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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하는 데에 용기를 내십시오.
  • 이기우
  • 등록 2023-08-22 1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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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2023.8.22.) : 판관 6,11-24; 마태 19,23-30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판관 시대 초기에 부르심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드온을 부르신 것은 당신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쌍무적으로 맺었던 시나이 계약을 이스라엘이 당신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일방적으로 위반한 상황에서도 취하신 불가피한 적응 방식이었습니다. 거의 짝사랑 수준의 비상조치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므나쎄 지파 안에서도 작은 씨족 출신에다가 가장 보잘것없었던 그 사람, 기드온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분부를 받은 천사는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 6,12) 하고 말하였습니다. 기드온은 천사가 자신을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니와 자신을 두고 ‘힘센 용사’라고 부르는 말에 당황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힘센 용사란 말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더구나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판관 6,15).


그런데 두 가지의 표징(6,19-20.36-40)을 보고 나서야 기드온은 천사의 말대로 하느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적들과 싸우러 나갈 때 “주님을 위하여!”(7,18) 라고 외치며 백성을 대신해서 나온 군사들에게 가라앉은 신앙을 불러일으켰는가 하면, 전투에서 승리하고 난 다음에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백성들에게 왕위를 사양하여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하느님이시라고 계약 신앙을 상기시켰습니다(8,23).


자본이야말로 이 시대의 우상임을 경고한 바 있는(교황권고 ‘복음의 기쁨)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정의롭고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는 낙수효과 이론을 우상숭배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였습니다.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고 정교한 매커니즘으로 자본숭배자들을 엮어서 현대판 노예로 줄 세우는 이 새 우상은 우리 시대의 기드온들을 ’힘센 용사‘로 불러 세우는 시대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경고하신 이유는 자본의 속성 때문입니다. 자본은 사람을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한 나머지 돈에 눈이 멀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는 멍청하게 만듭니다. 즉, 욕심의 노예로 만들고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부르기 때문에 끝없는 탐욕의 구렁텅이에 빠진 자본숭배자를 자본의 노예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와 재산과 지식과 기술과 꿈 등 우리가 가진 것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임을 깨닫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공유하고 나누는 우리 시대의 기드온들이 돈 세상을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들으면 알고, 똑똑한 사람은 보면 알지만, 답답한 사람은 당해야 알고, 멍청한 사람은 당해도 모릅니다. 하느님 신앙과 우상숭배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듣고서도, 또 올바른 신앙과 우상숭배의 차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듣고서도 아는 현명한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그나마 이에 대한 강론을 글로 보고 아는 사람도 다행입니다. 보면 아는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하고 나서야 겨우 아는 답답한 신자들인데, 대개 이 경우는 신앙과 무신론 내지 자본숭배 사이에 양다리를 걸칩니다. 돈도 벌고 마음의 평화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마지막 네 번째 부류 사람들의 멍청한 행위입니다. 우상숭배 행위가 초래하는 하느님의 벌을 체험하고도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른 채 또 그 멍청한 행위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우리 시대의 ‘힘센 용사’들의 용감한 신앙 증거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할 뿐더러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릅니다. 그리고 그 벌을 받게 되지만 그것이 하느님의 벌인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살아갑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마태 19,2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부유한 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 재산 때문에 답답하거나 멍청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네들은 그 알량한 재산이 자신들을 현명하게 만들어주거나 똑똑하게 해 줄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착각은,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19,24)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이와 같은 대표적 사례는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지 않다가 유산을 물려주는 행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가르치지 않으면 하느님을 모르고, 신앙이 없는 처지에서 유산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이 불로소득을 더 차지하기 위한 분쟁이 혈육 간에 따라옵디다. 그래서 답답하고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판단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기드온이 되어야 할 우리가 보는 표징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듯 답답하고 멍청한 사람들을 심판해야 할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 직분이란,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상실하는 벌이나 새 세상을 준비하는 보람을 잃어버리는 벌을 내리고, 전체를 보지 못하고 바로 눈 앞의 현실에 매달리게 만드는 벌을 내리며, 그들이 사람들 가운데에서 꼴찌임을 언도하는 일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재물을 하늘에 쌓기 위해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수련을 하고, 이웃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수련을 마다하지 않는 상을 받습니다. 이런 상과 벌을 내리는 심판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받은 기드온의 판관 직분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마리아를 ‘복되신 모후’라고 공경하는 뜻도 세상 모르게 복음 진리를 사셨던 마리아야말로 이 심판정의 맨 윗자리에 앉아 계시면서 인간다운 삶의 으뜸이라고 여기는 신앙을 고백하며 이를 전례에서 드러내어 신자들도 이를 따르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선을 행하는 데에 용기를 내십시오. 힘센 용사가 되십시오. 여러분이 기드온입니다.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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