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4일 전(2022.12.22.) : 1사무 1,24-28; 루카 1,46-56
한나는 기도해서 얻은 아기 사무엘을 데리고 엘리 사제를 찾아가서 주님께 바쳤습니다. 과연 사무엘은 장성하여 판관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를 여는 첫 예언자가 되어 사울을 왕위에 앉히고 축복의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함으로써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수립하는 데 공로를 세웠습니다. 주변 토착 부족들의 압박을 이겨내고 열두 지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성공적으로 조정해 낸 결과였습니다.
이는 이집트를 탈출한 지 무려 250여 년만의 일이었는데,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이 하느님의 일꾼이 되도록 바친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셨고(1사무 2,1-10), 사무엘의 노력은 엘리 사제의 지도로 성과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엘리 사제는 사무엘로 하여금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 제가 지금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21) 하고 응답할 줄 알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령으로 구세주를 잉태하고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뜻밖의 최상급 인사로 하례를 받은 마리아께서는 성모 찬송으로 화답하셨는데, 이것이 또한 태어날 아기에 대한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 아기는 장성한 후 구세주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할 큰 인물이 되리라는 축복이었습니다.
이 축복은 사무엘이 예언자로서 파라오의 손아귀로부터 이집트를 탈출한 동족을 무사히 왕국 수립에까지 이끌어낸 민족 차원의 리더십을 넘어서 보편적으로 온 인류를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하느님 나라에로 이끌어낼 인류 보편적인 차원의 리더십입니다. 이 축복을 위해 성모 마리아께서는 일생동안 한결같이 아들 예수님과 빈틈없는 교감으로 통공을 이루셨으며, 예수님께서도 혼을 다한 노력으로 이를 위해 힘쓰셨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보내시어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모찬송 안에는 장차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후 과연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하실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축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는, 조상 대대로 하느님을 믿어 오면서 “주님 안에서 기뻐 뛰고,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들던”(1사무 2,1) 아나빔들의 믿음을 여실히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우선 자신이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도록 영광을 주신 데 대해 그리고 계약의 약속을 하느님께서 이행해 주신 데 대해서도 하느님 백성을 대신하여 감사 드렸습니다(루카 1,46-55). 성모찬송에서 나타난 아나빔들의 기쁨은 이집트 탈출 이래 하느님과의 계약을 어겨온 자들을 흩어버리신 심판에서부터 나타납니다.
그래서 마리아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신 “하느님께서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실”(루카 1,51) 미래를 찬송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이집트에서 해방되었으면서도 이집트의 우상숭배자들을 흉내라도 내듯이 마음이 교만한 사두가이들이 종교제사를 독점하고서는 아나빔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길을 가로막았던 절망스러웠던 현실에서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바라는 종교개혁의 소망을 표현한 첫 번째 엑소더스 메시지입니다.
이어서 마리아께서는 메시아께서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실”(루카 1,52) 미래를 앞당겨 찬송하셨습니다. 가로막힌 최고선을 핑계로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통치자들은 공동선을 짓밟기 일쑤이기 때문에, 최고선이 투명하게 밝혀지면 이를 공동선에 반영할 정치가 필요해집니다.
그리하여 메시아께서는 비천한 취급을 받던 백성을 주인처럼 섬길 줄 아는 정치 일꾼들을 새로 부르실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공직자들이 명심해야 할 정치윤리요 최고선을 받들어야 할 공동선의 원리로서, 두 번째 엑소더스 메시지입니다.
또한 마리아께서는 메시아께서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은 빈손으로 내치실”(루카 1,53) 미래도 미리 찬송하셨습니다. 이 찬송 역시 아나빔들의 탄원 기도를 반영하는 것인데, 그들은 메시아께서는 “목마른 이에게 물을 먹이시고 배고픈 이를 좋은 것으로 채우실 것”(시편 107,9)을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지식을 독점했던 바리사이들은 이를 재산을 불리는 도구로 삼았던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선 찬송이 불의한 권력이 백성을 비천하게 취급하며 억눌렀던 정치적 현실에서 해방되기를 내다보며 미리 찬송하는 것이었다면, 이 찬송은 노동의 대가가 불공정하게 분배됨으로써 재산이 불평등하게 소유되고 있는 경제적 현실을 개혁하여 고르게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해방을 기약하는, 세 번째 엑소더스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종교와 더 좋은 정치에 이어 더 좋은 경제를 소망하는 아나빔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찬송입니다.
이렇게 메시아를 잉태하신 성모님으로서 마리아께서 외치신 찬송은,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에 대한 뜨거운 염원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공감이 담겨있는 메시지였으며, 메시아께서 세상을 하느님의 뜻대로 새롭게 하실 엑소더스 파라다임을 예고하는 예언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구세주 예수 아기를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께서는 그분의 미래를 축복하시고 예언한 기도를 바치셨고, 과연 그 기도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삶이 이루어졌습니다. 교우 여러분! 말이 씨가 되고 기도의 말씀이 사람을 이끕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