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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한 사람들 - [이신부의 세·빛] 교우촌의 숨은 주역들이 증거한 신앙질서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7-10 16:21:56
  • 수정 2020-07-10 16: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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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2020.7.11.) : 이사 6,1-8; 마태 10,24-33



오늘은 서방 교회에 수도생활의 규칙을 확립한 일로 공헌한 성 베네딕토 아빠스의 기념일입니다. 독수자로 사막에 숨어 살던 은수생활에서 처음 그 형태가 나타났다가, 위험을 피하고 생활의 최소한의 편리를 추구하고자 모여 살던 공주 생활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공동생활의 수도생활 형태가 나타나기까지에는 베네딕토의 공헌이 컸습니다. 그가 직접 수도원을 설립하여 검증해 가며 확립한 규칙으로 교황청의 공인과 함께 온 교회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출현한 다른 수도원들과 함께 수도생활은 유럽 대륙과 서방교회의 스승 노릇을 했습니다. 그만큼 표준화된 질서가 중요합니다. 


조선 천주교회에 수도원이 진출한 때는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개항기 이후입니다. 따라서 그전까지는 천주교 신자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서 동정부부 같은 독특한 형태도 생겨나기까지 했습니다만, 일반 신자들에게 교우촌은 평신도들의 수도원 같은 역할을 냈습니다. 교우촌 신자들은 공소회장 댁이나 상대적으로 큰 방이 있는 집에 함께 모여서 아침 저녁 기도를 바치고, 주일이 되면 공소예절을 했으며, 예비자나 어린이들을 위한 교리교육이나 초상이 나면 연도를 바치곤 하는 신앙질서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박해시대 교우촌 신자들의 생활을 실화에 입각해서 소설로 만든 이가 있었으니, 그가 윤의병 신부이고, 그 작품은 숨은 꽃이라는 이름의 ‘은화’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소설로서, 1939년부터 1950년까지 경향잡지에 연재되었으며 병인박해를 배경으로 한 군난소설입니다. 군난(窘難)이란 천주교 박해시대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의 자유를 얻은 조선 천주교회가 1925년에 79위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식을 계기로 하여 선조들의 순교와 박해 시절 신앙생활에 대한 자부심으로 교우촌의 기억을 되살려주고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은 충청북도 진천에 소재하고 있었던 열두 교우촌으로서, 지거머리, 황새울, 명심이골, 절골, 정삼이골, 솟골, 대명골, 삼박골, 산석골, 용진골, 모니 그리고 배티였습니다. 이 군난소설 ‘은화’는 마치 숨은 꽃처럼 외진 교우촌에 살던 천주교 신자들의 애환과 희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앙질서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소공동체 운동과 평신도들의 사도직 활동에 주는 메시지도 분명합니다. 


첫째, 김대건과 최양업 그리고 시복시성 되신 순교자들이 모두 교우촌에서 배출된 신앙인들입니다. 오늘날 이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이 복자품과 성인품 그리고 가경자로 선포되고 있는 데에서도 확인되듯이, 신앙은 최고의 가치로서 삶에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난 주일에 한국 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로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리는 미사를 봉헌한 뜻이었습니다. 


둘째, 교우촌은 박해시대에 형성되었고 이는 천주교 신앙이 당시의 시대적 징표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사회적인 선택을 한 결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교우촌이 생겨나기까지 사회악으로 가득 찬 시대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었던 선각자들이 천진암 강학회에서 준비를 하여 신앙 공동체를 시작했고, 기복신앙이 아니라 서적을 통한 지성적 노력의 산물로 신앙운동이 퍼져나간 결과가 교우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교우촌의 신자들은 왜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가 분명하고 뚜렷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교우촌은 신분차별적인 사상과 폐쇄적인 국가운영에 저항해서 평화적인 방식으로 진리를 추구하여 그 진리를 사회적 규범인 헌법에 반영시킨 역사적 사례였고, 부패하고 사악한 기성사회와는 분명하게 대조적인 작은 사회로서 신앙을 일상의 생활이나 활동에서도 관철했던 공동체였으며, 여기서 보전되고 증거된 가치와 의미를 사회적으로도 구현하고자 지향했던 사회적 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넷째, 비록 박해시절에 천주교 신자들은 한문을 배울 사정이 되지 못해서 당시 세상의 교양을 갖출 여력도 없었지만 천진암 강학회 출신의 선각자 선비들과 최양업 신부 등이 마련해 놓은 교리서와 천주가사 등으로 정신 무장과 영성 교양을 튼튼히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천주교 신앙을 당시 조선 사회 현실에 학문적이고 실천적으로 적용하고자 정약용이 쓴 여유당 전서 중에 경세유표는 복음적 경제질서를 기술한 그 내용으로 말미암아 동학교도들의 혁명 교과서 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섯째, 이러한 사회의식과 실천의지로 말미암아 황사영, 안중근 같은 신앙인들은 시대를 앞서간 발언과 행동으로 일부의 지탄을 받기도 했었지만 이들의 행적에 대한 정당성 논란은 결과적으로 현재의 가톨릭 신앙인들의 신앙의식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주고 신앙적 가치를 현실에 반영하고자 하는 실천의지를 더욱 더 북돋아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상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수도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신앙인들의 수호자로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공경하면서 지녀야 할 바를 한 주간 동안 살펴보았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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