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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현대판 모세들로 우리를 선택해 교회로 부르셨다
  • 이기우
  • 등록 2023-08-15 2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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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간 수요일(2023.8.16.) : 신명 34,1-12; 마태 18,15-20 


세상을 조성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당신을 닮아서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완성해 가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이 사람의 행복이고 구원이며 동시에 하느님께도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때로는 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준비시키기도 하시고, 때로는 여러 사람들이 한데 마음을 모으도록 일을 하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모세의 최후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느보 산 꼭대기에서 장차 열두 지파에게 나누어주실 땅 전체를 보여 주시면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주리라고 약속해 주셨던 축복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이때 모세의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습니다(신명 34,7). 그는 아브라함 성조에게 하느님께서 축복하셨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선택된 인물이었고 특히 이집트 종살이에서 백성을 탈출시켜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초기 40년, 중기 40년 그리고 후기 40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에 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당시 파라오가, 히브리 아기들 중에 사내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파라오 왕실 공주의 양아들로 입적되어 이집트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이집트 왕자로 자라났습니다. 이 기간이 사십 년입니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 그는 스스로 왕자의 특권을 포기하고 미디안 광야로 물러나갔습니다. 


나이 마흔에 미디안 광야로 간 모세는 유목민 아내를 얻어 자식을 낳아서는 가정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목동이 되어 사십 년 동안 양떼를 돌보다가 우연히 호렙산에서 불 타지 않는 떨기를 보고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산에 올라갔는데 여기서 하느님의 엄청난 부르심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7-10). 이때 모세의 나이가 여든 살이었습니다. 


여든 나이에 모세는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대로 응답하였습니다. 형 아론과 함께 파라오와 대적했으나, 파라오가 말을 듣지 않자 열 가지 재앙으로 위협하여 기어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미디안 광야로 탈출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족에게 하느님께서 지키라고 일러주신 십계명을 알려 주고 하느님 백성으로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 기간이 또한 사십 년입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 들으신 대로 백스무 살에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느보 산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모세의 임무는 이제 예수님께서 시작하시고 제자들이 계승한 교회에게 맡겨졌습니다. 그 임무는 여전히, 고난받는 현대의 히브리들을 압제자들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느님 나라에로 해방시키는 이른바 엑소더스 파라다임(Exodus Paradigm)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 중의 하나가 교회 구성원들이 교회의 임무를 숙지하고 서로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느님 나라에로 해방시켜야 하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명심하고 이를 위해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옛적에 모세를 선택하셨던 하느님께서는 현대판 모세들로 우리를 선택하시어 교회로 부르셨고, 마음을 모아 당신이 부여하신 사명에 따른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능력을 청하라고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단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시 말해 복음과 해방의 이름으로 마음을 모아 구하면 이루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옛날 모세에게 해 주셨던 같은 약속을, 즉 하느님도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당신이 하셨던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고 장담하셨습니다(요한 14,12). 


그런데 이 임무를 저버리고 죄를 짓는 형제가 있다면 처음에는 단둘이 만나서 타이르고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설득해 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가 나서서 충고해 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설득하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죄인처럼 여기라는 말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 말씀의 방점은 어디까지나 이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설득에 찍혀 있습니다. 그만큼 믿는 이들이 함께 한다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믿는 이들의 공동체 안에서 현존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자면 중차대한 부르심을 받고 성실하게 응답하면서도 부르심의 성취인 가나안 땅을 눈으로만 볼 수 있었을 뿐 직접 가보지는 못 하고 후계자에게 그 임무를 물려주라는 하느님의 명령까지도 순명해야 했던 모세의 신앙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고난받는 히브리들을 해방시키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는 모든 시대의 모세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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