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소개한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미나의 주요내용을 취재해서 쓴 시민언론 민들레의 기사가 있다. 일본행진에도 참여한 정영훈동지가 쓴 글이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가진 핵오염수관련 문제의식을 요약한 것이어서 일독을 권한다.

▲ 귀국 후 10월18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세미나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장면 ⓒ 이원영

그리고 이때의 발제자중 서균렬 서울대명예교수(원자핵공학)를 다시 초청해서 핵실험과 핵오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들었다. 그 때 발제한 내용이 시민언론 민들레에 12월초에 게재되었다.

▲ 서균렬 교수(좌)와의 대담 ⓒ 이원영

서교수의 글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리뷰하면,

"최신형 핵무기들은 핵실험을 필요로 한다. 핵실험은 엄청난 핵오염을 부른다. 플루토늄은 우라늄과 혼합되어 혼합산화물(MOX)이라고 알려진 연료를 생산하여 일본 전역의 원전에 공급하는데 사용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기존 원전들의 저장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약 연료를 재처리하지 않으면, 이들 원전은 저장 한계에 도달하여 운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가정법의 연속이다. 이런 희망을 담보로 후쿠시마 핵폐수의 선험적 투기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핸포드 핵오염 사례를 비추어보건대 러시아도 핵탄두 숫자만큼이나 핵오염이 심각할 것이다. 핵탄두 증강을 획책하는 중국도 마찬가지의 길을 갈 것이다. 다만 러시아와 중국은 내륙의 특정지역에 머무는 데 비해, 미국은 사막이 있긴 하지만 콜롬비아 강을 통해 태평양으로 핵폐수가 흘러든다. 일본은 바다뿐이다. 일본은 이미 1만기 이상의 원자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양으로 추정되는 46톤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롯카쇼는 매년 8톤의 플루토늄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영국 셀라필드 재처리시설 주변 해산물은 오염이 연간 방출량보다는 누적된 총 방출량에 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더 악화되고, 수명이 긴 오염원의 경우 더욱 악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롯카쇼의 존재는 일본의 핵폐기물 이중고를 부각시켰다. 일본 원자로에서 연료의 일부를 재사용하거나 해외에 판매하더라도 여전히 이 모든 핵폐기물을 처리할 장소는 없다. 일본은 깊은 지하 처분장을 짓기 위한 장소가 딱히 없어 모든 핵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실제 계획이 없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롯카쇼 공장 건설은 수 차례 지연되었고, 완공 날짜도 여러 번 연기되었다. 이러한 지연은 몬주의 실패한 고속증식로 폐쇄와 결합되어 재처리의 필요성을 대폭 감소시켰다. 역사는 반복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카쇼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거부하는 치명적인 유산인 미국 핸포드를 결코 복제해선 안될 것이다. 플루토늄 다원주의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 세계는 물론이고, 한국도 일본이 태평양과 동해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오염시키는 대가를 치르면서 동북아의 핵기지국이 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서교수는 핵무기와 관련된 일본정부의 무모함을 통렬히 비판했다. 미국의 핵우산정책의 지속여부에도 근본적으로 의문을 표하고 있다. 미국이 이상해진 것이다. 압도적인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심각한 방사능오염도 불사하는 독선적 논리가 지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아베부터 기시다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기득권층은 미국의 낌새변화에 편승하여 자국의 해양환경과 지구촌 전체의 바다를 파괴의 국면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대로 두면 지구가 위태롭다. 일방적 핵개발프로세스를 저지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조선인 원폭피해자와 그 피해의 유전을 물려받은 후손들의 배상청구권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21년 여름 한국의 합천에서 열린 세미나에서의 필자의 토론원고를 소개한다. 중요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원영] ‘조선인 피폭자’와 후손에 대한 피해보상, 미국의 모순을 치유하는 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대로라면, 일본 최고재판소도 2007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전쟁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실체법적으로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하였다. 전쟁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식민지배하의 조선인 원폭 피해자와 2세 3세들에게 미국은 지금이라도 그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 우리는 배상 받기를 관철시켜야 한다. 이 배상이 이루어지면 인류사의 또 하나의 족적이 될 것이다. 조선인 피폭자와 2세 3세들이 미국으로부터 피해보상을 받을 때 언젠가는 일본 민간인 개개인도 그 보상이 원리적으로 가능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각인되는 권력자측의 핵사용의 위험과 부담이 탈핵으로 가는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지구촌 차원에서 핵이 인류를 위협하는 일을 통제하는 기구와 조직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에 대해서도 일본정부가 잘못 판단하고 있고 미국정부와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이를 용인하는 행태를 보여 온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IAEA는 UN의 통제도 받지 않는 구조이고, 지구촌 인류의 대변인이 아니다. 원자력을 진흥하자는 세력이다. ‘중이 제 머리 못깍는 법’이다. IAEA와는 별개의 통제기능을 기둥으로 하는 세력의 조직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인류는 진화단계로 보면 아직 저차원의 존재다. 권력을 추구한 나머지 스스로를 자멸시키는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이게 진짜 위기다.  

