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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위험’을 머리맡에 두고 사는 대한민국
  • 이원영
  • 등록 2021-09-16 16:18:23
  • 수정 2021-09-16 16: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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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태양광 설비값이 지난 10년간 1/9로 싸졌다. 설치된 태양광설비의 용량이 두 배로 늘 때마다 태양광 패널값은 약 20% 하락한다는 학습곡선이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효율도 좋아져서 불과 7-8년 전보다 동일 면적에 2배 이상 설치가 가능해졌다. 지난 40여년간의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즉, 이는 재생가능에너지가 화석 연료를 빠르게 제거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원료가 공짜인데다 누구나 생산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소득을 안겨다 줄 태양광 전력이 전기혁명시대의 지배자로 등극하고 있는 것이다. 기둥이 된다는 의미의 ‘기저’전력이 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생산량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간헐성’이다. 태양광은 하루중에도 소비시점과 생산시점의 주기가 비슷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이 간헐성 때문에 전력계통의 운영이 쉽지 않다. 특히 에너지저장장치의 기술력이 관건이다. 저장의 수단으로서의 ‘수소’의 역할도 중요해진다. 기저전력의 약점을 커버하는 일련의 기술적 경제적 흐름이 에너지전환의 새로운 마당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태양광의 간헐성과 공존할 수 없는 원전의 숙명


이 때문에 불똥이 원전에도 튀었다. 전기공학자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지난 해 봄, 멀쩡하던 원자력발전소에 전기출력을 감발하라고 명령하는 사례가 나왔다. 원전이 있는 시스템에 재생에너지가 갑자기 늘어나면, 전력의 주파수 안정도가 훨씬 나빠진다. 안정도가 깨지면 블랙아웃과 직결된다. 안정도를 유지하려면 운전하는 발전기 숫자를 줄여야 한다. 발전기 하나가 정지하는 영향이 점점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 5월 2~3일의 주말 13시간 동안 원전 가동중 최초로 전격적인 출력 감발을 강제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기생산을 갑자기 줄이기 힘든 원자력발전소의 구조적 한계를 무릅쓰고 감발조치를 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의 전기생산이 늘어나면서 주말수요의 감소와 맞물려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에 의한 블랙아웃의 위험을 방지하고자 한 사건이었다. 즉 피크시 수요까지 감당해내고 있는 기저에너지 태양광의 결점인 간헐성과 공존하려면, 이를 보조하는 발전원의 출력은 급속히 줄였다가 신속하게 복귀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발전기 여럿 있는 게 유리한다. 하지만 덩치 큰 원전은 불리한 것이다.


즉 원전이 전력계통상에서 갖는 속응성(速應性) 한계 때문에 더이상 병행해서 사용하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전교수는 강조한다. “2034년(재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목표연도)이 되기 전 벌써 전력계통에 한계가 닥친다. 원전의 추가건설을 받아줄 능력이 안되고, 지금 추가 계획을 획책해도 건설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 종속적 에너지로 전락한 원전의 운명이다.” 그러니까 전력계통의 운영원리상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것이다. 해답이 나왔다. 재생가능에너지와 원전은 공존할 수가 없다는 것.


인류에게 정신적 테러를 가하고 있는 원전의 속성


10년전 후쿠시마 핵사고가 나던 해의 사건이 생각난다. 그해 봄학기부터 대구의 계명대에 부임했던 독일의 모교수가 후쿠시마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사임을 한 후 귀국해버린 것. 체르노빌 방사능 낙진이 800킬로 떨어진 자신의 나라에 떨어져 오랫동안 우유도 못먹었던 체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대구에서 후쿠시마까지가 바로 그만한 거리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인재는 일본인조차 그 땅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일본경제가 쇠퇴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다. 체르노빌 터지고 구 소련이 망한 것이나, 후쿠시마 터지고 지금 일본이 쇠퇴하고 있는 것이나 구조는 같다. 생물권뿐 아니라 인간계의 관계망 모두가 파괴되는 것이다.


