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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대로 살아가십시오
  • 이기우
  • 등록 2023-01-25 15:4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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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2023.1.25.) : 사도 22,3-16; 마르 16,15-18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열두 제자를 부르신 바 있었습니다만, 부활하신 후에도 부르신 제자가 바로 바오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도 열두 제자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셔서 발현 기적을 체험시켜 주셨고, 그 중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제자에게는 따로 갈릴래아 호수에 모이게 하시어 153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를 잡는 풍어기적(요한 21,1-14)을 체험시켜 주심으로써 장차 그들이 사도가 되어 거두게 될 풍성한 선교 성과를 미리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오로에게는 처음부터 눈부신 빛과 천둥의 소리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기적의 방식으로 그를 부르셔야 했던 까닭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던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로 믿는 이들을 잡으러 다니던 박해자였기 때문에 ‘사울’이라고 불리던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시느라고 그런 특별한 기적을 동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때 사울에게 비추어진 강렬한 빛 때문에 그는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고, 그에게 들려온 천둥 소리 안에서 함께 들린 말씀 때문에 그는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22,7). 


그렇게 눈이 멀게 된 그에게 며칠 뒤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의 지시를 받은 하나니아스가 찾아가 세례를 주는 순간에 눈을 뜨게 되기는 했지만, 그의 발걸음이 선교사의 길을 갈 만큼 눈을 뜨기까지에는 무려 십여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갈라 2,1). 그 기간 동안에 그는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피정을 하기도 하고, 타르수스의 자기 집에서 구약성경을 수도 없이 되풀이 읽으면서 그제껏 바리사이들에게서 배운 성경 지식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를 알고 믿고 있던 이들을 찾아가서 뒤늦게 알게 된 바를 확인하기도 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마음과 영혼의 눈을 뜨게 했던 단서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들은 그분의 목소리였습니다. 십여년 내내 자신의 머릿속을 맴돈 소리는 또 이러했습니다. “어찌하여 죽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까? 죽은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고, 또 그렇다면 그분은 하느님이시다!”


그 무렵에 안티오키아 교회를 책임지고 있던 바르나바가 자신의 집으로 사울을 찾아와서 함께 일하자고 권했고, 이 권고에 응한 후부터 사울은 ‘바오로’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바꾸고 선교사 수업을 받았으며, 얼마 안 가서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에게 성령이 내리시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2). 


당시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바오로 외에도 예언자직과 교사직을 수행하던 이들이 여럿이 있었지만(사도 13,1), 사울의 실력이 월등했습니다. 라틴어는 물론 그리스어도 능통했고, 수사학과 논리학과 기하학 등 당시 그리스 문화권이었던 로마제국의 지식인들과 대등한 실력과 능력을 그는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교식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한 선교사로 발탁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유다의 전통과 율법에도 누구 못지않은 열성과 지식을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의 길에 나서면서도 언제나 안식일이 되면 유다인 회당부터 찾아가서 해외 디아스포라에 살던 동족들에게 그가 새롭게 깨닫게 된 히브리 민족의 역사를 재해석해서 들려주면서 예수야말로 그들이 기다려오던 메시아이심을 논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설교를 납득하게 된 이들 가운데에서 자신의 동료요 제자로 삼거나 협력자로 관계를 맺었습니다(로마 16장). 


사도 바오로가 이렇게 인생을 180도로 바꾸게 된 계기는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서 체험한 기적이었고,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번개 빛과 천둥소리로 나타나신 사건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이 기적 체험을 자신도 잊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상기시키고자 선교사로서 설교를 하거나 편지를 쓸 때에 거의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는 로마제국의 전 영토를 걸어다니면서 하느님을 모르던 숱한 이방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었고, 설교와 편지를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지난 2008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맞이하여 ‘성 바오로의 해’를 선포한 바 있는데, 이는 오늘날 그가 가톨릭교회 2천 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공경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사람들은 기적 현상에 대해 불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상식이 늘어나고 과학에 대한 지식도 많아지면서 더더욱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는 정신 풍토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족감과 오만감에 빠져 사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오로가 체험한 기적은 강력한 도전을 제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모든 기적들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지니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분께는 우리가 믿음을 지니게 되는 일이 기적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믿으십시오. 믿음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믿음대로 살아가십시오.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불신뿐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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