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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동지처럼, 동지를 가족처럼
  • 이기우
  • 등록 2022-10-07 20: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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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토요일(2022.10.8.) : 갈라 3,22-29; 루카 11,27-28


예수님께 있어서 성모 마리아는 낳아주신 어머니이시면서도 신앙인으로서 믿음을 함께 하는 동지이기도 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남편 요셉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예수마저 출가한 후에 홀몸이 되셨기 때문에, 당시 대가족 제도의 풍습대로 집안 어른을 봉양할 의무를 진 친척 형제들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흔히 ‘예수님의 형제들’이라고 불리웠던 이 친척 형제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생각할 때에, 자신들에게 부양 의무를 떠넘긴 채로 생활비를 보태주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사촌 형제 예수를 이해하기가 도무지 어려웠습니다. 어쩌다 병자나 장애자를 고쳐주었다거나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었다는 소식도 들었고 그 덕분에 예수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더라 하는 소문도 들었을 법하지만, 출가 후부터 그 형제들은 예수에 대한 실망만 남았을 뿐 아무런 기대도 신뢰도 없었기 때문에 시큰둥하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렸을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바리사이들이 퍼뜨린 악소문에는 빛의 속도로 반응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는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제들은 어쨌든 예수가 미쳤다는 것으로 단정을 하고는 이 참에 그 유랑 설교 활동을 때려치우게 할 요량으로 성모 마리아까지 부추겨서 쫓아오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닦달하는 형제들의 성화에 못 이겨 쫓아오신 성모 마리아께서 보시니, 예수님은 멀쩡하게 제 정신으로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황이 돌아가는 형편을 재빨리 눈치 채신 그분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가족”이라는, 자칫 껄끄러울 수도 있는 말씀을 내놓고 공개적으로 발설하셨던 것이고, 오늘 복음에서 군중 앞에 나타나신 성모 마리아를 본 한 여인이 앞뒤 사정도 모른 채 부러워하는 발언을 하자 또 다시 같은 말씀을 꺼내신 겁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더 행복하다.”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대가족 혈연의 의무로 마리아를 모시고 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지키지도 않아서 뜻으로는 전혀 통하지 않던 친척 형제들보다는 차라리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주는 군중, 그 가운데에서도 그 말씀을 믿고 실행하는 이들이 예수님께서 기대를 걸게 된 새로운 하느님의 가족,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새로운 하느님 백성은 혈연 여부에 상관없이 하느님 말씀으로 서로 통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으며 서로 믿을 수 있는 새로운 인류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서는 물론이요 서로의 인격도 신뢰할 수 있고, 함께 일을 하거나 돈 거래를 해도 얼마든지 믿을 수 있는 신용이 든든한 사람들, 그래서 신앙과 신뢰와 신용이 다 갖추어져 믿음이 온전한 사람들입니다. 


마리아와 예수, 이 두 분의 모자관계처럼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믿음에서 우러난 뜻까지 함께 하는 동지가 될 수 있으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뜻이 맞는 동지들을 가족처럼 친근하고 믿을 수 있는 인간관계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어야지요. 혈연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지만, 나머지 인간관계는 우리가 노력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뽑으신 열두 제자 가운데에는 친형제지간인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이 그러하며, 특히 작은 야고보와 시몬은 친형제지간이었던 데다가 예수님의 친척 형제이기도 했습니다. 


이러고 보면, 예수님을 불신했던 친척 형제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이 제자들 사이야말로 말씀을 듣고 지키는 하느님의 가족이었습니다. 스승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섬기듯 다스리셨고, 다스리듯 섬기셨습니다. 즉, 발을 씻어주시는 표양을 보여주시면서 섬기셨지만, 제자들끼리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고 명하심으로써 상호 섬김의 질서가 자리 잡도록 제자들을 다스리셨습니다. 


또한 배신의 죄를 지은 베드로를 부활하신 후에 일부러 찾아가셔서 충성서약을 겸한 신앙 고백을 받아 내셨는데, 누가 재판장이고 누가 피고인지 모를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알량한 자존심을 할 수 있는 한 배려해 주시며 그가 지닌 죄책감을 씻어주시려 애를 쓰셨습니다. 결국 그는 신생 초대교회의 책임을 맡았습니다. 섬기듯 다스리고 다스리듯 섬기신 예수님의 리더십이었습니다. 


이러한 리더십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고 제자들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뒤늦게 스승의 진심을 알게 된 제자들도 사도가 되어 스승을 위해 일생을 바치다가 목숨을 바쳤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고 죽은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자지간만큼이나 완벽하고 순수한 관계입니다. 


교우 여러분!


나자렛 가정의 모자지간처럼 가족을 동지로 만드시든지, 예수님과 그 제자들처럼 동지를 가족으로 만드십시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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