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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시기, 그리스도교에 주어진 과제 -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 - “교회 경계 넓히는 법을 배워야할 때”
  • 끌로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5-06 14:56:09
  • 수정 2020-05-08 15: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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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4월 8일 < choisir >에 게재된 토마시 할리크(Tomáš Halík) 사제의 칼럼 번역이다. 


1948년생인 할리크 신부는 중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프라하 카렐 대학교(Universzita Karlova v Praze) 사회학 교수다. 체코 그리스도교 학술원 의장이기도 한 할리크 신부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군부 독재 시절 비밀리에 사제서품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할리크 신부는 체코의 ‘지하교회’를 이끌기도 했다.


▲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천주교는 정부 지침에 따라 미사를 중단했으며, 지난 4월 23일부터 미사를 재개했다. ⓒ 문미정


세계가 병들었다. 코로나19(COVID-19) 판데믹 뿐 아니라 오늘날 세계적 현상에서 드러나는 우리 문명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의 용어로 말하자면 ‘시대의 징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그리스도교와 신학에게 어떤 도전을 의미할까. 


지난해, 부활 직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탔다. 그리고 올해 사순 시기 동안 여러 대륙에서 수천 개의 교회와 유대교 사원, 이슬람교 사원에서는 종교 예식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제이자 신학자로서 나는 비어 있거나 폐쇄된 이 교회들을 보며 하느님의 표징이자 해결과제를 발견했다. 공포를 뛰어넘는 근본적인 개혁의 시기가 온 것은 아닌가? 


이렇게 특이한 사순 시기 초반에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중단된 사회적 기능이 어떤 방식으로든 극복되어 모든 것이 제자리로, 즉 예전처럼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또, 그렇게 되어 좋을 일도 없다. 이러한 전 세계적 체험 이후 세상은 전과 같이 않을 것이며, 분명 그렇게 되서도 안 될 것이다. 


대형 재난 때에는 생존하기 위한 물질적인 필요를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이러한 충격이 가진 더 깊은 함의를 검토해볼 때가 온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세계화는 절정에 달한 것처럼 보인다. 전 세계의 전반적 취약성이 눈에 띈다. 이러한 상황은 그리스도교, 보편교회 그리고 신학에 있어 어떤 과제를 상징하는가?


교회, 야전병원·면역체계·용서와 회복 역할 맡아야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했다. 이 은유를 통해 교황은 보편교회가 화려한 고립에 머물 것이 아니라 자기 경계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물리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곳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편교회가 ‘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교회가 역사의 초창기부터 제공해온 보건서비스, 사회서비스, 봉사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좋은 병원으로서 보편교회는 다른 업무도 수행해야 한다.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찾아내며 수행하는 진단의 역할도 해야 한다. 공포, 증오, 포퓰리즘과 국가주의라는 악랄한 세균이 암약하는 사회에서 ‘면역체계’를 만드는 예방의 역할도 해야 한다. 또, 용서를 통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회복의 역할도 있다.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영적 식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러한 식별을 위해서는 관상을 통해 우리의 격앙된 감정과 편견, 공포와 욕망의 투사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재난의 순간에는 ‘복수를 일삼는 악한 하느님의 비밀요원들’이 공포를 퍼트린다. 이들은 공포를 자신들의 종교적 자산으로 삼는다. 수 세기 동안 이들이 하느님을 바라보는 방식은 무신론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하느님을 사건의 배후에 편히 앉아 있는 고약한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연대와 편견 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이들에게 작용하는 힘의 원천이라고 본다. 설령 그들의 행동에 ‘종교적인 동기’가 없다한들 그렇다. 하느님은 겸손하고 조용한 사랑이시다.


한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장이 열리는 그리스도교  


텅 비고 폐쇄된 교회의 시대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조만간에 벌어질 수도 있을만한 일을 경고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몇 년 후 세상의 많은 부분이 이처럼 변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점점 더 많은 교회, 수도원, 신학교가 비어가고 문을 닫는 경고를 받지 않았던가? 어째서 우리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시기가 끝나고 새로운 장을 준비할 시간이라고 이해하지 않고 이러한 변화를 (‘세속의 쓰나미’라며) 외부의 영향이라고 탓했던가?


교회 건물이 텅 비어버린 이 시기는 어쩌면 교회의 숨겨져 있던 공허를, 교회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진중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맞이할 미래를 드러낸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려고만 했지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화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중세 교회가 처벌로서 금기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이러한 교회 제도의 ‘총파업’이 종교 예식이 더 이상 이뤄지지 않으며 성사가 더 이상 집전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때, 사람들은 점차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즉 ‘날것의 신앙’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평신도 재속회와 신비주의가 늘어갔다. 이러한 신비주의의 도약은 확실히 종교개혁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 때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뿐 아니라 예수회와 스페인 신비주의와 관련된 가톨릭교회의 개혁이기도 하다. 아마 관상의 발견은 새로운 개혁 공의회를 향한 ‘공동합의적 여정’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공공 종교예식이 금지된 이 시기에 온라인 대체물 형태로 주어진 단순한 해결책이 어떻게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폴란드, 아시아, 아프리카의 창고에서 교회 제도를 위해 ‘대체품’을 수입하여 진정 유럽의 사제 부족 문제에 대처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카이로스(kairos), 즉 잠시 멈추어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깊이 숙고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긴급 상황’은 보편교회의 새로운 얼굴을 드러내준다.


