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짓밟고 오지 않는다. 미얀마 군부는 자신의 이권을 위해 저지른 불의한 행동에 정의로 맞선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뉘우쳐야한다."
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미얀마 군부가 200명에 육박하는 무고한 시민을 살상하며 무력진압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교구 차원에서 미얀마 사태에 대한 관심을 독려하고 이를 한데 모아 미얀마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여러 움직임들로 변모시키고 있다.
29일 오후 7시 대전교구청 경당에서는 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이 주관하고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미사’가 총대리 김종수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 이날 미사는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따라 참여인원을 제한하되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했다.
김종수 총대리 주교는 이날 미사 말머리에서 “지금 혼란과 고통 중에 있는 미얀마 사회가 겪는 어려움이 그 사회가 구원으로 가는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얻는 십자가의 길이 되도록 우리 마음을 모아 기도하자”고 말했다. 이날 미사가 봉헌된 경당에는 한쪽에는 미얀마 국기를 걸어 놓기도 했다.
직접 갈 수 없지만 ··· “이 작은 정성만이라도 봉헌하는 것”
이날 강론을 맡은 사회복음화국장 겸 정의평화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는 2021년의 미얀마와 1980년 대한민국 광주의 모습이 무척 닮아있다고 말했다.
김용태 신부는 “군부쿠데타 세력의 잔학한 폭력이 서로 너무 닮았고, 그 폭력 앞에 무참히 짓밟히는 시민들의 참상이 또 너무 닮아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찌하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무기력함이 서로 너무 닮아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자책하면서도 “이 무기력함은 7년 전 이맘때 수백 명의 고귀한 생명이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을 무기력하게 앉아서 지켜봐야 했던 그 기억과 겹쳐져서 오늘 더욱 더 큰 참담함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답답한 마음으로 다시 묻는다. 주님, 어찌해야 합니까. 미얀마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김용태 신부는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라는 말씀을 새기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마음, 그 고통에 대한 연민과 슬픔, 예수님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들에 대한 분노와 뉘우침, 그리고 십자가의 길에 동행했던 그 정성을 미얀마 형제들에게 똑같이 행하라는 명령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아픔과 진실을 주위에 알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어떻게 도와줄지 궁리하고 모색하는 이 작은 정성만이라도 봉헌하는 것,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형제들이 부활을 향해 가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게 만들어주는 그 힘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미얀마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기도는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사흘, 그 칠흑 같은 어둠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관심과 기도, 정성과 노력은 우리 자신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기도했다.
미사 후반부에는 미얀마 군부가 벌인 참상이 고스란히 기록된 영상을 함께 시청하며 이를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이날 미사에는 대전에 거주하고 있는 미얀마 시민이 참석하여 그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미얀마 시민은 자기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을 바라보며 슬픔에 북받쳤다. 그는 “미얀마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세요”라는 말만을 간신히 내뱉었다. 미사에 앞서 이 미얀마인은 성당에 걸린 미얀마 국기를 어루만지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는 자신의 국가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
같은 날 오후 6시 인천교구도 교구청 야외에 설치된 성모당에서 노동사목부와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최하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 민주주의 염원 미사’가 사무처장 김일회 신부 집전으로 봉헌되었다. 이날 미사 역시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좌석 거리두기가 적용되어 미사참여 인원이 제한되었다.
김일회 신부는 미사를 시작하며 “우리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이 상황에 연대에 마음으로 함께 하면서 민주주의 염원, 미얀마 민중들이 더 이상 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찰스 마웅 보(Charles Maung Bo) 추기경의 ‘평화만이 유일한 길이다’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날 강론을 맡은 노동사목위원장 겸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양상일 신부는 민주주의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원칙이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게 적용되는 것임을 상기하고 “미얀마 군부는 자신의 국가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양상일 신부는 “인간의 존엄함이 지금 미얀마 땅에서 마구 짓밟히고 있다. 미얀마를 향해 도움과 연대와 위로의 손길을 각 교구마다 보내고 있다. 이 손길은 예수님께 해드리는 마음이라 생각한다”며 “인간의 능력은 미약할지 모르나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통해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했다.
양 신부는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부활의 기쁨처럼 만들어지기를, 올곧이 세워지기를 오늘 이 미사를 통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마음속에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아주 어린 아기부터 나이 많은 노인까지 많은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더 이상 그런 희생이 생기지 발생 되지 않기를 주님께 간절히 청했으면 한다”고 기도했다.
