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내 절친한 친구가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떨까. 가장 처음 드는 생각은 당연히 ‘대체 어떻게 하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나?’일테다.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이유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내 친구’, ‘우리 엄마’, ‘우리 아빠’, ‘내 동생’, ‘우리 누나’가 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 결국 이것은 사고를 당한 개인과 그 가족들의 당연한 알권리를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고,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을 위로하는 일의 시작이다.
이 말은 다른 한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에 젖은 이들의 애도가 시작조차 되지 못했음을 말한다. 죽음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애도하는가. 장례는 애도가 아니다.
김태규, 김용균, 구의역 김군과 소리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이름 모를 노동자들... 그리고 전태일. 남들과 똑같이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하여 이들만 유독 ‘애꿎게 목숨을 내건 노동시장’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온적이었던 국회, 2일 공청회 이후 신속한 처리 가능할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 경영책임자 및 공무원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경우 이들에게 3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입법부 차원에서는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최근 법무부와 검찰총장의 갈등 문제 등으로 차일피일 논의가 미뤄져 왔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도 정의당 강은미 의원 발의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법사위에 상정되어 검토보고서까지 나왔으나 논의의 진전이 없었다.
이외에도 지난 8월 이에 앞서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서 홀로 일하다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청와대 청원을 발의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을 촉구했다. 이 청원은 10만 명을 돌파해 법사위에 회부되었으나 역시 진척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당 일부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담당 공무원을 처벌하는 등 ‘과잉입법’의 소지가 있다며 원청과 하청간의 관계로 인해 벌어지는 산업재해 자체에 관한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안전수칙 준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와중 지난 11월 30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 종로 지역구 사무실을 점거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던 건설노조는 점거시위를 해제하고 이낙연 대표 비서실장 오영훈 의원과의 면담을 통해 ▲이낙연 대표 자가격리 해제 후 면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기국회 통과 추진, 불발시 임시국회 추진 ▲특수고용노동자 고용보험 전면적용 추진을 합의했다.
최근 이낙연 대표가 발표한 15개 중점법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빠지면서 정기국회 내 처리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1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온택트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가덕도특별법 등 새로 제정하는 법에 대해서도 공청회 등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이행해 법안 처리가 늦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결국 9일 정기국회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법사위는 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청회 계획서를 채택하고 오는 2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와 함께 1일 오전 성명서를 발표하고 오는 2일 오전 10시에 법사위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공청회가 열리는 만큼 “21대 국회는 신속한 법안심의로 정기국회 내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2일 공청회에서는 김재윤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오늘날 대부분의 중대 산업재해 사건은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안전을 위협하는 작업환경, 안전을 비용으로 취급하는 이윤 중심의 조직문화, 재해를 실수에 기인한 사고로 간주해버리는 사회인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이해되고 있다"며 이를 예방키 위해서는 "중대재해가 위험을 제대로 예방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업(법인)범죄'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 제정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 정진우 교수(서울과기대 안전공학과)와 경영계 임우택 한국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산업재해를 이유로 경영자와 법인을 처벌하는 것이 과하고 그 책임소재의 규정이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최정학 교수(방송통신대 법학과)는 이와 반대로 산업재해 처벌 사례들을 검토해볼 때 ▲주로 약식사건으로 처리 ▲실형 선고 비율 미미 ▲벌금형 평균 액수 500만원으로 위하력 저하라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도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를 '7년 이하 징역, 1억원 이하의 벌금'(산안법 제167조, 제168조)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이렇게 벌금형으로만 끝나는 사건들이 대다수인 것을 볼 때 "검찰과 법원 모두 산안법 위반 범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산업재해와 같은 안전재해가 재판과정에서 개인의 잘못으로 비춰지며 '탈맥락화'되어 그저 일회성 '과실'이나 '사고'로 간주되는 인식을 깨고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드러내줄 수 있는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고와 비극을 가리는 통계 숫자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7일 국무회의 들머리발언에서 전체 산재사망자 중 절반을 자치하는 건설현장의 사망자 사망 사고를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국무위원들을 향해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며 “노동존중사회는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이날 문 대통령은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다”며 건설현장 사망 사건의 상당수가 추락사인 것을 두고 “불량한 작업발판, 안전시설 미비, 개인보호장비 미착용 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 그 원인이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로 대단히 부끄럽지만 우리 산업안전의 현 주소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재해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11월에만 인천 남동공단(3명), 포스코 광양제철소(3명), 경기도 화성(1명), 영흥 화력발전소(1명)이 노동 현장에서 사망했다.
