 12: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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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토요일 (2020.03.28.) : 예레 11,18-20; 요한 7,40-53



오늘 복음은 초막절 축제에 참석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생명의 물에 관해 군중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듣고 난 반응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라던 카파르나움에서의 가르침과 마찬가지로 초막절에서는 목마른 사람을 위한 생명의 물이라고 당신 자신의 신원을 밝히신 것입니다. 빵도 물도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으로 믿는 이들 안에 현존하시게 될 성령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가르침입니다. 성령께서 믿는 이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주실 것이며, 이 이끄심의 길은 공동선을 통해 최고선을 향하는 여정이 될 것이었습니다. 


군중은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갈라져버렸습니다. 개중에는 예수님을 예언자로서 권위를 인정하는 이들이 있었고 심지어 메시아로까지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신들이 갈릴래아에 대해 지니고 있던 편견을 근거로 거짓 예언자로 헐뜯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당대의 권세와 영향력을 행사하던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당시에도 왕실 관리들과 이에 빌붙어 있던 관변 예언자들은 그를 없애버리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탄원하는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빵을 먹거나 생명의 물을 마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최고선이신 하느님을 예배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성체성사에서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는 종교적인 방법이 그 첫 번째입니다.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최고선을 전달하는 길입니다. 그 다음 예언자직과 왕직을 통해 이 최고선이 공동선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의 사회적 역할로서 사도직 활동을 통해 구현될 수 있고, 세상에서는 이를 언론과 정치가 수행합니다. 따라서 최고선과 공동선의 가치와, 그리고 이 가치를 구현하는 행위와 사실들은 중요하고 거룩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거룩함의 기운이 종교의 영역에 갇혀있거나 머물지 않고 세상에로 퍼져나가는 경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현실에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첫째, 거룩함의 기운은 종교에서 시작되지만 세상에로 흘러 나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께서는 군중 한가운데에서 활약하셨습니다. 특히 유다인들이 많이 모이는 초막절 축제에 가셨는데, 이는 힘을 가진 유다인들이 그분을 예의주시하면서 제거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행하신 선택입니다. 이처럼 종교와 그 사도직은 전례와 성당에서 시작하되 사회 현실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에게서 오는 거룩함의 기운을 정작 그 기운이 필요한 이들에게 생명의 빵이나 물처럼 나누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정치나 언론 같은 사회 영역들이 이를 통해 공동선의 가치, 즉 공익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감시해야 합니다. 그들이 공익성에 충실하다면 거룩한 기운을 나누어받은 것이기 때문에 격려해야 하는 것이고, 그들이 공익성을 저버리고 있다면 세상에 타락한 기운을 퍼뜨리는 것이기 때문에 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같이 유다인들의 최고선과 공동선에 간여하고 있는 실세들에 대해 시시비비를 마다하지 않으셨고 실사구시적 태도로 그들이 최고선이신 하느님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가르치시는 한편으로 그들의 공동선이 부실해지지 않도록 수많은 활동과 기적으로 그들을 보살피셨습니다. 


질병이나 장애로 아픈 사람이나 마귀 들린 사람을 돌보아주셨고, 하느님 나라와 참된 행복의 길에 대해 가르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선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한 마디로, 그분의 복음선포는 최고선의 진리를 선포하는 기반 위에 공동선의 진리를 수호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성당의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고답적인 태도로는 예수님을 본받을 수 없습니다. 


셋째, 이 과정에서 교회가 행하는 사도직 활동이 마치 인체의 실핏줄처럼 거룩함과 공익성의 균형과 순환의 통로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성경과 전례에 충실해야 함은 물론이고 세상의 현실에 대해서도 그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예레미야나 예수님께서 겪으셔야 했던 것처럼 세상의 반대와 배척을 받을 수도 있다는 각오도 해야 합니다. 올바로 성경과 전례에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반대와 배척이 일어난다는 것은 역으로 하느님의 거룩한 기운을 전하고 있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십자가를 늘 바라보며 사는 이유이며 무슨 일을 하거나 십자성호로 시작하고 마치는 까닭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오늘 독서와 복음, 특히 예수님의 초막절 처신이 던져주고 있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그런 와중에서도 우리가 견지해야 할 거룩한 변화의 신비입니다. 이스라엘 방방곡곡에 제자들을 파견하셨던 예수님께서 그들의 성공적인 귀환 보고를 들으시고 기뻐하시면서도 그들의 성과보다는 그들의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된 것을 더 기뻐하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기운을 사도직 활동을 통해서 전하려 할 때 그로 인해 이룩된 성과와 업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그 거룩한 변화의 흐름 속에 머물러야지 결코 그 흐름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존재는 활동에 앞서는 것이며, 세상의 위기에서 그 존재는 더욱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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