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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계는 꿈이 아니다”
  • 이기우
  • 등록 2023-05-12 17:34:02
  • 수정 2023-05-17 17: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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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토요일(2023.5.13.) :사도 16,1-10; 요한 15,18-21


“때가 찼을 때”(마르 1,15; 갈라 4,4), 아시아의 서쪽 끝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분의 참 모습을 알아보고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그러니까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러 오신 예수님께서 첫 복음을 이스라엘 땅에서 유다인들에게 선포하셨던 까닭은, 그분이 세상의 죄를 없애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려 함이고 또한 유다인들이 아브라함 이래로 하느님의 약속을 받은 민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죄는 이스라엘 안에서도 가득 차 있었으므로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맞이한 소수의 아나빔들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바오로에게 맡겨 복음을 서방에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잘 나타내 주는 대목이 오늘 독서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전한 첫 지방은 지금의 튀르키에 지방입니다. 이 지방은 예부터 소아시아라 불렸습니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기 때문입니다. 대아시아는 동쪽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사도 16,6). 그 이유는 성서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아마도 소아시아를 통치하던 로마제국이 저지르던 세상의 죄가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과연 로마제국은 그제까지만 해도 군사력을 휘두르면서 주변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짓밟았습니다. 무신론적인 역사가들은 ‘로마문명’이라는 말을 쓰면서, 로마의 법과 건축술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만,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황제숭배를 강요하며 그리스도인들을 굶주린 짐승의 밥으로 내어주고 화형으로 불태워 죽이며 검투사의 칼부림에 죽어나가게 만든 야만적인 세력이었을 뿐입니다.


다니엘은 이에 대해 이렇게 내다본 바가 있었습니다: “쇠가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리듯이, 그렇게 으깨 버리는 쇠처럼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고 깨뜨릴 것입니다”(다니 2,40).


또한 다니엘의 예언대로 로마제국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몸소 겪은 사도 요한도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나는 또 바다에서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이었으며, 열 개의 뿔에는 모두 작은 관을 쓰고 있었고 머리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묵시 13,1).


이렇듯 예언자에 의해 예언되었고 사도에 의해 증언된 바와 같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처음으로 향해야 했던 서방 세계의 죄악은 짐승처럼 포악했고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었기에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시고 먼저 로마에 의한 세상의 죄를 없애시고자 복음화의 방향을 서진시키셨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전개된 복음화의 역사에 대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한 바 있습니다: “교회가 제1천년기에는 유럽 대륙에 십자가를 세웠고, 제2천년기에는 아프리카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는데, 이 제3천년기에는 찬란한 문화와 고등 종교의 발상지인 아시아에서 신앙의 큰 열매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그리스도교 제3천년기의 문턱을 넘어가고자 합니다”(교황권고 ‘아시아 교회’, 1항).


아시아의 서남부를 종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복음을 전하는 모범을 보여준 선교사는 프랑스 신부 샤를르 드 푸꼬(Charles Eugene de Foucauld, 1858~1916)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이 다수였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모로코 국경에 있는 가난한 마을에 이들보다 더 가난한 이웃이 되어 주고자 했던 그를 바오로 6세는 ‘모든 이의 형제’라고 불렀습니다(회칙 ‘민족들의 발전’, 12항).


“더 나은 세계는 꿈이 아니다”(79항) 하고 가르친 바오로 6세의 꿈을 힌두 문명권에서도 현실로 만든 또 다른 인물은, 인도 캘커타의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이들을 품위있게 선종하도록 도왔던 알바니아 출신 수녀 데레사(Mother Teresia, 1910~1997)입니다. 그는 “힌두인들이 더 좋은 힌두인이 되고, 그리스도인이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썼을 뿐 섣불리 힌두교도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키려 하지 않고 묵묵히 가난한 인도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유교 문명권인 중국에서 20세기에 중국인들에게 사랑의 모범으로 복음을 전한 인물은 벨기에 출신 선교사 뱅상 레브(Vincent Lebbe, 1877~1940) 신부입니다. 그는 복음정신으로 중국인을 사랑하면서 중국 교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도왔으며, 중국식 이름을 雷鳴遠(뇌명원, ‘멀리 울리는 뇌성’)으로 정하고 중국인같이 행세하고 중국문화를 배웠습니다. 그런 그가 중국인의 가치로 복음정신을 표현한 표어가 전진상(全眞常)입니다.


아시아의 주교들은 이슬람, 힌두, 유교 문화권 등 서부와 남부 그리고 동부의 아시아인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사랑을 증거했으며 가톨릭교회가 시복과 시성 절차로 검증한 바 있고 세상에서도 존경하고 있는 이 선교사들, 즉 샤를르 드 푸꼬, 마더 데레사, 뱅상 레브의 모범을 기준으로 ‘아시아 안에서의 교회의 새로운 존재양식’(a new way of being Church in Asia, 제5차 아시아 주교 총회, 인도네시아 반둥, 1990)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오로의 시대에는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았던 성령께서 이 시대, 복음화 제3천년기에는 바야흐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라고 이끌고 계십니다. 새로운 때가 찬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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