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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과 ‘관상’을 조화롭게 실천하는 신앙인들이 필요하다 - [이신부의 세·빛] 마르타를 위한 변명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7-29 14:27:25
  • 수정 2020-07-29 14: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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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르타 기념일(2020.7.29.) : 1요한 4,7-16; 루카 10,38-42 



오늘은 성녀 마르타 기념일입니다. 마르타는 라자로의 동생이자 마리아의 언니로서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타니아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로 갈릴레아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활동에서 지치실 때마다 라자로의 집에 머물면서 제자들과 함께 쉬어가곤 하셨습니다. 생의 마지막 주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도 이 집에서 머무셨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동행하던 부인들도 있었으니 열댓 명에 이르는 그분 일행을 대접하는 일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마르타의 수고로운 몫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으로서는 가는 곳마다 군중에게 환영을 받으시기는 했으나 주로 그들이 받았거나 받으리라고 기대하는 혜택 때문에 받으신 환영이었지 그분의 말씀 때문은 아니었기에, 당신의 말씀을 들어주고 알아듣고 영에 의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말벗도 필요하셨습니다. 다행히 그 몫을 마리아가 해 주었습니다. 


루카가 기록한 두 자매의 이야기 속에는 예수님 일행을 수발하느라 분주했던 마르타가 그분 발치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기만 하던 마리아의 몫을 질시하는 듯한 대화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편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마리아의 몫을 두둔해 주시는 듯한 말씀도 나오지요. 그래서 억척 언니 같은 마르타는 일하기를 싫어하고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던 마리아의 몫을 빼앗으려던 일종의 악역으로 묘사되곤 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카복음 10장의 기록과 요한복음 11장의 기록을 균형 있게 읽어야 합니다. 다행히 전통적으로 두 자매에 대해 교회에서는 마르타는 활동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마리아는 관상적인 신앙인의 모범으로 균형있게 공경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미 관상과 활동의 순환 리듬으로 생활하고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활동과 관상이 균형 있고도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순환되는 신앙생활, 그 자체를 ‘실상 필요한 한 가지’(루카 10,42)로 보고 계셨다고 교회는 해석해 왔습니다. 


활동과 관상, 마르타의 몫과 마리아의 몫, 이 두 가지는 어느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둘 다 필요하고, 또 필요하되 두 가지의 균형과 순환이 이루어져야 함을 예수님께서 가르치려 하셨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리아의 몫을 더 돋보여주는 듯한 루카복음의 성경과 성녀 마르타의 기념일을 정해 놓은 전례력의 성전이 서로 균형을 맞추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순교자들 역시 활동과 관상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순교라는 영웅적 행적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는 하지만 그런 행적을 할 수 있기까지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봉사활동을 오래 했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또 그런 신앙 증거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 초기 선각자 선비들의 지성적 노력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서적 독서와 이해 그리고 이에 바탕한 기도생활과 이웃에게 천주교 복음진리를 전파하려는 전교활동 등의 노력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개항기에 활약했던, 그러니까 시기적으로 보아 순교자들의 영향을 받은 세대인 안중근 토마스만 해도 부친 안태훈과 함께 한양의 명례방에서 전해 받은 신앙서적 120권을 독파하고서야 영세할 수 있었습니다. 영세한 후에 황해도 지역을 담당했던 프랑스 선교사 빌렘 신부를 도와서 황해도 전역을 두루 다니며 전교활동을 왕성하게 벌여서 당시 조선 8도 중에 으뜸가는 선교실적을 기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독서와 지적 이해, 선교적 증거 활동이 밑바탕에 있었기에 대한독립을 위한 의병활동도 가능했던 것이고 끝내 조선 침략의 원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거사도 가능했던 것이며, 그로 인해 재판을 받는 수감생활 중에도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는 노력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관상에 입각한 활동, 이성적 확신에 기초한 열정적 신앙, 하느님 사랑에 근거한 나라 사랑을 증거한 안중근 토마스의 신앙생활 전반이 후대의 신앙인인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활동도 중요하고 관상도 중요합니다. 우리네 신앙의 현실에서 활동으로 증거도 해야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독서와 기도생활도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결핍되어 있거나, 균형이 맞지 않거나, 순환이 되지 않는 경우가 교우들의 현실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교구 전체를 바라보거나, 본당 공동체를 관찰하거나, 신자 개개인들을 살펴볼 때, 전반적으로 냉랭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천국의 기쁨이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이 전반적으로 활력이 침체되어 가고 있는 까닭은 활동과 관상이 모두 결핍되어 있거나,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거나, 아예 순환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도 신앙이 공동체화 되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사사화 되어 가며, 그 신앙적 지향도 사회적이지 못하고 현세의 복을 빌고자 하는 기복신앙에 그치는 경향은 유아적이고 불균형하며 비순환적인 우리네 신앙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적신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활동과 관상을 균형있고 조화롭게 실천하는 신앙인들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본당의 여러 모임에서나 사회 활동 중에 이루어지는 작은 모임 등에서, 영성의 깊이와 사회적 의식을 갖춘 신앙인들이 신앙의 기쁨과 활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의미도 있고 기쁨도 있어야 합니다. 또는 거꾸로,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교회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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