지난 23일 산업재해예방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2020년 9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살펴보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올해만 1,571명이다. 통계자료는 이를 두고 “전년 동기 대비 11명 감소”라는 문구를 적어놓았지만 이는 작년에 같은 시기 1,582명이, 현재는 1,571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는 뜻 아닌가. 11명 감소가 대체 무슨 의미일까. 헤아릴 수 슬픔을 1,571명과 더불어 그들의 가족, 적어도 그 곱절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사망자 유형을 살펴보면 중노동으로 분류되는 건설업, 제조업, 광업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고 그 중에서도 건설업에서 43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올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27.7%를 차지했다. 작년 대비 건설업 분야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7.7% 증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한대로 건설업 분야 산업재해는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셈이다.
그리고 산업재해 사망자의 상당수는 대부분 도급 업체나 하청 업체에 해당하는 5인 미만, 5인~49인 기업에서 주로 발생했다. 즉, 하청 업체들이 파견 과정에서 제대로 안전절차를 준수하지 못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 업체들만의 잘못일까?
흥미롭게도 100인~299인 규모의 중소기업에서는 전년 대비 사망자가 11.8%나 증가한 반면, 1,000인 이상의 기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15.8%가 감소했다. 물론 이 두 수치간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사고라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장 규모에 따라 사망자 비율 증감에 확연한 대비가 있음을 볼 때, 산업재해 사망 사건과 하청-원청 관계는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지난 10월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열린 ‘판결 다시 보기 토론회’에서 손익찬 변호사는 지난해 4월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청년노동자 고 김태규 씨의 산재사망 판결을 재검토하며 “‘권한’을 위임할 수는 있어도 그와 동시에 ‘책임’까지 위임될 수는 없다”는 말로 산업재해의 핵심을 요약했다.
손 변호사는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로 고 김태규 씨가 참여한 공사의 시공사 대표이사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현장에 참여한 시공사 차장과 현장소장만 징역을 선고 받았다. 이에 따라 공사를 발주한 주체의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수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손 변호사는 사고가 발생한 주원인 중 하나인 승강기제조업체 대표이사는 벌금형에 그치고 제조업체 자체는 기소되지 않았고, 건설현장을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를 지닌 공무원의 책임은 아예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손 변호사는 물론 발주자나 공무원에 관한 수사와 기소에 대해서는 ‘산업재해의 개입’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경영자와 공무원 등의 책임자에게 분명 산업재해에 관한 ‘책임’이 있는 만큼 이러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문제의식이 “명목적인 권한위임 뒤에 숨어서 실제로 권한을 행사하고 문제가 터지면 꼬리자르기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에 있다고 설명했다.
“비일비재한 추락사”라는 인식 바꿔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는 지난 9월 ‘3개종단노동인권연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상식적인 절차를 어긴 기업과 관리감독의 의무를 방기한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 가중 처벌함으로써 안전하고 생명이 존중받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11월 24일에는 민주노총이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개최하고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100인 미만에 해당하는 99개의 빈 의자에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얼굴 없는 영정을 전시했다. 이 자리에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참여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지난 26일 성명을 발표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촉구했다.
운동본부는 1년에 2,400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면서도 누구하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무와 권한이 있는 국회는 10만 명 시민들이 찬성한 청원안을 회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유독 국회만 ‘막을 수 있는 반복되는 죽음’에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특히 운동본부는 국회에 “산재예방 기능이 가능할 정도의 처벌 수준도 안 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내놓는 등 법통과의 의지를 찾아보기 어려운 행동을 멈추고 174석을 가진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하라. 국민의힘에도 요구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초당적으로 협력할 사안이라는 발언에 책임을 지고 어느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적극 나서라”라고 주문했다.
지난 27일에는 고 김태규 씨의 누나 김도현 씨가 SNS를 통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오는 2일 열리는 고 김태규 씨 산업재해 관련 2심이 열린다는 소식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기업살인의 가장 큰 책임자들이 푼돈으로 면책되는 어두운 시스템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호소했다.
김도현 씨는 고 김태규 씨 산업재해 재판 1심에서 판사가 “비일비재한 추락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두고 이것이 “법 제도가 산업재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김 씨는 “태규 사건의 진행과정이 수많은 산재 사망 유가족들에게 희망적인 사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면서도 “하지만 지난 1년 7개월을 싸워오며, 기업살인의 가장 큰 책임자들이 푼돈으로 면책되는 어두운 시스템 전체를 바꿔내지 못한다면 죽음의 연속을 막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결국 “우리의 목적은 기업을 처벌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죽은 가족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처벌기준이 있어야, 기업들이 최소한 돈보다 사람이 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살 사람을 저울질하다 죽이지는 않을 것 같아서다”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