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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게 공부'인 나라에서
  • 전순란
  • 등록 2015-06-30 10:21:47
  • 수정 2015-06-30 10: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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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7일 토요일, 맑고 한 때 소나기


새벽부터 두 꼬마를 채근하는 어멈의 목소리가 바쁘다. 화장실 변기에 올라앉는 발판을 굳이 엄마가 가져다 달라고 떼를 쓰던 시우가 “그러다간 기차 놓치겠다.”는 엄마 말에 즉각 떼를 멈춘다. “8시 27분에 전차를 타야 하는데 20분까지는 나가야 해요. 늦을 것 같아요. 어른들이면 뛸 수도 있지만 애들은 힘들죠.”


하지만 엄마 말이 틀렸다는 게 집을 나서자마자 두 사내는 앞에서 뛰고 두 여자는 따라가느라 헐떡인다. 아이들은 도망가는 사슴새끼라면 할머니와 엄마는 좇아가느라 정신없는 사냥꾼이다.



제네바 중앙역에서 루체른까지 기차로 가서 골도행 기차를 갈아타고 어느 동물원엘 가는 길이다. 빵기가 슈퍼 ‘미그로’에서 티켓이 당첨되어 어른 두 명과 아이 두 명의 기차표와 동물원 입장권이 생겼고 오늘이 그 지정일이다. 아빠는 버마와 인도네시아에 출장 중. 할아버지는 집에 남아서 아우구스티누스 작업 중. 할머니와 엄마가 어른 몫을, 시아와 시우가 아이 몫으로 가는 길이다.


제네바에서 왕복(완행열차) 무려 7시간의 거리이지만 2층짜리 기차 이층 칸에 올라타니 경치구경이 좋았다. 어른들은 레만호수와 원경을 구경하고 아이들은 차내의 놀이터에서 노느라 수선스럽다. “위험해!” “얌전히 좀 앉아 있어!” “다치겠다.” 등의 부모들 경고음이 울리기는 하지만 유아원 교실 같은 분위기여서 유쾌한 여행이었다.



골도 역에 내려 10여분 걸어가니 동물원이 나왔다. 입구에서 애들에게 모자와 물통을 하나씩 나눠주고 중간에는 보디페인팅 해 주는 곳도 있어 여아들은 얼굴 전체에 베니스 가면을 그리는데 우리 집 두 사내애는 도통 관심이 없다.


시우는 연신 “난, 젤 무서운 동물을 볼 거야. 사자, 곰, 코끼리..”라고 다짐하는데 거기서 제일 무서워 보이는 건 곰이고, 청개구리가 구경거리가 되고... 그러니까 스위스의 산야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모여 어린이들과 함께 노는 놀이터였다. 말하자면 '하이디네 동네'였다. 염소는 관람객들 사이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끊임없이 꽁무니에서 콩장을 쏟아내서 어린이들을 웃겼다.


악어 대신 도마뱀, 코뿔소 대신 멧돼지, 코끼리 대신 사슴, 기린 대신 순록, 호랑이 대신 고양이, 사자 대신 산양, 타조 대신 오리, 낙타 대신 염소, 아마존의 기이한 새들 대신에 물에서 노는 고니가 전부였으니 엄마 아빠랑 하는 나들이가 목적이 아니라면 아이들에게도 좀 ‘뻘진’ 여행이었으리라.





게다가 중간에 두 번이나 소나기가 쏟아져 모든 관람객들이 생쥐처럼 젖어서 식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두어 시간 돌아다니더니만 애들 입에서 “집에 가자”는 합창이 나온다. 볼만한 동물도 없고 비는 쏟아지고 기차 안에서 실컷 놀아선지 놀이기구에도 흥미를 안 보였다.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는데 시우가 먼저 고르고 시아가 다음에 큰 콘을 고르자 그걸로 바꿔달라며 시우가 한바탕 통곡을 하고, “네 것 먹으면 아이스티를 사주마.”고 했더니만 울음을 멈춘다. 그러던 떼쟁이가 기차역에서는 모자를 흔들어가면서 “여자! 여자! 여자!‘라는 노랠 불러대고 춤을 추어 아프리카 친구들까지 쳐다보면 깔깔거리게 만들었다.


시우는 소리도 없고 사람들의 표정을 늘 살피며, 동생을 골려줄 적에도 소리 소문 없이 은근슬쩍 골탕을 먹여 아이가 울음을 터뜨려야만 사건의 전말을 눈치 채게 만들면서도 시침을 뚝 뗀다. 조용한 것은 어미를 닮았고 나머지는 빵기 그대로다. 동물원 구경은 재미없었지만 오가는 기차에 설치된 놀이터가 애들을 심심치 않고 지루하지 않게 만든 여행이었다.



어제는 학교가 끝나고 행진을 하고, 오늘은 엄마랑 할머니랑 동물원을 구경하고, 월요일에는 시아가 1주일간의 여름 캠프를 간다니 정말 이곳 아이들은 “노는 게 공부”라는 말 그대로다. 사회에서도 회사에서도 직장에서도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생각이 경영자들의 철학일 게다.


방학을 맞아도 학원으로, 태권도장과 음악수업으로 아이들을 뺑뺑이 돌리는 한국 엄마들... 청년이 되어서도 청춘을 구가하기는 고사하고 특강으로, 고시원으로, 스펙 쌓기로 돈을 쓰는 도회지... 거리에서 도대체 아이들을 볼 수 없는 나라... 전철 안의 남녀노소가 모조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회... 그것은 '죽음의 도시', ‘회색 도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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