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최근 공개된 독일 교구 성범죄 보고서에 대해 “다시 한 번 모든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큰 부끄러움과 고통을 느끼며, 진심으로 사죄를 청할 수밖에 없다”고 용서를 청했다.
베네딕토 16세는 고령의 나이(94세)로 지금까지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를 통해 입장을 전해왔지만, 이번에는 직접 서한을 작성했다. 발표된 보고서 내용과 베네딕토 16세의 주장이 배치되는 등 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자 직접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베네딕토 16세는 서한에서 가장 먼저 힘든 시기에도 자신을 응원하고 지지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헌신적으로 나를 대신해 뮌헨 법무법인에 보낼 82페이지의 의견서를 써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혼자서는 이를 써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보고서가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직접 작성된 것이 아님을 밝혔다.
베네딕토 16세는 이들이 법무법인의 보고서를 검토하는 것을 도와주었다고도 밝히면서 그에 대한 결과는 추후에 공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보고서에서 ‘X 사건’이라고 익명으로 제시되었던 페터 훌러만(Peter Hullermann) 신부와 관련하여 훌러만 신부의 전입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다 이를 정정했던 점을 다시 한 번 언급했다. 보고서 공개 이후 나흘 뒤 베네딕토 16세는 겐스바인 대주교의 성명서를 통해 “의견서 작성 과정에서의 실수로 인해” 1980년 1월 15일 교구 참사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누락되었다고 정정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 오류는 의도한 것이 아니며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겐스바인 대주교에게 이를 2022년 1월 24일 언론에 밝히도록 했다”며 “이 오류가 내 진정성을 의심하고, 심지어 나를 거짓말쟁이로 보여주기 위해 쓰였다는 사실에 심히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여러 사람들이 보내온 신뢰, 증언, 격려 편지에 감동 받았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게 개인적으로 전해온 신뢰와 지지, 기도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매번, 날이 갈수록 교회가 미사 시작 부분에 우리 죄의 고백과 용서를 청하는 행위를 한다는 사실에 깊이 감동한다. 우리는 공개적으로 살아계신 하느님에게 우리의 잘못을, 우리의 너무 큰 잘못을 용서해달라 기도한다. ‘너무 큰’이라는 말이 매일 똑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오늘도 아주 큰 잘못을 말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나를 위로하듯 오늘 내 잘못이 얼마나 크든지 간에, 주님이 나를 들여다보도록 하고, 진정으로 내 스스로가 변화할 마음이 있다면 주님이 나를 용서해주신다는 말이 들려온다”고 말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사제에 의한 성범죄 피해자들과의 모든 만남 가운데 나는 그들의 눈 속에서 아주 큰 잘못의 결과를 보았고, 지금껏 그래왔듯이 우리가 그러한 큰 잘못을 무시하거나 필요한 결정과 책임으로 이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가 큰 잘못에 연루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다시 한 번 모든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깊은 부끄러움, 큰 고통을 느끼며 진심으로 사죄를 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베네디토 16세는 “나는 가톨릭교회에서 큰 책임을 맡았었다”며 “여러 곳에서 내 임기 가운데 벌어졌던 학대와 오류로 인해 더욱 큰 고통을 느낀다. 모든 성범죄는 끔찍한 것이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나는 깊은 공감과 회한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한을 마무리하며 “곧 나는 내 삶의 최후의 심판자 앞에 서게 될 것이다”라며 “내 긴 인생을 돌아보면 두려워할 이유가 많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기쁘다. 나는 주님께서 올바른 심판자이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과오에 이미 고통을 받으셨으며 심판자이자 변호인인 친구이자 형제임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교황청이 공개한 이번 서한은 최근 뮌헨-프라이징 교구가 독일 법무법인에 의뢰하여 작성한 교구 성범죄 보고서다.
뮌헨-프라이징 교구 성범죄 보고서는 1945년부터 2019년까지 해당 교구에서 벌어진 성범죄 사실을 총망라한 2,0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장대한 보고서다. 보고서는 74년 간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에서 497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그 중 247명은 남아, 182명은 여아라고 밝혔다. 피해자 가운데 60%는 피해 당시 8-14세였다. 가해자는 총 235명으로 집계되었고, 그 가운데 173명이 사제였다.
각 교구장별 사례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베네딕토 16세가 이 곳에서 약 5년간 교구장을 지냈기 때문이었다.
베네딕토 16세가 대교구장을 지낼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경우는 총 4건으로, 그 가운데 ‘X 사건’으로 보고서에 제시된 사건이 가장 논란이 되었다. 1980년 페터 훌러만 신부가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어 정신과 치료를 위해 뮌헨 교구로 전출을 왔음에도 교구는 그가 정상적으로 아동 및 청년들이 있는 환경에서 사목을 할 수 있게 조치했고, 그 결과로 뮌헨-프라이징 교구 본당에서도 수많은 성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이에 대해 베네딕토 16세는 법무법인에 보내는 보고서에서는 훌러만 사제 전입 당시 이를 다룬 교구 참사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었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법무법인은 교구가 보유한 서류들을 통해 베네딕토 16세가 분명 회의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현 교구장인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추기경을 비롯해 뮌헨-프라이징 대교구장을 맡았던 이들 대부분에게서 성범죄를 다루는데 있어 과오나 실수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이를 볼 때, 이번 보고서는 비단 베네딕토 16세 당시에 교구가 방만하게 운영되었음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교구 내에서 성범죄를 다뤄왔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독일 가톨릭교회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책임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대부분은 그의 정직성을 높이 사며 베네딕토 16세가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독일 주교회의 의장 게오르그 바칭(Georg Batzing) 주교는 “그냥 딱 잘라 ‘나는 죄를 지었다. 나는 실수를 했다.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청한다’고 말하면 된다”며 베네딕토 16세의 솔직한 사죄를 요구하기도 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 아동보호센터장 겸 미성년자보호위원회 위원으로 교황청 성범죄 문제에 교황청을 대표하여 주요한 목소리를 내왔던 인물이었던 한스 졸너 신부는 미국 예수회 매체 < America >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비록 베네딕토 16세가 법무법인 의견서에 서명을 하긴 했으나, 독일어 문체와 의견서에서 보인 사회적·신학적 입장을 고려할 때 의견서가 그가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님을 미리 예견하기도 했다.
한스 졸너 신부 역시, 굳이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에 용서를 구한다.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청한다”고 말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밝혔다.
교황청 측에서도 홍보부 편집장 안드레아 토르니엘리(Andrea Tornielli)의 입을 빌려 베네딕토 16세야 말로 “성학대 피해자들을 만났던 최초의 교황”이라고 강조하며 교황이 된 이후로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 교회 성범죄를 퇴치하기 위해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고 교회법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