‘치명적 위험’을 머리맡에 두고 사는 대한민국


▲ (자료출처=환경운동연합)


언제나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사고가 만의 하나 한국에서 터지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고리나 월성에서 터지면 100km안에 부산, 울산, 대구, 양산, 포항, 경주, 창원 등까지 들어간다. 모든 경제활동도 마비되고, 우리는 기후위기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파탄이다. 대략 16개쯤 되는 고리, 월성 원전중에서 어디서든 중국 타이산 원전처럼 방사능만 새어나와도 경제가 마비된다.


남한이 여러모로 대외적 영향력이 커지고 미중 신냉전시대의 미국에게도 의미있는 동맹관계로 강화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소위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잠재의식속에 있는 ‘애치슨 라인’이 한반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이제 한반도 위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한국의 반도체가 망하면 미국도 지구촌도 위태로워지는 세상이 왔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핵이나 핵발전소에 탈이 나서는 안되는 안보적 경제적 요충지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잠재적 인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미국발 헛소문과 헛기대


원전은 기후위기대응에도 백해무익하다. IPCC 등 외국의 학자들은 기후위기에 집중해서 대응해야 하는 시기는 지금부터 8년인데, 핵발전소는 지금부터 건설한다 하더라도 12년이상 걸리는 존재이므로 쓸모가 없다는 것. 또 영국 서섹스대학은 재생가능에너지가 핵발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며, 핵에너지는 그리드(grid: 전력망) 안에서 더욱 골치 아픈 존재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원전이 없어야 전력망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것.


핵을 쪼개서 나오는 에너지를 우리가 이용한다지만 그중 2/3는 버린다. 그리고 5년도 안되게 사용한 뒤 남은 핵폐기물은 수백만년 동안 방사선을 내뿜으며 우리를 위협한다. 이쯤이면 원전은 전기생산이 아니라 핵폐기물 생산공장으로 봐야 한다. 본질이 그렇다.


그런 가운데 며칠전 미국으로부터 핵폐기물 재처리공정을 허락받았다는 보도가 언론을 탄 바가 있다. 하지만 뉴스의 진실은 그렇지 않다. ‘한미핵연료주기공동연구(JFCS) 운영위원회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과 소듐냉각고속로(SFR)에 대한 연구결과를 담은 양국 공동보고서만 공식 승인했을 뿐, 추가적인 연구개발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는 것뿐이다.


이에 대해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2018년에 국회가 핵재처리의 경제성과 안전성이 불투명하므로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추진된 연구다. 그리하여 2020년까지 한미공동으로 수행한 결과에서 경제성 평가가 나와야 했는데, 연구를 더 해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면 과제가 미성공한 것이다. 실패로 판정되어야 한다. 7천억원이 넘게 투입된 연구결과의 끝마당을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라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진실을 왜곡하는 언론은 견책받아야 한다.


또 최근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는 소형원자로 SMR은 경제성 때문에 연구실 문밖을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M.V.Ramana 교수는, “SMR은 설계조차도 준비가 안된 상태다. 여러 가지 변형된 SMR과 전력 부하 조절, 수소 발생, 담수화 등이 가능해도 첨단 원자로는 경제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핵 옹호론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른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라고 잘라 말한다.


탈원전의 급가속이 요구되고 있는 이유


하지만 엉거주춤하던 그 5년동안 여건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현실적으로도 탈원전의 급가속이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경제활동 때문이다, RE100 등 지구촌 기후경제에 적응하려면 신속히 재생가능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갈아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 280여개 글로벌 기업 및 단체가 RE100 참여를 밝힌 가운데, 한국 대기업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원전으로 만든 전기로는 제품 만들어봤자 수출이 안 된다. 새 무역장벽 RE100을 돌파하려면 전격적인 변신을 해야 하고, 또 변신하는 게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게임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탄소국경세 때문이라도 쓸만한 제조업은 재생가능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제기반을 위협하는 위기다.


