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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쇄신을 원하면 전방위적으로 나설 용기 필요해”
  • 끌로셰
  • 등록 2020-12-23 14:29:33
  • 수정 2020-12-23 22: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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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Vatican Media)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을 앞두고 지난 21일, 교황청 고위성직자들과 직원들을 향해 성탄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지난 한해 교회에서 벌어진 온갖 부정부패들을 성찰하며 겸손한 태도를 되찾으라고 주문했다. 


교황은 위기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쇄신하기 위해서는 “위기와 분쟁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면서 “전방위적으로 나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하지만,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 태어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를 인용하여 ‘인간은 비록 반드시 죽어야 하나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작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수 탄생의 의미를 설명했다. 


세상에 대한 희망과 믿음은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희소식’을 전하는 복음의 짧은 문장에서 가장 간략하고 영광스럽게 표현된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다시한번 인용하며 “20세기 전체주의의 폐허에서 아렌트는 빛나는 진리를 인식했다”고 밝혔다.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음을 누그러트리고, 겸손하고, 헐벗어야만 제자리를 찾게 된다”며 겸손에 관한 성 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하여 교황청이 따라야 할 가치를 제시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에페 4, 31-32) 


교황은 이와 더불어 성 이냐시오를 인용하여 교황청이 스스로 ‘모든 사람을 바라보고 관상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섬기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하인’이 될 것을 주문했다.


"위기는 추수 후에 밀알을 골라내는 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성탄이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보건위기, 경제·사회·교회 위기의 성탄”이라며 “위기는 더 이상 연설에 등장하는 뻔한 표현을 넘어 모두가 공유하는 현실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지난 3월 27일 홀로 성 베드로 광장에 서서 코로나19로 절망하고 있던 전 세계를 향해 강복했던 일을 되새겼다. 코로나19라는 ‘풍랑’이 우리의 연약함의 모습을 들춰내고, 우리의 아젠다, 계획, 습관, 우선순위의 기준이 되었던 거짓되고 피상적인 안정을 드러냈다고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이번이 스스로를 회심하고 진정성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되짚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기는 언제 어디에나 있으며 이념, 정치, 경제, 기술, 생태, 종교를 함의한다”면서 “위기는 개인의 역사와 사회 역사의 필수적 단계”라고 설명했다. 위기는 “언제나 내려야 할 결정 가운데 걱정과 불안을 야기하는 특별한 사건으로 드러난다”며 “그리스어 동사(krino)의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위기는 추수 후에 밀알을 골라내는 체”라고 표현했다.


교황은 “성서에는 이렇게 ‘체로 걸러진’ 사람들, 위기에 처했지만 바로 그 위기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룩한 인물들로 가득하다”며 아브라함, 모세, 예언자 엘리야, 세례자 요한, 사도 바오로가 처한 위기를 나열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위기는 예수의 위기”라며 예수의 40일간의 고행, 유다의 배신과 제자들에게 버림받은 사건에 이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언급했다.


교황은 앞서 예수가 겪은 사건들이 결국 구원의 역사를 실현하기 위해 이뤄진 것인만큼 “이렇게 성찰해보면 어제 오늘의 추문으로 벌어진 위기에 기반하여 교회를 성급하게 판단하는 일을 지양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미국 가톨릭교회 성직자 성범죄를 적나라하게 정리한 교황청의 ‘매캐릭 보고서’와 교황청 재정 유용 의혹에 휘말린 베치우 추기경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대목이다.


동시에 교황은, 예언자 엘리야가 희망 없는 잔혹한 현실을 묘사하며 자신만이 남았다고 절망한 것처럼(1열왕 19, 14) “지금까지 수많은 교회에 관한 분석들은 이처럼 희망 없는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며 “희망 없이 현실을 해석하는 것은 현실적이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결국 “복음에 비추어 위기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시체를 부검하는데 그치는 셈이다. 즉, 위기를 보기는 하지만 복음이 주는 희망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라며 “우리가 위기에 겁먹는 것은 복음이 우리에게 권고한대로 이 위기를 가늠하는 법을 잊고, 복음이야 말로 처음으로 우리에게 위기를 가져다주는 존재임을 잊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위기에는 당연히 쇄신이 요구된다. 우리가 진정 쇄신을 원한다면 전방위적으로 나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교황은 마지막으로 “위기와 분쟁을 혼동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위기에는 보통 긍정적인 해결책이 있지만 분쟁은 언제나 한 쪽만이 승리하는 대립, 대결, 적대 관계를 만들어낸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교회는 절대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분쟁에 빠진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성령께서 의도하신 위기가 가져다주는 새로움은 과거의 것과 대립하는 새로움이 아니라, 과거의 것에서 싹을 틔워 과거의 것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새로움이다. 씨앗이 죽는 행위가 이중적인 것은 어떤 것의 끝인 동시에 다른 것의 시작을 표현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모든 위기에는 당연히 쇄신이 요구된다”며 “하지만 우리가 진정 쇄신을 원한다면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나설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개혁을 헌 옷에 천조각을 덧대는 것으로, 또는 그저 새 교황령을 반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를 멈추어야 한다. 교회의 개혁은 전혀 다른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옷’이 아닌 모든 역사를 아우르는 그리스도의 육신인만큼 개혁은 ‘옷을 기우는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는 이 육신에 새 옷을 입혀 우리가 가진 은총이 우리가 아닌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명확히 하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교황은 “교회는 언제나 토기와 같은 존재”라며 “자신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안에 들어있는 것 때문에 소중히 여겨지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예수께서도 ‘새 옷 조각을 떼어다가 헌 옷에 기우는 것’처럼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몇몇 위기 탈출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면서 “이 때 ‘새 옷 조각은 헌 옷과 어울리지 않기에’ 새 옷만 찢어진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루카 5, 36-38)는 말씀을 되새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기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마태 13, 52)이라며 “‘과거의 것’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진리와 은총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서 ‘새로운 것’은 우리가 조금씩 이해해가는 진리의 여러 가지 측면들”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공동합의성에 비추어 교회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소수와 다수로 나누어져 다수결에 의해 결정을 내리는 제도인 의회와 달리 공동합의성에는 "성령"이라는 핵심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연설을 마치며 성탄을 앞두고 가난한 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줄 것을 강조했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르고, 내가 가난한 이들은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고 말한 엘데르 카마라(Hélder Câmara) 대주교를 언급했다.


교황은 이날 연설이 끝나고 교황청 성직자들에게 시성 예정자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의 생애를 다룬 저작과 가브리엘레 마리아 코리니(Gabriele Maria Corini) 신부의 영성 관련 신간 ‘전체를 향해 나아가다’(Olotropia: I verbi della familiarità cristiana)를 선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같은 날 교황청과 바티칸시국 직원들을 만나서도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에서 “바티칸시국 위원회와 국무원은 아무것도 줄이지 않기 위한 모든 방도를 찾고 있다”며 “어느 누구도 해고하지 않고, 팬데믹의 심각한 경제적 타격으로부터 고통받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은 언제나 같다”며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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