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간 토요일(2021.11.6.) : 로마 16,3-27; 루카 16,9-15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돈을 좋아해서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을 쌓아 놓고 사람들 앞에서 의롭다고 자처하는 바리사이들을 비판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는 “불의한 재물로라도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루카 16,9) 하고 타이르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그네들의 의로움을 보아 제자로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조금은 답답하셨던 모양입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은 표면상 하느님의 율법을 떠받들고 있었지만 내용상으로는 돈을 하느님처럼 떠받들고 있었고, 형식상 율법으로 인해 얻은 도덕적 권위에 더하여 실질적으로 돈까지 가지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려던 자들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이 바리사이들처럼 돈을 성실하게 다루어서 재물을 모으기를 바라셨다기보다는, 돈보다 더 크고 재물보다 더 귀한 가치 즉 신앙과 진리를 다루는 데에도 영리하기를 바라셨다고 봅니다. 또한 이 가치를 함께 실현할 친구들을 모으고 관리하는 데에도 영리하기를 바라셨다고 봐야지요. 아무튼 예수님께서는 적대자들의 혐오스런 죄악을 발판삼아 제자들을 사도로 양성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독서인 로마서 16장은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그 동안 사도 바오로를 도와준 로마 공동체 안의 협조자들에게 전하는 안부 인사만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 명단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사도 바오로가 얼마나 많은 이들과 인맥을 맺어서 광범위한 선교 네트워크를 만들고 정성스레 관리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도 바오로가 이들을 먼저 로마로 보내어서 선교적 발판을 다지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면서도 그는 가는 곳마다 유다인들이 모이는 회당에로 찾아가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율법적 한계를 열변으로 설교함으로써, 유다인들 안에서도 그리스도인 동지로서 선교 협조자를 얻고자 했던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오로가 오늘 복음에서 배운 영리함입니다.
이 시대의 바리사이들 역시 돈을 모으기 위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고 하고, 권세를 얻거나 돈 잘 버는 직업으로 출세하여 그 돈을 잘 관리하려고 합니다. 스카이캐슬이야말로 그들의 우상입니다. 우리 시대의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돈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고 인맥을 쌓는 일에 영리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