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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관하여
  • 이기우
  • 등록 2023-08-25 16: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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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토요일(2023.8.26.) : 룻 2,1-4,17; 마태 23,1-12


모압 여인 룻은 유다인 가정으로 시집와서 시어머니인 나오미로부터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식 없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나오미의 며느리로 남기로 결심하였습니다(룻 1,16).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아브라함의 후손답게 신앙의 모범을 룻에게 보여주었던 덕분에, 시어머니로부터 참 신앙을 발견한 룻은 하느님 신앙을 받아들였고 또 시어머니의 겨레인 이스라엘 백성에로 귀화하는 큰 결심을 해 낸 것입니다.


나오미의 친척이자 유다 지파 소속으로서 혼인하지 않고 있었던 보아즈도 그 흔한 고부 갈등(姑婦 葛藤)과는 정반대인 이 미담을 듣고 룻의 대담한 선택에 호감을 느껴 관습상 ‘구원의 의무’(룻 4,1-10)를 지키려고 아내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이 의무는 가문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한 재산을 관리하고 혼인관계까지 상속하는 관습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보아즈가 자신의 며느리뻘 정도 되는 룻을 아내로 맞아들여 대를 이으려 하자, 일찍이 유다가 자신의 며느리 타마르로부터 아들 페레츠를 얻었던 고사(古事)를 인용하며 나서서 증인이 되어 줌으로써 축복해 주었습니다(창세 38장; 룻 4,12). 그리하여 룻이 낳아준 보아즈의 아들 오벳이 자칫 끊어질 뻔 했던 유다 지파의 적자 혈통을 이어줄 수 있었고 그 손자가 다윗입니다. 그리고 이 다윗의 후손 중에 예수님을 기른 아버지 요셉이 나옵니다.


일찍이 야곱이 열두 아들 앞에서 유다에게 내려준 축복의 예언(창세 49,8-12)이 요셉으로 이어지기까지 아슬아슬했던 이런 과정이 있었고, 하느님께서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 사이에 이어진 신앙의 끈으로 인간사의 취약한 고리를 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유다와 다윗에게 내려진 축복의 예언이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소명의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정작 구세주의 어머니로 간택하신 마리아와 요셉이 정혼하는 것까지 보시고서 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성으로서야 당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구세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주시고자 인성의 혈통을 끝까지 존중하신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적 섭리를 도무지 몰랐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실현시키는 데 온 정성을 다 기울이셨던 하느님을 본받고자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율법의 조문에 대해서만 해박한 껍데기 지식으로 모세의 자리에 앉아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자 했지만,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마태 23,3) ‘위선자들’(마태 23,13)이었습니다.


더 심각했던 부패상은 예루살렘의 주류로 자처한 그들이 갈릴래아의 비옥한 토지를 사 놓고서는 가난한 농부들에게 소작을 주고 또 고리대금업을 하면서 뒤로 자기네 재산을 불려 놓고 있었다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과부들의 재산을 등쳐먹으면서”(마태 23,14)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마태 23,23) 같은 가치는 헌 신짝처럼 저버리고 있다고 맹비난을 퍼부으셨습니다.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마태 23,4)고 에둘러 비난하신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도덕적인 체 위장을 하느라고, “성구갑을 넓게 만드는가 하면”,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싶어서 “옷자락 술도 길게 늘이고” 다녔습니다(마태 23,5). 게다가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마태 23,6) 이중인격자들이었습니다.


결국 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최고의회의 재판정에서 예수님을 죽이는 데에 결정적인 음모를 꾸미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사두가이파인 대사제 카야파가 야밤에 심야 재판을 열어서 혐의도 못 찾고 억지로 동원시킨 거짓 증인들의 말도 서로 엇갈려서 질질 끌자(마태 26,60), 예수님을 ‘유다인의 왕이 되려 했다는 혐의’를 조작해 내었습니다.


사실 이 터무니 없는 혐의란, 예수님께서 오천 명이 훨씬 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이에 열광한 군중이 “억지로라도 그분을 임금으로 모시려고”(요한 6,15) 쫓아왔었던 상황을 정탐꾼들로부터 전해 듣고 그분께 뒤집어 씌운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내막도 모른 채 빌라도 총독은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마태 27,11) 하고 청맹과니처럼 물었던 것이었지만, 이미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정황을 미리 내다보시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태 21, 33-46)를 가르치신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조상이 된 나오미와 룻 그리고 보아즈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개입하신 하느님의 치밀하고 사려깊으신 섭리에 비하면, 이스라엘 안에서 그 누구보다 경건한 척 위선을 떨었던 바리사이들의 처신은 너무나 허술하고 허접했으며, 사악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우 여러분! 이런 바리사이들의 처신을 따라 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과는 반대로 겸손하게 서로 섬기라고 분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겸손과 섬김의 가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 속에서도 멘탈 갑(甲)으로서 손수 모범을 보이신 덕행에서 여실히 증명되었습니다. 겸손과 섬김은 하느님께서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고리가 되어 주는 부활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집안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물론 장인과 사위 사이에서도 바리사이스러운 처신을 반면교사로 삼고 이 놀랍고 아름다운 미담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과 이루는 통공을 바탕으로 하면, 우리네 일상적인 인간사 안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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