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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방식, 경제운용방식, 외교방식까지도 변화시켜야” - [이신부의 세·빛] 십자가로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3-31 17:29:24
  • 수정 2020-03-31 17: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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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화요일 (2020.03.31.) : 민수 21,4-9; 요한 8,21-30 


오늘 민수기 21장으로 들은 독서 말씀은 초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 입성의 과정에서 보여준 고사(古事) 한 가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탈출에서 입성까지 이르는 도정에서 거쳐야 했던 일들입니다. 


시나이 광야에서 양식과 물이 부족하여 하느님께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것과, 그래서 진노하신 하느님께서 보내신 불 뱀에 물려 죽은 이들이 많았다는 것, 이 죽음이 불평으로 인한 벌임을 깨달은 백성이 하느님께 사죄하며 모세에게 보속을 청하자 하느님께서 모세를 시켜 불 뱀과 색깔이 비슷한 빨간 구리로 만든 뱀의 형상을 높이 매달아놓고 이를 쳐다보게 함으로써 불평과 불 뱀으로 인한 소동이 가라앉았다는 일이 그 고사입니다. 맹독을 가지고 있는 불 뱀에 물리면 그 독이 퍼져 죽게 됩니다. 민수기는 이 죽음의 배경을 백성의 불평을 들으시고 화가 나신 하느님께서 보내신 벌이라고 해석하고 있는 한편, 높이 매달아 놓은 구리 뱀을 쳐다보면 죽을 병에 걸린 사람들도 낫게 되었다는 처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대중화되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과 이들이 일으키는 질병이 광범위하게 전염되는 경로까지 알게 되면서부터는 병이 돌아도 하느님을 원망하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대유행 사태는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고,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협동적으로 개선하고, 경제운용방식을 인간적으로 혁신하며, 이를 위해 국내 정치와 국제 외교의 방식까지도 서로를 위한 공존과 협동의 방식으로 변화시켜야만 한다는 교훈을 복합적으로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현재 세계보건기구에서도 국제표준으로 채택한 한국형 방역 모델을 적용한 결과로서 얻어진 것입니다. 이 모델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을 통제하거나 강제로 격리하거나 출입국을 막거나 하는 전체주의적 방식이 아니라 자발적 협조를 요청하여 시민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하되, IT기술을 최대한 활용하고, 보건과 일반 행정의 집행력을 집중시키고,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보여줌으로써 세계 각국에서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즉 이 복합 대책은 첫째,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각자가 위생을 철저히 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지만, 일단 이미 퍼진 바이러스 감염자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방역의 위기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 행정력과 의료 시스템이 총동원되어야 대처할 수 있으며, 이러한 대규모 전염병은 또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광역별로 감염병 전문병원을 증설해야 하고 이에 소요되는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실천했던 사회적 거리두기 행태는 또한 소비의 위축과 생산 및 고용의 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어서, 소비 위축으로 타격을 입은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해서는  재해긴급구호와 운영자금 긴급대출 등의 대책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일용 노동자를 비롯하여 광범위한 중산층과 서민층에게 기본소득을 보편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소비를 진작시키는 경기 진작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토지불로소득을 환수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제안도 그래서 시의적절해 보입니다. 경제도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경제윤리의 차원에서, 향후의 경제운용방식 역시 이런 비상사태에도 별 타격을 입지 않는 재벌이나 부유층이 아니라 대다수 경제인구를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제 민주화 대책이 지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이익에만 집착하는 정당, 언론, 종파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어서 또 다른 사회적 거리두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무리들에 대해서는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언론에서는 독자와 시청자들이, 종교에서는 일반 신자들이 심판을 내림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 공동선을 회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 최근 이번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서 화상으로 열린 선진 20개국 정상회의에서는 모든 나라가 지켜나가야 할 목표와 당면과제를 제안하면서 20개국이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한 바 있습니다. 즉, 생명을 보호한다, 사람들의 일자리와 소득을 지킨다, 신뢰를 복원한다, 금융 안정성을 보존한다, 성장세를 되살리고 더 강하게 회복한다, 무역과 글로벌 공급 체인 붕괴를 최소화한다, 지원을 필요로 하는 국가들에게 도움을 제공한다, 공중보건과 금융 조치에 공조한다는 등의 당면과제를 전 세계적인 의제로 부각시킨 것입니다. 


이상 네 가지 대책은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사태를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위기로 인식하고 인류가 지금껏 살아온 생활방식과 양식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지난 25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함께 기도하자고 호소한 일도 모두가 다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현 시기 인류가 직면한 십자가인 셈이고, 이를 연대하고 협동하는 자세로 짊어짐으로써 미래로 나아가자는 뜻을 확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구리 뱀을 보고서 불 뱀의 독으로 인한 병이 나았던 처방처럼 예수님께서도 세상 사람들 눈에 잘 보이도록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께서 비로소 모든 이를 위한 구세주이심이 드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의 처방처럼, 이 바이러스 사태를 인류 공동의 십자가로 인식하고 서로가 함께 힘을 모아 연대하고 협동함으로써 비로소 진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에서 나무 십자가에 높이 매달리시기 전에도, 군중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케리그마의 십자가와 제자들을 사도로 양성하는 디다케의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느님 나라는 십자가로 다가옵니다. 그것이 부활의 새로운 생활양식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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