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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 창립 사제 김병상 몬시뇰 선종
  • 문미정
  • 등록 2020-04-27 17: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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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분의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김병상 몬시뇰(향년 88세)이 지난 25일 오전 00시 05분에 눈을 감았다. 


고 김병상 몬시뇰의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천주교 인천교구 답동 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됐다. 김병상 몬시뇰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동료 사제들과 수도자, 신자들 400여 명이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 ⓒ 문미정


이날 장례미사에서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고 김병상 몬시뇰은 사제 생활 51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일을 지금 여기에서 하셨다”고 말했다. 


사제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삶 전체로 보여주셨다. 


1970, 80년대 정치적·경제적으로 어둠의 시간을 보내던 시기에 예수님 삶을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정의와 진리를 외치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위해 살았다고 김병상 몬시뇰을 기억했다. 


정의구현사제단 활동을 활발히 했던 김병상 몬시뇰을 두고 사람들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투신했고,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력했다고 입을 모았다. 


정신철 주교는 “우리 모두 몬시뇰이 보여준 그 모습을 가슴에 담아 이 시대의 징표를 읽고 시대의 신앙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이 돼야 한다”면서 김병상 몬시뇰이 평소 드렸던 기도문을 낭독했다. 


“주님,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듯이, 

우리 국민도 진보니 수구니 영남이니 호남이니 기득권과 소외계층이니 하면서 갈라지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우리가 하나 되게 해주십시오.


▲ ⓒ 문미정


고 김병상 몬시뇰은 1948년 서울소신학교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 중 폐결핵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다. 1963년 가톨릭신학대에 들어간 김병상 몬시뇰은 1969년 12월 13일 사제수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김병상 몬시뇰은 1977년에 유신헌법 철폐를 요구하는 특별기도회를 주도했다가 구속되기도 했으며, 동일방직 사건 긴급대책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회원으로 정의구현사제단 대표를 맡기도 했으며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인천 지역의 양심적인 지식인 40여명과 만든 ‘목요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3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2세로부터,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성직자에게 붙여지는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한편, 25일 정부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고 김병상 몬시뇰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고 김병상 몬시뇰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또 한 분의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라며 “사목 활동에 늘 따뜻했던 사제이면서, 유신시기부터 길고 긴 민주화의 여정 내내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습니다”라고 그를 기억했다. 


고 김병상 몬시뇰의 장지는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며, 삼우 미사는 29일 오전 11시 하늘의 문 성직자 묘역에서 봉헌된다. 


⑴ 주교좌 성당 : 교구장 주교의 주교좌가 있는 성당. 교구장 주교는 교구 내 어느 본당에서도 머물 수 있지만 특정 본당을 지정해 영구적으로 관할하는데, 이 성당을 주교좌성당이라고 한다. 주교좌 성당은 교구의 중심 본당으로서 주교가 직접 관할하며 미사도 집전한다. (천주교 용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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