우리 본당, 신자, 대중운동과 수도원은 유럽 대학을 탄생시킨 이상에 가까워져야 한다. 학생과 교수의 공동체이며, 자유로운 토론과 깊은 관상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지혜의 학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은 영적 존재, 대화하는 작은 존재들은 병든 세상을 치유하는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황 선출 전날 베르골료 추기경은 예수께서 문 앞에 서시어 문을 두드리는 요한묵시록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오늘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며, 밖으로 나가고자 하신다’. 아마도 이것이 그분께서 하신 일일 것이다. 


오늘날의 갈릴레아는 어디인가


수 년 전부터 나는 ‘하느님의 죽음’을 선포한 ‘광인’에 관한 니체의 유명한 글을 묵상해왔다. 그리스도교 역사의 장은 광인이 교회로 가서 ‘신의 영원 진혼곡’(Requiem aeternam deo)을 부르고 ‘이 교회는 하느님의 무덤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때 막을 내린다. 오랫동안 교회의 여러 측면들은 돌아가신 하느님의 차갑고 화려한 무덤으로 보였다. 교회의 텅 빈 모습이 텅 빈 무덤을 연상케 한다면, 위에서 들려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자.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레아에 가계신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오늘날의 갈릴레아는 어디에 있는가?


전 세계 ‘찾는 자’의 수는 ‘머무는 자’(종교의 고전적 형태를 따르는 이들과 교조적인 무신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수와 반비례로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종교 문제나 기존의 답변을 조롱하는 ‘무공감자’의 수도 늘고 있다. 핵심 분기점은 더 이상 자신을 신자라고 여기는 사람들과 신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지 않다. 신자와 마찬가지로 비신자들 사이에도 ‘찾는 자’(이들에게 신앙은 ‘유산’이 아니라 ‘길’이다)가 있다는 것이며, 이 비신자들은 자기 주변 사람들이 제안한 종교 원칙을 거부하면서도 의미에 대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바로 그곳이 오늘날의 갈릴레아인 것이다.


해방신학은 우리에게 사회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찾으라고 가르쳤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소외받은 사람들, 즉 ‘우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이들과 예수의 제자로서 연결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과거의 개념을 상당수 포기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죽음의 경험을 통해 근본적으로 변화하셨다.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의 친지들마저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소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분의 상처를 계속해서 만지고자 애써야 한다. 게다가, 세상의 상처와 교회의 상처, 그분께서 몸에 새기신 육신의 상처 말고 어디에서 이러한 상처를 만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개종주의적인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찾는 자'들을 하루 빨리 ‘개종’시켜 우리 교회의 제도적, 정신적 한계 안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어린 양’을 당대의 유대교로 다시 데려가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전통이라는 보물창고 안에서 새 것과 오래된 것을 취하여 이를 대화시키고 양측에서 모두 배움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이해의 경계를 넓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고결하게 ‘착한 사람들의 왕국’을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주님께서는 이미 ‘안에서부터’ 문을 두드리시어 밖으로 나오셨고, 이제 그분을 찾고 따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인에 대한 공포로 우리가 잠가 놓은 그 문을 넘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둘러싼 벽을 넘으셨다. 그분은 어지러울 정도의 규모와 크기를 가진 공간을 여셨다.


세상 속에서 ‘더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한’ 기회


유대인과 이교도의 초대교회는 예수께서 기도하고 제자들을 가르치셨던 사원의 붕괴를 경험했다. 당대의 유대인들은 용감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이들은 무너진 사원의 제대를 가족 식탁으로 대체하고, 희생제물을 바치는 관습을 개인과 공동체가 기도하는 관습으로 대체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와 피의 희생을 ‘입술의 희생’으로 대체했다. 바로 성경의 묵상, 찬양, 연구로 대체한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초대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사원에서 쫓겨나 자체적인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전통의 잔해 위에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바닥에서부터 율법과 예언을 읽는 법과 이를 다시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도 같은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도, 어디에 없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정교회 신학자 에브도키모브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교회일치를 확장하여 더욱 과감하게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찾을’ 시기가 온 것이다.


물론 우리는 텅 비고 침묵에 잠긴 이 교회들을 곧 잊혀 지게 될 일시적인 조치 따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카이로스로, 우리 눈앞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더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한’ 기회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계신 예수를 찾지 말자. 과감하고 집요하게 그분을 찾고, 그분이 우리에게 이방인으로 나타나더라도 놀라지 말자.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을 거실 때 그분의 상처와 목소리에서 그분을 알아볼 것이요, 평화를 가져오고 공포를 물리치는 성령에서 그분을 알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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