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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유토피아’를 능가하는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길 - [이신부의 세·빛] 전환기적 상황에 처한 교회의 징표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11-17 15:47:35
  • 수정 2020-11-17 15: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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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2020.11.17.) : 묵시 3,1-6.14-22; 루카 19,1-10 



오늘은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죽어 있다고 평을 받는 사르디스 교회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다고 평을 받은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글을 독서에서 들었습니다. 사르디스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금의 산지로서 잘 나가던 곳이었으므로 사르디스 교회 역시 활기찬 교회였으나 쇠퇴해 가고 있었고, 라오디케이아는 이름난 온천을 끼고 있는데다가 눈병에 잘 드는 안약의 제조지로서 부유하였기 때문에 라오디케이아 교회 역시 한때 부유하였으나 쇠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르디스 교회에게는 “살아 있는 듯 하지만 죽어 있으니 생명의 책에서 이름을 지워 버리겠다”고 진단하였으며, 라오디케이아 교회에게는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진단하였습니다. 두 교회 모두, 유리한 듯한 사회적 여건 덕분에 일시적으로는 교회 성장에 도움을 받았지만 신앙의 활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여 교회가 쇠락하고 만 경우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는 예리코의 세관장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크게 회개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관장은 세리들을 거느리는 직책인지라 세리들보다도 더 부유할 수 있었지만, 율법상으로는 죄인이었고 여론상으로도 기피인물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 많은 돈을 가지고서도 사람들을 대접할 수도 없었고 어울릴 수도 없어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리코에 들르신 예수님의 눈에 띄는 바람에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던 부자의 구원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알려주는 실례이며,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입증하는 사례로서 중요합니다. 잘 나가는 부자도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영원한 생명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루카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통해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예리코에 들어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려는 인파가 몰렸지만, 키가 작았던 자캐오는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간 덕분에 그분의 눈에 띄었고 그분을 맞아들이고자 하는 마음까지 읽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캐오가 아무런 청도 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먼저 그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으시려 한다고 투덜거렸지만, 그럴수록 자캐오의 마음은 더욱 활짝 열려서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내놓을 것이며, 횡령한 몫이 있다면 네 배로 갚아 주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화끈하게 회개하는 자캐오에게 예수님께서도 기쁨을 드러내시며 자캐오와 그의 가족에게 구원을 선언해 주셨습니다. 루카 복음 16장에서 라자로와 함께 등장한 부자는 나눔과 회개를 거절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졌지만, 자캐오는 회개의 표시로 나눔을 선언함으로써 구원을 선언 받은 것이고, 이는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에서 일하신 결과입니다.  


초대 교회의 두 교회 이야기와 자캐오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교회 현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2001년 9·11테러, 2005년 뉴올리언즈 허리케인 등 인류를 덮친 재난을 연구해 온 문명비평가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제목의 저서에서 ‘재난 유토피아’라는 말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낡은 사회질서를 작동불능으로 만드는 거대한 재난이 닥칠 때에 패배자가 되는 대신에 인간은 새로운 사회를 실현하기도 하는 현상을 두고 일컫는 말입니다. 엄청난 재난이 닥치면 그 속에서 일상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깊고 성숙한 선의를 지니는 의인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이런 의인들이 늘어나면 이들이 의외의 선행을 행하기도 하는 공동체까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소개한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한국판 재난 유토피아의 실례로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2016년 겨울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백만 명이 넘은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항의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무런 폭력이 자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임 후에는 자발적으로 길거리 청소까지 말끔하게 해 놓는, 놀라운 민주주의 질서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올해 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하게 닥쳤던 곳이 대구였는데, 대구시 의사회 회장이 호소하는 한 마디에 전국에서 의료인들이 자기 병원의 문을 닫고 자발적으로 대구로 가서 집단감염을 막기 위한 의술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유행을 하고 선진국들에서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는 판국에 유독 한국만이 이른바 K-방역이 모범적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또 다른 한류를 돋보이는 것이지만, 사실 지금처럼 한류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도 전에 먼저 주목을 받았던 모습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활력이었습니다. 경제가 성장한 나라들의 가톨릭교회가 거의 전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데 유독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만 활력이 두드러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활력이 사그러들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르디스나 라오디케이아의 두 교회에 보여 주었던 것처럼, 전환기적 상황에 우리 교회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징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캐오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복음에로 회개하려는 화끈한 마음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열린 마음만 있으면, 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재난 유토피아’를 능가하는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서 회개와 나눔의 기운으로 우리 교회 곳곳에 흘러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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