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8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한 망치와 낫 모양의 나무 십자가상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문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지난 1980년 피살된 예수회 사제 루이스 에스피날의 작품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외신이 9일 보도했다.
이 십자가상은 공산주의의 상징물을 형상화한 것이어서 가톨릭 관계자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교황은 이 십자가상을 받을 때 예상치 못해서인지 약간 당황해 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호세 이그나시오 무닐라 주교는 무신론자들이 하느님을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조작했다는 것을 봤을 때 분노가 절정에 달했다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처음 이 십자가상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제작을 의뢰한 것을 알려졌다.
이에 많은 가톨릭교회 관계자들과 볼리비아 야당 정치인들은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그가 반 서구적 시각을 분명히 하고 교황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 이 십자가상을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8일 밤 볼리비아 언론의 보도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 십자가상의 실제 제작자는 광부들의 인권을 위한 운동을 벌이다 우익에 의해 살해당한 볼리비아 예수회 에스피날 사제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교황청 페데리코 롬바르디 대변인은 9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갖고, “에스피날의 작품이 맞다. 교황도 몰랐고, 나도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가톨릭 사제들이 해방신학 운동에 투신했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십자가상에 대해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인 후안 라몽 퀸티나는 십자가상이 에스피날 원본의 복제품인 것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교회와 공산주의는 가난한 사람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교황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롬바르디 대변인은 볼리비아의 예수회 사제들이 이 십자가상은 종교를 마르크스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해방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여하튼 이 십자가상은 교회 제단에는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볼리비아 도착 후 같은 예수회 소속의 에스피날 사제가 피살된 장소를 찾아 애도를 표했었다.
교황과 같은 나라 출신인 혁명가 체 게바라는 1967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군대에 의해 볼리비아에서 사살됐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해방신학이 계급투쟁이라는 마르크스적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며 이를 회의적으로 보았다.
때문에 2005년 선종할 때까지 교황 재직 27년 동안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등 많은 저명한 해방신학 사제들이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남미 출신 최초인 현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이후 그들은 점차 복권되고 있다.
모랄레스 대통령과 가톨릭교회와의 긴장 관계도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서서히 해빙되고 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교회를 ‘지배의 도구’라고 비난한지 7년 후에 교황을 따뜻하게 영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