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18 광주의 참상을 알리고자 노력했던 인물로 잘 알려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형달 바오로 신부가 지난 16일 선종했다. 정형달 신부는 선종하기 전, 평신도 중심의 신학연구소 (사)우리신학연구소에 1억원의 연구기금을 기탁하며 평신도 활동을 격려했고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었다.
우리신학연구소는 정형달 신부가 2016년부터 연구소를 후원해왔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지난해 12월 폐렴으로 입원해있던 중에 기금을 보내왔다고 설명했다.
정형달 신부는 연구소 측에 보낸 연구기금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평신도를 고려하지 않는 성직자 중심의 한국 천주교를 비판했다.
“평신도들이 교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교회, 교회를 파멸시키는 가장 큰 폐해가 성직주의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시는 교황님의 가르침에 귀 틀어 막고 있는 성직자란 사람들, 신학은 없고 마냥 전례와 성사에만 의존하는 바람에 세상에 희망이라는 빛이 되기를 포기한 오늘 이 교회” - 정형달 신부의 메시지 중에서
정 신부는 “나탄의 비판을 받아들일 때 다윗이 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한국교회에 그런 세상이 올까요?”라면서 “이런저런 한국교회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제가 가진 몫 일부를 연구소로 보냈습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정 신부는 기금과 함께 “한국교회에 죽비를 내리는 발걸음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연구소의 노력과 발전을 우리 한국교회가 인정해 줄 시간이 어서 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는 마음 덧붙여 글 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우리신학연구소 측은 이 같은 사실을 알리며 “곧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신 정형달 신부님의 선종 소식에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자들은 깊은 슬픔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형달 신부님의 마지막 선물이 된 귀한 후원금은 ‘정바오로 연구기금’으로 운영하며, 고인의 뜻에 걸맞게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1980년 6월, ‘광주사태의 진상’ 발표한 사제… 군부독재 맞서다 구금되기도
지난 16일, 78세의 나이로 선종한 정형달 신부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69년 사제서품을 받고 42년간 일선에서 사목활동한 후 2011년 은퇴했다.
정형달 신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으로 활동하며 사태를 공식적으로 시급히 알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1980년 6월 광주교구 사제단과 함께 ‘광주사태의 진상’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와 탄압에 용감히 맞섰다. 이 과정에서 정 신부는 보안대에 체포·구금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비상계엄이라는 허울 속에 정부 당국의 거짓된 발표와 통제된 언론의 편향보도로 인하여 철저히 왜곡되어 있다. (…) 사태의 원인은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 때문이다.”
이후에도 정 신부는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5.18 당시 천주교의 활동을 정리한 ‘광주의거자료집’을 발간하여 교회 안팎으로 전두환 군부의 탄압을 알리는데 힘썼다.
지난 19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염주동성당에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집전으로 정형달 신부의 장례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김희중 대주교는 “이제 고인께서 우리 교구와 사제단에 물려준 가르침과 활동을 큰 유산으로 귀하게 여기며 남아있는 우리가 받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형달 신부의 동기인 김창훈 신부는 장례미사 가운데 추모사를 전했다. 정 신부는 동창들 중에서도 유별하게 열정적인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었다면서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을 따라 모범적인 삶을 살아 동창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인은 18일, 담양천주교공원묘원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