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은 3년간 이어질 공동합의적 여정 개막 연설에서 “새로운 교회가 아니라 전과 다른 교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일, 2023년 시노드를 위한 숙의 절차 개막식에서 공동합의성의 의미에 대한 설명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개막식 자리에 참석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성령께서는 우리를 이끄시어 우리가 함께 나아가며, 서로 경청하고, 우리 시대에 관한 식별을 시작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시리라 확신한다”며 “우리는 일치와 친교, 즉 하느님의 하나뿐인 사랑이 주위에 가득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되는 형제애를 느끼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공동합의적 여정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참여’에 대해 교황은 형식적인 개입보다는 실질적으로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교황은 “각 여정과 노력의 단계마다 모든 사람의 실질적인 개입을 유도”해야 하며 “공동합의성의 구체적인 현실을 표현하는 교회의 관습을 키우지 않고서는 친교와 사명은 추상적인 말로 남게 된다”고 경고했다.
공동합의적 여정이 “실질적인 영적 식별의 여정”이라면서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느님의 계획에 더 잘 협력하기 위함”이라며 공동합의성을 통해 실질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성직자와 평신도 간에 대화와 상호작용을 권장하는 장치와 구조들이 필요하다”며 “사제단에 존재하는 일종의 엘리트주의는 평신도들로부터 사제를 멀어지게 하고, 사제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교회 전체의 목자가 아닌 ‘배의 주인’이 되고 만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교회, 성직, 평신도 역할, 교회론적 책임, 운영 방식 등에 관한 수직적이고 왜곡되었으며 편파적인 일부 시각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교황은 지적 탐구에만 빠져 눈앞에 놓인 현실을 제대로 살피지 않게 될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교황은 “시노드를 교회 문제와 세상의 악에 관한 수준 높지만, 추상적인 발표들이 이루어지는 일종의 연구 모임으로 만들게 되면 […] 우리는 결국 이념적, 당파적인 쓸모없는 분류로 다시 빠지게 되어, 전 세계에 퍼져있는 공동체들의 구체적인 삶과 멀어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교황은 ‘언제나 그래왔다’는 안주하는 태도 역시 변화의 방해물이 된다고 지적했다. “교회 생활에 있어 바꾸지 않는 게 낫다는 식의 말은 독이다”라며 “이런 지평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잘못에 빠지게 된다. 새로운 문제에 낡은 해결책을 채택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공동합의적 여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가장 먼저 “모든 사람이 자기 집처럼 편하게 느끼며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공동합의적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청하는 교회, 옆에 있는 교회
그리고 현재를 진단할 수 있도록 “경청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교황은 “세계 각지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서 희망과 신앙 위기, 지역교회에서 나타나는 징후들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옆에 있는 교회”(이탈리아어: chiesa della vicinanza)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하느님의 방식은 가까이 지내는 것, 가엾이 여기는 것, 온유”라며 “우리가 이러한 ‘옆에 있는 교회’에 이르지 못하면, 우리는 주님의 교회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말뿐 아니라 존재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삶과 분리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연고로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며 우리 시대의 유약함과 빈곤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 신학자이자 추기경이었던 이브 콩가르(Yves Congar) 추기경의 말을 빌려 “또 다른 교회가 아닌 전과 다른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모든 폐쇄적 태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죽은 것을 다시 살게 하시고, 사슬을 부수시고 기쁨을 퍼트리시는 하느님의 새로운 숨결이 필요하다”며 “이브 콩가르 사제는 ‘또 다른 교회가 아닌 전과 다른 교회를 지어야 한다’고 상기하곤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맞이한 과제다. 하느님께서 제안하고자 하시는 새로움에 마음을 여는 ‘전과 다른 교회’를 향해 나아가야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연설을 마치며 “아름답지만 침묵으로 가득한, 과거는 많지만 미래는 거의 없는 박물관 같은 교회가 되지 않도록 보호해주소서”라고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