인천교구는 한국 출신의 교황청 외교관으로 현재 태국, 미얀마 주재 교황대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장인남 대주교를 통해 미얀마에 5만 달러를 지원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미사 이후 김일회 신부는 교구사제단을 대표해 “사제단은 미얀마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죽음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로 나선 미얀마 국민의 위대한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며 ▲매주 월요일 미얀마 시민을 위한 미사 봉헌 ▲매일 저녁 9시 한반도 평화와 미얀마 민중을 위한 성모송 봉헌 ▲일상 속에서 미얀마 시민 저항 알리기 위한 구체적 지원을 약속했다.
광주대교구는 지난 22일 광주 서구 염주동 성당에서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집전으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철회와 민주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에서 “미얀마 군부 정권이 원하는 평화와 정의ㆍ공정은 ‘선택적 평화’와 ‘선택적 공정’으로 폭력을 통해 이루려는 거만한 욕심”이라며 “평화로운 국가, 희망이 가득하고 미래를 만들려는 국가 모습을 원한다면 당장 그 폭력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주교는 “평화는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짓밟고 오지 않는다"며 "미얀마 군부는 자신의 이권을 위해 저지른 불의한 행동에 정의로 맞선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뉘우쳐야한다"고 호소했다.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민석 신부)는 22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미얀마 군부에 “'폭력과 억압을 치워 버리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처럼 시민을 향해 겨눈 총부리를 거두고 폭력과 억압을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광주대교구 정평위는 “국가폭력에 맞서 비장하게 항거하는 미얀마 시민들의 생명과 인권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고 안전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80년 5월 광주시민이 보여준 나눔과 연대의 정신을 미얀마 시민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의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으로 군사정권을 제재함과 동시에 미얀마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연대해 나아가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지난 24일에는 부산교구 울산대리구도 울산대리구장 김영규 신부의 주례로 미얀마 군부 쿠데타 철회와 민주주의 회복을 기도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강론에서 김영규 신부는 “미얀마 국민들이 지켜 내고자하는 민주·자유·정의·평화는 우리 인류가 지켜야 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진리”라고 강조했다.
천주교 각 교구 차원의 이 같은 공동행동은 계속될 예정이다.
마산교구는 오는 4월 9일 19시 30분에 마산 상남동성당에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민족화해위원회, 정의구현사제단, 창원이주민센터가 공동주최하여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미사’를 봉헌할 계획이다.
서울대교구도 염수정 추기경의 요청에 따라 30일부터 오는 4월 7일까지 미사 전후로 주모경을 바치는 9일기도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군부 무차별 진압으로 이틀 동안 아동 14명 포함 169명 사망
미얀마 영자 매체 < Myanmar Now >에 따르면 지난 27일 국군의 날이 포함된 주말 동안 미얀마 50개 도시에서 169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14명은 미성년자로 확인되었으며 그 가운데는 돌을 맞은 아이에게 군부가 고무탄을 발사하여 한쪽 눈이 실명하고, 사망한 1세 아동을 포함해 집이나 집 근방에 있다가 총격으로 사망한 11-16세 사이의 아동들이 있다.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27일 주말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면서 지금까지 군부가 살해한 시민들의 수는 51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대한민국을 비롯한 12개국 합동참모본부는 27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방부 장관으로서 우리는 미얀마 군과 관련 안보군들이 비무장 시민들을 상대로 살상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규탄한다”며 “직업 군인이라면 국제 행동강령을 따라 자신이 봉사하는 국민들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미얀마군이 폭력을 중단하고, 여태껏 군부의 행동으로 인해 잃어버린 미얀마 국민들의 존중과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도 미얀마 국민들을 잔혹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OHCHR) 역시 27일 앨리스 와이리무 은데리투(Alice Wairimu Nderitu) 유엔 학살방지특별고문,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 유엔 인권최고대표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군부가 벌이고 있는 "체계적" 학살을 규탄했다.
유엔은 “도망가는 시위자들을 비롯해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는 모습이 포착된 군경의 부끄럽고, 비겁하고, 잔인한 행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국제사회도 미얀마 국민들을 잔혹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유엔 고위관계자들은 국제사회가 “잔혹 범죄의 위험에 처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유엔 헌장에 따라 시의적절하고 집단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역시 지난 28일 외교부 성명서를 발표하고 “야만적인 폭력이 계속되고 있음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정부는 미얀마 군부가 군인으로서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자각하기를 바라며, 자국민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폭력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재차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국제사회 차원의 행동을 가로막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해 전방위적 외교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29일 박재민 국방차관은 러시아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과 한-러 국방전략대화 자리에서 미얀마 군과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이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이를 국제사회와 함께 촉구한다는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