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월요일 (2020.10.12.) : 갈라 4,22-5,1; 루카 11,29-32
몇 해 전에 선종하신 성찬경 사도요한 시인이 낸 시집 「황홀한 초록빛」에는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지은 칸타타의 가사로 지은 시 <부활>이 들어 있는데, 그 일부만 소개합니다.
<1연>
피에서 피어오른 영광
알파요 오메가이신 하느님을
목숨으로 증거하는 일보다
더 큰 영광이 뭣이 있으리오
불타는 믿음 뜨거운 기도
은은한 향 되어 영원에 스미니
보라, 내려주시는 저 부신 빛.
<19, 20, 21연>
세상에 의인이 가득 찰 때
땅에 하늘나라가 세워지리니
아름다워라 하느님의 뜻.
세상에 의인이 안 차는 것은
너도 나도 그런 생각 안하기 때문.
우리 모두 의인이 되도록 하세.
우리나라 의인으로 가득 찬 나라.
하느님의 평화 깃든 고요한 나라.
그 기운이 차츰 널리 퍼져서
온 세상에 의인이 가득 차리라.
그때엔 땅 위에
빛과 사랑의 하느님 나라가 이룩되리라.
이 땅에 빛을 내려주시는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
영원한 찬미와 영광.
피에서 피어오른 영광.
갑자기 이 시가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에서 보내온 서예전 초대장 덕분입니다. 생각해 보면, 조선 왕조의 기운이 기울어져갈 때 나라를 일으켜 보겠다고 들여온 천주교는 왕조로부터 모진 박해를 당하고 많은 치명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는 그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는 영광스런 자리였고 위의 시도 그 자리를 빛내려는 칸타타의 가사였습니다.
그런데 해방되고 분단된 나라에서 북쪽은 전쟁을 일으키고 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 남쪽에서는 북의 위협을 빌미로 군사독재를 일으켜서는 인권을 유린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았기로 또 한 차례 천주교 신자들이 나라를 일으켜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첫 박해 시기에는 평신도들이 앞장을 섰는데, 이번에는 사제들이 앞장 섰습니다.
그 줄에서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으로 교육받은 마지막 세대인 윤형중 마태오 신부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으로 교육받은 첫 세대인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선두에 섰습니다. 그렇게 하여 1974년에 민주회복국민회의가 대한민국 현대사에 깃들인 유신의 어둠 속에서 민주화의 횃불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 역사를 회고하기 위한 서예전이 열린답니다. 이미 원로가 된 함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벌써 선종한 지 40년이 넘은 윤 마태오 신부를 추모하며 반세기 동안 밝혀온 횃불을 붓글씨로 기록하여 전시하는 자리입니다. 유신 독재에 저항한 기록문집의 이름과 똑같이 이 전시회의 이름도 ‘암흑 속의 횃불’입니다. 이런 노력에 눈을 돌리는 이유는 박해시대 이후 천주교가 두 번째로 저항한 유신시대의 십자가를 부활로 승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박해의 치명자들은 2백 년이 지난 지금 성인품에 올리는 종교적 노력으로 추앙하지만, 지난 세대에 활약했던 유신 어둠의 횃불잡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대변하고자 했던 그 시대의 고난과 아픔, 약자들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양지로 꺼내놓는 문화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7,80년대 치열했던 고난과 저항의 십자가를 이제는 묻어두었던 가슴에서 꺼내어 모두를 위한 이야기로 들려주어야 그 치열했던 진실이 온 세상에 알려질 수 있고 또 그래야 그 안에 담겼던 선하고 치열한 기운으로 온 겨레와 이 나라가 부활의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소와 달리 군중에게도 쓴 소리를 하셨습니다. 그 요점은 두 가지였는데,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처럼 회개하라는 것과 솔로몬의 지혜를 청한 남방 여왕처럼 지혜를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일컬어 요나보다도,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라고 자처하심으로써 회개의 기준을 십자가로 명확히 밝힘과 동시에 지혜의 기준도 부활로 선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저지른 죄를 뉘우치는 일차적 회개에 그치지 말고 사랑을 미루고 있는 데 대한 본질적 회개를 하려면 회개의 초점을 십자가에 두어야 하고, 그 십자가를 짊어지는 자세가 고난을 힘겹게 짊어지며 불행스럽게 느낄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와 관련된 여러 사람의 죄를 아울러 용서받는 것이므로 당사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이 새로워지는 부활의 자유로 행복스럽게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7,80년대 어둠의 시대에 유신을 타파하고자 횃불을 들었던 이들의 이야기 역시 그들만의 십자가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들의 정신적 부담이기도 했으므로, 붓글씨로 쓰는 서예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가능한 문화적 장르로 표현해야 우리 모두가 부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세상에 의인이 가득찰 때도 언젠가는 다가올 것입니다.
성찬경 시인이 지은 같은 칸타타에서, 모든 순교선열들이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축복의 노래 가사로 강론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6연>
사랑하는 오늘의 겨레들이여,
여러분께 무한한 축복을 보냅니다.
우리 복음 역사를 순교로 이어주신
주님께 더욱 감사를 드립시다.
순교는 은총의 꽃 중 꽃이기에,
여러분도 순교정신 이어가시오.
치명의 순교 말고
말씀을 위해 양심의 피 흘리는 순교도 있소.
이렇게 모두가 순교정신으로 사랑을 실천하면
주님께서는 다시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넘치는 광명을 주실 것이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