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힘들다. 새로운 뉴스 공장’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한민국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 청취율 20분기 1위인 TBS의 뉴스공장을 문닫게 하자 김어준 공장장은 새로운 뉴스공장을 유튜브에서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겸손 뉴스공장’은 세계 1위가 되어버렸습니다. 글을 쓰는 오늘 현재 구독자 116만 명을 돌파했고, 총조회 수는 쉽게 2000만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실시간 동시접속자 숫자도 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유튜브 시청자 집계 1위에서 5위 도표에 오르락내리락하며 상위권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류 언론들과 미디어가 막대한 자본을 들여가며, 고가장비에 고급인력에 그리 방송 대본을 짜고, 뉴스를 만들어내며 그리 떠들어대고 소란스러워도 일인 미디어 김어준을 못 이깁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김어준을 이기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고, 진실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김어준은 자타 공인 ‘대한민국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임엔 틀림없습니다.
뉴스공장 팀이 ‘겸손은 힘들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겸손’이라는 말은 상당히 인문학적이기도 하고, 종교적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덕목이기도 한 ‘겸손’이라는 말을 언론이라는 냉정하고, 엄밀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뉴스 미디어에서 제목으로 그리고 슬로건으로 내 건다는 것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틴어의 ‘겸손’이라는 말은 ‘후밀리타스(humilitas)’입니다. ‘후무스(humus)’라는 말에서 온 단어입니다. ‘humus’는 원래 ‘흙, 땅, 먼지’ 등으로 이해되는데 태초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에서 인간을 지어 만드셨다는 요 ‘흙’이 바로 ‘humus’ 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human’이라 하고 인문학을 ‘humanities’라고 합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순(정화와 속죄의 40일) 시기를 시작하면서 재의 수요일 예식을 진행하는데 사제는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으며 말합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인간은 그 한계가 명확한 존재이기에 늘 죽음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겸손함’의 명사형 ‘겸손’은 ‘humility’라고 표기하는데 여기에 ‘humiliation’, ‘굴종, 복종’이라는 명사형이 또 하나 있습니다. 곧 ‘능동이냐? 피동이냐?’라는 문제 때문에, 두 가지의 명사형이 다르게 있습니다. 서양식 논리 구조라면 뉴스공장의 겸손은 분명 ‘복종(굴종)은 힘들다’ 이렇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황인철(세바스티안) 변호사님의 30주기를 추모하며
지난 20일에는 돌아가신 황인철 세바스티안 변호사님의 30주기 추모 미사가 안양 천주교 묘지에서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 19일 시민사회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모여 ‘노동 탄압, 검찰 독재, 한미 핵 훈련 저지를 위한 비상 시국회의’를 제안했습니다.
원로들은 한목소리로 “윤 정권은 정치검사들을 앞세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노동자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벼랑으로 밀어내는 불평등·양극화를 강요하고 있다”라며 “윤 정권의 등장과 함께 한국 국민은 검찰 독재와 파국적 경제위기, 그리고 엄습하는 핵전쟁의 위험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다음날 묘지에 조용히 찾아오신 시민사회 원로들의 겸손한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깊은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유가족들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한 어르신께서는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부끄럽습니다”라며 황 변호사님 사모님께 머리를 숙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젊음과 인생을 송두리째 바치셨던 민주화운동의 투사들이 거꾸로 부끄러움과 사죄의 마음을 표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세대가 배워야 할 것이 무언인가를 계속 되뇌었습니다.
황인철 변호사님은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연합 대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등 정의의 실현과 인권회복을 위한 모든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분은 1988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을 창립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무도 변호해 줄 수 없었고, 변호하기를 두려워했던 역사 속의 많은 사건, 예를 들면 민청학련 사건, 지학순 주교 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3·1 구국선언 사건, 동아·조선투위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한승헌 필화 사건, 동일방직노조 사건, YH 사건,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 원풍모방 사건, 강원대학교 성조기 방화 사건, 오송회 간첩 사건, 대우어패럴 사건, 서울 미문화원 사건, 건국대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임수경·문규현 방북 사건, 윤석양 이병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 등을 변호하셨습니다. 모두가 그분을 겸손한 분, 착한 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히 부수어질 때, 더욱 견고하게 다시 건설할 수 있을 것
여기에서 ‘겸손’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는 나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겸손이라 정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희망하는지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사이 걱정스러운 많은 것들은 대통령이 겸손하지 못하다는 데서 비롯됩니다. 기껏해야 5년도 되지 않는 권력을 쥔 사람이 ‘전지전능’, ‘영원무궁’ 할 것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내뱉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둘러대기 일쑤입니다. ‘바이든’을 ‘날리면’이라 우기고,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하고, 문제가 생기면 “국민이 잘못 알아들었다” “이란이 잘못 알아들었다” 나무랍니다.
그리고 바르게 말한 언론들을 탄압하고, 취재기자가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는 당연한 일을 '통 큰 결단'이라 말합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해야 하는데, 요즈음은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고 나라를 더 많이 걱정합니다.
부유한 자들, 권력자들은 하느님의 힘과 섭리를 외면하면서 오직 자신의 힘만을 믿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가난한 자, 배고픈 자, 슬퍼하는 자, 억울해하는 자들은 겸손합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히 고립되어 극심하게 외로운 곳, 친교가 단절된 곳, 아무것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곳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느님의 개입과 은총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얻어맞아 완전히 부수어질 때, 우리가 쌓아 올린 담들이, 성채들이, 업적들이 부서지고 무너져 내릴 때, 우리는 더욱 진실하게, 견고하게, 탄탄하게 다시 건설하고, 치유되고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껏 거짓으로 꾸며온 겸손의 자세와 잘못 설정된 민주주의의 완성에 대한 추구를 천천히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따뜻한 포용의 마음과 관용, 인간에 대한 신뢰와 겸손한 자세,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에게나 신중하고 친절한 삶의 자세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원로들의 겸손과, 돌아가신 황인철 변호사님의 겸손한 삶을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으니 항상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모두 흙(humus)에서 왔기 때문이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칼럼은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