그런가 하면 태양광산업을 집중 육성해 고도의 경쟁력을 갖추면 2025년경 연500조로 성장할 세계 태양광시장에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 이미 선두로 나선 우리기업들도 있다. 태양광과 관련된 ESS, V2G 그리고 수소 기술도 눈부시다. 세계 시장의 10%만 점유해도 50조를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 반도체에 이어 세계 3대 시장을 형성할 태양광을 무시하고 에너지자립은 물론 세계경제선도를 논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에 비해 원자력은 그 규모나 종사자 수에서 이제는 재생에너지에 비해 1/10도 되지 않는다. 경쟁이 허용되는 시간이 얼마 없다.


한전 시장개방후 에너지혁신을 이끌 IT기술


이에 대해 전영환 홍대 전기공학과 교수도 동일한 지적을 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시장을 개방해야 진정한 에너지전환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린 IT기술이 엄청 발전해 있어 시장을 개방만 해주면 투자여건도 생기고 엄청 잘 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작은 용량의 수많은 발전원들이 흩어져 들어오니, 이걸 모아 모니터링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기반은 대한민국이 가장 우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전 독점이라는 제도 하나 때문에 못가고 있다. 전력시장의 민영화가 아니라 자유화, 전면개방이 필요하다. 스웨덴은 바텐판이란 국영기업을 그대로 두고 다른 기업들이 다 들어와 전기장사를 한다. 우리나라도 한전은 공기업으로 두고 전력시장을 개방했다면 창의적인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을 거다. 지금 프로슈머나 중개사업자들을 보면 전부 한전이 독점한 틀 속에서 조금씩만 해보는 수준이다.”


그의 말은 몇 년전 필자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시의 에너지정책관 노이만박사로부터 들은 말과 동일하다. “한국처럼 IT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에너지전환을 잘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다”


이를 두고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한국의 탈핵 정책은 철학과 제도 모두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하고 불완전했기 때문에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주로 새로운 성장을 위한 기회로만 설명했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기술적 과제들이나 전기요금 인상 같은 이슈들은 회피했다. 탈원전 선언 이후 핵발전소 폐쇄를 뒷받침할 법률 제정도 전혀 추진되지 않았고, 이는 노후 핵발전소 중단과 폐쇄와 관련된 시비와 공격의 빌미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고개만 돌리고 몸통은 그대로인 5년이라고 할 만하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



지금 핵발전을 강행하고 있는 나라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핵무기 보유의 야심을 버리지 못하는 나라다. 야망이 있는 것처럼 오해받는 한국은, 하지만 일찌감치 한반도 비핵화의 길로 들어선 나라다. 그동안 모든 대통령이 천명하다시피 핵무기를 갖지 않고 한반도를 비핵화의 동네로 만들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그 평화의 기조는 운명적인 것이다.


진정한 비핵화를 하려면 독일처럼 원전까지 없애는 탈핵을 해야 한다. 미국은 안보때문에라도 한반도의 탈원전을 도와야 한다. 그런 후 한국의 기술인력을 지구촌 원전해체와 안전에 돌리는 전략을 짜야 한다. 지금도 원전을 감발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전교수의 지적처럼 2030년이 되기 전에 벌써 전력계통에 한계가 닥친다. 그 전에 원전으로 인한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해야 하는 미션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탈원전의 기둥이 세워져야 기후위기대처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이는 둘이 아니다(不二). 


독일이 11년만에 탈원전을 완수하는 2022년에, 우리는 새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된다. 마침 메르켈 총리가 퇴임하면서 한국의 팬데믹 대응을 배우자고 나섰다. 우리는 거꾸로 그들의 ‘생명과 윤리를 바탕으로 한 탈원전의 정신’과 그 ‘치밀한 추진’을 배워야 한다. ‘시한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잠 못 이루는 위험’을 벗어나는 데 5년이면 적은 시간은 아니다.



이원영 (수원대 교수, 한국탈핵에너지학회 부회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은 < 미디어오늘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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