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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소통’, 김수환 추기경의 사랑법이 필요한 시대 - [글로벌생명학] 10 : “밥이 되고 바보가 되자”
  • 이기상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9-28 12:20:25
  • 수정 2020-09-27 0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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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서울의 밤거리는 여성들이 혼자 걷기에 위험한 거리는 아니었다. 그것이 그나마 서양의 메트로폴리탄과 구별되는 강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여성은커녕 이제는 웬만한 남성도 인적이 드문 한적한 거리나 으슥한 골목에서는 긴장을 해야 한다. 대낮 도심의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묻지마 식 칼부림’이 더 이상 놀라운 뉴스가 아닌 시대에 사람들은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거기에 덧붙여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인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듯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의 끝에는 ‘소통의 부재’, ‘비소통’, ‘불통(不通)’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대가족은 해체되어 핵가족화되고, 핵가족은 핵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기만의 방 속에 틀어박혀 사는 은둔의 시대에 진입한 듯 보인다. 과거 끈끈한 정이 오갔던 인간적인 만남은 화려한 색깔과 움직임의 미디어 영상을 송출하는 기계가 대신한다. 육성과 육필이 오갔던 관계의 그물망은 어느새 차가운 인터넷망과 소셜 네트워크로 대체된다. 기계를 통해 남들과 소통하는 시대에 ‘묻지마 외톨이’는 말이 아닌 칼로 소통의 단절을 시위하는 것인가.


문화다양성 시대의 소통과 공감


우리가 사는 지구촌 시대는 다양한 문화권이 공존하는 문화의 세기다. 우리 시대의 화두는 다양성, 공존, 상생,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통이다. 서양에서 출발한 근대의 가치들은 주체로서의 ‘개인’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화가 중심이 되는 현대에는 동아시아적 사유와 삶 속에서 중시되던 ‘우리’로서의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를 중시하고 소통이 강조되면, 그 안에서 비롯되는 가치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양함, 차이, 관용, 포용, 이해, 공존, 상생, 배려, 보살핌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고, 그것이 문화적 가치이다.


모든 관계에서 진정한 소통은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온갖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기본적인 원칙이 잊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살았기 때문에, 더 많이 배웠기 때문에, 더 많이 가졌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주동이 되어 자기의 의지에 맞추어 뭔가를 바꾸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수평이 아닌 수직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엄밀히 말해 강요와 강제, 명령이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은 계몽주의적 사고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눈높이 소통’이다. 


그러한 소통의 모범적 예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이 김수환 추기경이다. 김 추기경은 모든 사람을 대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바보’이고 ‘밥‘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두었다. 누구를 만나든 자신을 가장 밑바닥에 내려놓고 상대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고자 하였다. 김 추기경은 또한 스스로 옹기가 되고자 했다. 옹기는 중요한 곡식을 담기도 하지만 때로 침이나 오물을 담는 통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그는 생전에 만나서 가장 편한 이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소통하기 어려운 이들이 정치인들이라고 하였다. 스스로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할 때 상대 역시 그에 맞갖는 진정성이 없다면 소통은 어려워진다. 소통은 타자와의 문제이고, 상호존중 및 이해가 전제되는 만큼 대화 자리에서 서로의 말과 생각, 의도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소통의 달인 김수환 추기경의 ‘소통법’


▲ 김수환 추기경 혜화동 집무실에서 (사진출처=바보의나눔)


많은 사람들이 추기경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면 마음이 편해서 마음 속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터놓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특별한 ‘소통법’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그만의 독특한 ‘사랑법’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비우고 낮추어 모든 사람의 밥이 되기로 결심한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무시할 때 ‘저 사람은 우리 밥이야!’라는 표현을 쓴다. 김 추기경은 모든 이에게 ‘밥’이 되는 소통을 택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바보’라고 천명하며 나섰다. 


“제가 잘 났으면 뭐 그렇게 크게 잘 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안다고 나대는 것이 바보지. 그런 식으로 보면 내가 제일 바보스럽게 살았는지도 몰라요.”


모든 이에게 밥이 되는 살림의 삶을 지향하면서도 그런 삶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바보라고 채찍질하는 김 추기경은 가장 낮은 자세로 사람들과 소통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그를 만나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그가 항상 마음을 열고, 말을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농담을 던져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였다는 사실이다. 대화 상대자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는 겸손의 자세가 그를 ‘소통의 달인’으로 만들었다. 


