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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우리집 소장, 고인 마지막길에 정중히 예의를 다하자 - "손영미 엘리사벳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합니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6-09 16:10:29
  • 수정 2020-06-09 16: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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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손영미 소장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다음은 9일 오전, 신촌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서 봉헌된 입관 후 미사 가운데 이기우 신부가 전한 강론입니다. - 편집자 주  


▲ 1272차 수요집회 참석 중인 손영미 소장(이용수 할머니 오른편)

지금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쉼터 ‘평화의 우리집’ 소장으로서 할머니들 곁을 지켜 오시다가 현충일이던 지난 6월 6일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손영미 엘리사벳을 위한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비통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슬픔에 잠겨 계실 유족들과, 위안부 운동을 함께 해 오신 동지 여러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인께서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쉼터 ‘평화의 우리집’ 일을 도맡아오셨습니다. 고인은 개인의 삶은 뒤로 한 채 할머니들의 건강과 안위를 우선시하며 늘 함께 지내오셨습니다. 요즘 같이 초고령화 시대에는 어느 집안에나 나이가 8,90대에 접어드신 노부모님을 계시기 마련입니다. 친자식들도 노령에 접어드신 부모님들을 수발하는 일은 다들 어려워합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잡혀가서 성노예로 인권을 짓밟혔던 할머니들을 모시고 사는 일은 그분들이 겪어야 했던 그 불행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기 마련이라서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손영미 엘리사벳 소장께서는 박봉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일을 기꺼이 도맡아서, 기쁜 날에는 할머니들과 함께 웃고, 슬픈 날에는 할머니들을 위로하며 그렇게 할머니들의 동지이자 벗으로 그리고 딸처럼 살아오셨습니다. 그 세월이 자그만치 16년입니다. 


자기 부모도 아닌데 군소리 하나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들 똥오줌을 치우고 씻겨드리고 갖은 수발에다가 간병수발까지 다 하셨습니다. 알뜰살뜰 쉼터를 운영하면서도 할머니들 앞으로 나오는 지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모아드리려고 혼자서 온갖 궁리를 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정성들여 모셔보아도 할머니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때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난 가족과 친척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남은 지원금이 없나 탐을 내고 혹시라도 흘린 것은 없는지 손영미 소장을 닥달하다가 사라지곤 하는 얄미운 세태를 묵묵히 참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뒤치닥거리만 해야 했던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들께서 혼자서 이동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손영미 소장은 수족처럼 부축해 드리며 수요시위에 모시고 다니셨습니다. 말이 좋아 소장이고 활동가인 것이지 손영미 소장은 부엌데기 같은 삶을 자처하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이 인권활동가가 되어 일제의 악다구니와 싸울 수 있었고, 정의기억연대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의 이름으로 발표된 부고 성명에 따르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함께 생활하시던 길원옥 할머니의 건강만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심성이 맑은 분이셨고, 정성과 헌신으로 언제나 자신보다 할머니들이 우선이셨던 분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단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만 책임지셨던 것이 아니라 이분들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씻고 인권운동가로 당당히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박사학위 과정까지 밟으셨을 정도로 손 엘리사벳의 관심은 넓고 컸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남은 동지들과 후배들이 이어받아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고인의 갑작스런 죽음과 관련하여 더욱 중요한 사실은, 최근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검찰이 급작스럽게  ‘평화의 우리집’을 압수수색한 이후에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다며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을 호소하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취재경쟁을 과도하게 벌이던 기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밤낮으로 전화를 걸어오고, 심지어 유튜버를 자처하는 자들까지 수시로 찾아와서 초인종을 누르고 카메라 플레쉬를 터뜨리는 바람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항상 밝게 웃으시던 고인은 쉼터 밖을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자기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듯한 상황에 놓이셨다는 겁니다. 이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검찰과 언론과 보수 유튜버들에 의해 죄인처럼 취급되었고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압박을 당하여 죽음을 강요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과잉 취재로 인한 사회적 죽임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고,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이 같은 보도 살인이 일어난다면 시민들이 그 같은 일에 책임이 있는 언론종사자들을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어제 이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신 대로,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는 반인류적 전쟁 범죄를 근절시키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여성의 인권과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었으며,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손 엘리사벳의 억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성노예로 고통받은 할머니들을 모시고 명예롭게 살아온 고인의 마지막 길에서 정중하게 예의를 다하겠다는 정의기억연대와 입장을 함께 하면서,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신앙에 걸맞게 의롭게 살다가 뜻밖에도 갑작스럽게 생을 마쳐야 했던 고 손영미 엘리사벳의 고귀한 삶에 대하여 우리도 가톨릭교회의 예식으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께서 고인의 영혼을 인자로이 받아들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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