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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믿음과 그 선택이 이르는 길 - [이신부의 세·빛] 스테파노와 바오로, 생명의 빵을 먹은 사람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4-28 12:24:34
  • 수정 2020-04-28 12: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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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화요일 (2020.04.28.) : 사도 7,51-8,1ㄱ; 요한 6,30-35



오늘 독서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역사 초창기에 생명의 빵을 먹고 부활에 참여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한 사람인 스테파노는 순교자로, 또 다른 한 사람인 사울은 그 순교자를 처형하는 데 찬동하는 박해자로 등장합니다. 


스테파노와 사울은 다 같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운 동창생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아기 예수님을 축복해 드린 바 있었던 노예언자 시메온의 아들이며, 온건하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율법 해석의 학풍을 세운 힐렐의 손자로서 당대의 유명한 율법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스승 아래에서 같은 학풍으로 율법을 배웠을 두 사람은 상당히 대조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스테파노는 예수님을 알게 되자 율법 학자의 길을 떠나서 부제가 된 후 사도단 안에서도 돋보일 정도로 복음선포의 선명한 노선을 걸었고, 사울은 힐렐 학파의 학풍보다는 샴마이 학파의 엄격한 학풍에 더 기울었던지 예수님을 거짓 예언자로 보는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열성적이었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이 똑같았지만, 스테파노는 예수님의 복음에 그 열성을 불태운 반면에 사울은 율법을 엄격히 고수하는 데 그 열성을 불태웠습니다. 따라서 스테파노가 복음적 열성 때문에 유다교 권력층의 미움을 받아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는 처형을 당할 때에도 사울은 그 처형에 찬동 하고 있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함께 율법을 배웠던 이 두 제자의 엇갈린 운명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개입하셔서 극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스테파노는 순교하면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승천하신 그분을 돕는 천사가 되었을테지요. 그 후 그로 말미암아 닥친 박해의 후폭풍에 따라 신자들이 북쪽으로 흩어졌는데, 이 신자들을 체포하려고 나섰던 사울을 예수님께서 벼락으로 가로막으셨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벼락을 맞고 번개 빛에 눈이 멀게 된 사울은 더 이상 박해자 노릇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마스쿠스에 살던 신자 하나니아스에게 나타나시어 사울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안수 기도를 하게 해 주고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천상에서 스테파노의 영을 받아 주신 예수님께서 그의 영을 시켜 작전을 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바오로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을 로마식으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사울’이라는 이름이 뜻했던 과거의 바오로는 율법에 대한 열성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동창생인 스테파노까지 포함하여 미워하던 박해자였고, ‘바오로’라는 이름이 뜻하는 미래의 사울은 과거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최초 임금이 된 사울 왕처럼 그리스도교를 서방 세계에 전파하는 최초의 선교사가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울의 박해 일정에 극적으로 개입하신 예수님의 섭리는 대조적인 것 같이 보이던 두 인물의 운명을 연속적으로 부합시키셨다는 데 있습니다. 즉 선교사가 된 바오로는 처형당하기 이전의 스테파노를 방불케 하는 열성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 바오로는 부활한 스테파노로 착각할 만큼 그 복음적 열성이 기성의 사도들을 뛰어 넘었습니다. 스테파노의 영이 바오로의 선교활동에 깊숙이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스테파노는 이방 지역 출신 과부들이 소외당하지 않도록 부제로 선출되어 초대교회를 복음적 공동체로 변모시켰으며, 바오로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하여 소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으로 선교여행을 20여 년 동안 다녔습니다. 


스테파노는 성전 이데올로기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왜곡하는 사두가이들에게 맞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야말로 참된 성전임을 설파하여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신자가 되기 위해서 굳이 유다식의 할례를 받음으로써 정신적 굴레를 당하지 않고 자유로이 복음을 섬길 수 있게 함으로써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의 한 신흥 교파로 전락하지 않고 보편적인 교회로 나아갈 수 있는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스테파노는 돌에 맞아 죽는 처형을 당하면서도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고 죽는 순간에도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남김으로써 모든 순교자들은 물론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선종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오로는 가난한 이방인 신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손수 노동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발적 가난의 표양을 후대의 모든 사도들과 선교사들에게 보여주는 귀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테파노와 바오로 모두,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는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의 빵이요 생명의 물이신 예수님의 영을 받아먹고 마시는 삶의 교과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복음에서 들으신 대로, 예수님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빵이요 생명의 물이심을 확신시켜 줌으로써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에 따라 사는 이는 결코 사랑에 배고프지 않고 사랑에 목마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스테파노에게서는 인간의 믿음과 이에 따른 선택의 중요성을, 바오로에게서는 그 믿음과 선택을 이끄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봅니다. 또한 천상에서 영적 존재가 되어 할 수 있는 역할은 지상에서의 운명을 바꾸어놓기도 하고, 이 뒤바뀐 운명을 통하여 인간이 보지 못한 잠재적 가능성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활짝 꽃피우게 할 수 있음을 봅니다. 생명을 주시는 빵을 먹고 물을 마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현실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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