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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들이 놓은 덫에서 탈출하는 법 - [이신부의 세·빛] 부활 신앙의 전술적 국면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2-04-01 14:05:55
  • 수정 2022-04-01 14: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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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금요일(2022.4.1.) : 지혜 2,1-22; 요한 7,1-2.10.25-30


오늘은 부활 신앙의 전술적 국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초막절이 가까웠을 무렵 남몰래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당신은 생명의 물이심을 천명하시자 바리사이파 유다인들이 그분을 잡으려 했지만 그분은 무사히 그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분이 자청해서 악인들이 놓은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악인들이 의인에게 덫을 놓자고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 소개되었습니다. 악인들은 의인이 하느님의 뜻을 거론하며 회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 자체를 꺼려했습니다. 의인의 질책이 듣기 싫었고 의인의 충고가 고까웠던 악인들은 모욕과 고통으로 덫을 놓기로 했습니다. 


구도정신을 지녔던 의인들의 노력 덕분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한국교회는 악인들의 덫으로 박해를 받았던 피어린 역사가 있습니다. 그 발단은 영조와 세자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2백여 년 전 영조가 세자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눈치 챈 노론파 유림들이 여론을 조작해서 영조의 손으로 그를 죽인 다음에, 세월이 더 흘러 그 아들이 왕위에 올라 정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조는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하는 말로 왕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노론은 자신들이 정조로부터 숙청될 것이 두려워 잠재적 정적인 남인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특히 채제공, 이가환이나 정약용 같은 뛰어난 남인 선비들이 정조의 총애를 받게 되자 선제적으로 남인 숙청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는데, 노론 악인들은 천주교로 덫을 놓았습니다. 


마침 남인 선비들이 천주학을 공부하다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천주교를 전하기 위해 명례방에서 교리 공부와 세례성사 예절을 거행하다가 적발된 사건이 좋은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보는 천주교 교리 서적을 얻어서 읽어 보니 그들은 천주를 임금보다 더 높이 공경한다는 것을 알고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사교(邪敎)’라고 공격했습니다. 


명례방 모임에서 적발된 모양새로는 양반과 중인과 상민이 신분 구별 없이 모여 있었던 데다가 남녀도 섞여 있었으므로, 반상(班常)의 신분과 남녀 유별의 윤리도 무시하는 패륜(悖倫)적인 무리라고 비난하는 구실이 더 붙었습니다. 충효의 가치와 신분 질서 그리고 삼강오륜으로 포장된 덫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북경에서 날라온 조상 제사 금지령이 좋은 빌미가 되어 주었습니다. 게다가 불난 데 바람 부는 격으로 진산사건의 주인공인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연루된 남인 선비를 죄다 유배 보내거나 죽이는 참극을 벌이는 와중에, 황사영이 교황께 위험에 처한 신자들을 구해달라고 탄원하면서 서양 선박을 청하는 편지를 보내려다 들통이 나서, 일이 단박에 대역죄로 커졌습니다. 


노론 악인들의 박해로 인해 이벽, 약전 약종 약용 등 정씨 삼형제를 비롯한 남인 출신 양반 신자들이 막대한 희생을 치루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사교(邪敎)’라는 노론의 모함에 대항하여 ‘대군대부(大君大父)’를 가르치는 천주교 교리를 듣고 입교한 중인, 양인, 천민, 부녀자 등 수많은 신자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불과 십여 명의 강학회 선비들로 시작한 한국교회가 백 년의 박해를 거치는 동안 기록상 2천 명, 구전상 2만 명이 넘는 치명자가 나왔습니다. 


이렇듯 악인들의 모욕과 고통을 받으며, 의인들은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주는 자발적 성사모임을 해서 한양 선비 천여 명을 입교시키기도 했고, 박해가 시작되자 새로 입교한 평신도들이 전국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섰습니다. 치명자의 유족을 비롯하여 양반 신자 가문에서 해방된 노비 출신 등이 심산유곡을 찾아 교우촌을 건설하여 2백 군데 가까운 신자 마을이 조성되면서 제 발로 찾아온 입교자들이 더 늘었습니다. 


그러다가 교우 중에 밀고자가 생겨 발각되고 체포되면, 목숨을 구걸하기보다 차라리 치명하여 천당에 가기를 원하여 그 끔찍한 고문을 참아 받았습니다. 그러다 힘이 부쳐서 입술로 배교한 신자들은 교우촌으로 살아 돌아와서는 자책하는 마음으로 자손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이전보다 더 열심히 물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박해가 진행될수록 신자들은 더욱 늘어나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천주교 박해는 반만년에 걸친 한민족 역사상 피지배층이 지배층과 다른 독자적 가치관을 내세워 집단적으로 항거한 첫 사태였으며, 조선 왕조 5백 년 역사상 가장 크고 오래 진행된 학살 사태였고, 더욱이 칼이나 창도 들지 않고 평화적으로 저항하여 끝내 신앙의 자유를 쟁취함으로써 승리한 기적적인 역사였습니다. 


이웃 나라를 비롯하여 천주교 박해가 자행된 나라들은 많지만 현재 순교자 성월을 지정해 놓고 해마다 순교정신을 다짐하는 교회는 전 세계에서 한국교회밖에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복음을 들여오기도 했거니와, 자발적으로 성사를 갈망하면서 피어난 신앙의 의인들이 하나같이 터득한 전술은 악인들이 놓은 덫을 구원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되 결코 신앙과 의로움을 잃지 않고 부활하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자원하여 짊어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우리를 부활시키시는 전술을 활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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