김 추기경은 사랑이란 남에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여는 것이라고, 즉 사랑은 곧 ‘진심어린 소통’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 그 사람의 기쁨은 물론이고, 서러움, 번민, 고통을 함께 나눌 줄 알게 되고, 잘못이나 단점까지 다 받아들이게 되고, 그의 마음의 어두움까지 받아들이고 끝내는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통을 위한 열린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화가 단절되면 서로 못 삽니다. 또 대화가 없으면 가정도 파탄되고, 스승과 제자, 성직자와 신자, 그리고 정치인과 국민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화가 없으면 그 사회는 존립할 수도, 그리고 힘을 기를 수도 없습니다.”


차이를 끌어안는 열린 대화


마음은 남과 만남으로써 그 문이 열리고, 그래야만 마음이 성장하고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런데 마음이 닫혀 있으니 마음이 얼어붙고 마는 것이다. 내 마음을 남의 마음으로 바꿀 수도 없고, 또 남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가질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가지만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며 절대적일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어떤 문제라도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고, 대화를 할 때 나의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열린 소통의 자세가 김 추기경으로 하여금 종교의 차이, 문화의 차이, 세대의 차이, 빈부의 차이를 넘어 모두를 아울러 끌어안고 대화하게끔 만들었다. 법정 스님은 생전의 김 추기경을 기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만든 벽은 우리를 가둔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자신 안에서나 공동체 안에서나 그 벽을 허무는 데 일생을 바치신 분으로 내게 다가온다. (…) 그분이 그토록 사랑한 이 나라, 이 아름다운 터전에 아직도 개인 간, 종파 간, 정당 간에 미움과 싸움이 끊이지 않고 폭력과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진다. 이러한 성인이 이 땅에 계시다가 떠났는데도 아직 하느님의 나라는 먼 것인가.”


옹기가 되자 : 섬김과 나눔 속의 사랑


모든 이의 밥이 되어 모두를 살리자는 살림의 지혜와 자신을 땅과 같이 낮추어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열어 마음과 마음이 인정과 존경 속에 교류하는 소통의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 김 추기경은 구체적인 실천 강령으로 ‘섬김과 나눔 속의 사랑’을 제시한다. 여기서 그의 모델은 마더 데레사다. 


“없는 사람한테 잘 해야 된다, 더 잘 모셔야 된다, 내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다.”


김 추기경은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가난하고 병들고 죄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마침내 목숨까지 십자가에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은 실천이 없는 말뿐인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저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김 추기경 역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 


그에게 참사랑은 곡식과 오물을 담을 수 있는 옹기처럼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나눔의 삶이었다.


촛불이 되자 : 사름과 비움 속의 평화 



김 추기경은 복음 정신을 따라 자기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가운데 하느님과 소통하면서 모든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에게서 작은 예수를 보고 그들을 예수님처럼 섬기고 그들과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면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고 보았다. 김 추기경은 마더 데레사의 말대로 고난받는 사람은 선택된 사람으로 특별한 사명이 지워진 사람으로서 하느님이 보내신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특별한 부르심, 즉 천명에 의한 선택이 현실에서는 고난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역사 창조나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애인들은 거추장스럽기만한 짐이 아니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진 이 시대의 ‘작은 예수’라고 말한다.


김 추기경은 형제들을 부하게 만드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를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가난을 본받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특히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에게 앞서 봉사하는 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어둠을 탓하지 말고, 촛불을 밝히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한다. 누군가가 먼저 촛불을 밝히게 되면 ‘나도 촛불을 밝혀야겠다’는 마음으로 너도 나도 촛불을 밝힐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게 전파되어 수백만이 모두 촛불을 밝힐 때, 그 촛불의 꿈은 분명히 현실화 된다고 말한다.


김 추기경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다른 사람을 살리려는 노력을 다한다. 그의 각막 기증으로 어두움 속에서 지내던 두 사람이 세상의 빛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받게 되었다. 김 추기경은 자신을 태워 두 사람의 빛으로 다시 태어났다. 비움과 나눔을 통한 살림의 본보기이다. 김 추기경이 촛불을 밝히자 너도나도 따라서 장기기증과 시신기증의 촛불을 밝혔다. 한마음이 된 사랑의 촛불 릴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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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밥이 되고, 바보가 되자”: 김수환 추기경의 섬김과 소통의 사랑법>, 『경향잡지』 2012년 10월호에 실린 칼럼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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