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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이나 혈통이 아니라 절박한 태도가 좌우한다 - [이신부의 세·빛]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인류의 목자이신 하느님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8-05 14:04:52
  • 수정 2020-08-05 14: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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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8주간 수요일(2020.8.5.) : 예레 31,1-7; 마태 15,21-28



오늘 독서와 복음은 처음에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시던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오늘날 모든 인류의 목자로서 섬김을 받으시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전환과정을 보여 줍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만 해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하느님이 되시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워낙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병리상태가 심각했고, 이들을 돌보아야 할 이스라엘 목자들의 직무유기 상태가 또한 심각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는 “일어나 시온으로 올라가, 주 하느님께 나아가자!”는 말씀으로 희망을 주어 격려하고, 목자들에게는 “주님, 당신 백성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소서!”하는 기도로 사명감을 불어 넣어 주어 격려하는 일이 급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백성을 찾아오신 예수님께서도 목자로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 복음을 전하시는 데 전념하셨습니다. 갈릴래아 지방의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시는 일만 해도 벅차서 갈릴래아 지방 이외의 유다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에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셔야 했고, 나중에는 일흔두 제자까지 불러 모아서 파견하셔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안에서 복음이 어느 정도 선포되었다고 여기실 즈음에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이방인 선교의 첫 시도였습니다. 유다인이면서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을 받던 사마리아 지방의 여인을 만나신 일 이외에는 첫 개척 선교였습니다. 


그런데 그 고장에서 만난 가나안 부인은 뜻밖에도 이스라엘 땅에서 만났던 어느 유다인 못지 않은 믿음을 지니고 찾아 왔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황이니까, 조용한 목소리로 말해도 될 것을 소리를 지르면서 청원을 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만큼 처지가 절박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방인 지역에서 당신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고백하는 뜻밖의 신앙인을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짐짓 모른 척하셨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에게 무언가 일깨워주시려는 듯한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이 여인을 귀찮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긴 제자들이 스승에게 다가와서 그 여인을 돌려보내시라고 재촉하고 나섰습니다. 스승의 눈치를 알아서 본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태도만 떠보시려던 것이 아니었던지, 그 여인에게도 일단 거절하는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말씀하신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예레미야 이래로 이스라엘의 참 목자이신 하느님을 본받는 목자상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태도였고, 실제로 티로와 시돈 지방에 들어가시기 전까지는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 땅에 사는 유다인들, 그 중에서도 소외된 유다인들에게 주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반갑게도 그 가나안 여인이 유다인들보다 더 굳은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 여인은 일단 예수님께서 당신에게로 걸음을 옮겨 시선을 마주 대하시자 그분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며 다시 간절하게 청했습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래도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요지부동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설득시킬 수 있었던 그 여인의 말은 그 다음에 나왔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며 천연덕스럽게 예수님을 밀어부쳤습니다. 자존심도 한껏 굽히고 정성스럽게 청원하는 그 여인의 태도에 감복하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양보하셨습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앞뒤 정황을 살펴서 예수님의 속내를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그분은 의도적으로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가셨고, 거기서 이방 여인을 만나셨으므로 당연히 믿음이 없거나 마귀 들린 태도로 나올 것처럼 예상을 할 수 있었는데, 의외로 믿음이 강한 사람임이 입증되자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마귀 들린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공생활에 있어서 이방인 선교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던 목자의 길은 민족을 넘어서 보편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을 장차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양성시키기 위한 예수님의 작전이었던 듯 보입니다. 


선교에 있어서는 국적이나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얼마나 절박하게 갈망하는지 하는 태도가 성패를 좌우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명제가 여기서 나왔고, 가난한 이들이라고 해도 스스로 하느님을 찾는 절박한 이들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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