나라에도 행정부와 의회가 있듯이 상호보완적 견제가 있어야 균형 잡힌 의사결정을 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구촌은 지금 절름발이다. UN은 의회기능이 없이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집행부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원자력을 진흥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같은 기구는 UN의 통제조차 받지 않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미국 내에는 금융자본세력의 한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까지 지향해온 바는 자신의 이익이 지구촌의 안위보다 우선한다는 것. 아직 인류는 위기다. 기후위기를 극복한다손 치더라도 이대로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체르노빌 후쿠시마라는 공포의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구촌 민중의 뜻이 작동하는 ‘의회’기능을 갖는 국제적 조직이 있어야 한다."

▲ 후지산을 서쪽에 두고 카나가와현으로 넘어가는 길. 이제 도쿄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며칠만 더 걸으면 도착이다. ⓒ 이원영

▲ 시즈오카현을 경유하는 코스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사진은 어느 큰 다리위를 걸어가는 도중에 내려다보인 주말농장. ⓒ 이원영

▲ 사진으로만 보던 후지산이 드디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산정상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일까. ⓒ 이원영

후지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철에는 산정상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는 의문이다. 지열이 뜨거워진 것 아닌가 하는.

▲ 일본번역자료에 보인 후지산의 단면도. 마그마가 흐르고 있는 길목이 보인다.

후지산의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에는 과거역사의 흔적이 담겨있다. 지구안쪽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뜨거운 용암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자연발생적인 재난만 하더라도 두려운 것인데, 인류는 팔십년간 핵실험이란 명목으로 지구를 괴롭혀왔다. 지층을 때리는 엄청난 충격이 한두번도 아니고 수천번이나 가해졌으니, 지층이 얇은 곳은 구멍이 나도 벌써 크게 났을 것이다. 필자는 의심한다. 그 열기가 고스란히 그 구멍을 뚫고 올라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구멍을 통해서 지하의 유독한 가스가 분출되어 바다생물 대량몰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아닌가. 

인류는 너무나 오랫동안 지구를 망쳐왔다. 특히 강대국이 그렇다. 현재의 기후위기도 이산화탄소보다 지층의 열기가 바닷물을 직접 데우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탄소가 늘어나서 수온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수온이 먼저 오른 후 수증기가 증가하면서 덩달아 이산화탄소가 늘어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밀폐된 주전자의 공기를 가열해봤자 수온은 오르지 않는다. 물을 끓이려면 바닥을 가열해야 한다.

여기에 열오염을 가중시키는 것은 원전의 온배수다. 원전1기당1초에 100톤 가까운 온수를 24시간 내뿜는다. 원자로를 냉각시키느라 기존바닷물보다 7도씨나 데워서 내보내면 그 뜨거워진 물은 바다물과 섞이지 않고 빠르게 바다표면을 도포하면서 널리 퍼져간다. 대기의 탄소가 바닷물에 저장되는 것을 막을 뿐 아니라 바닷속 생태계의 순환적 작용마저 억제함으로써 탄소유발을 촉진한다. 이런 명백한 온배수 배출이 자행되고 있음에도 아직 우리는 그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 시즈오카현의 막바지 코스를 함께 걸은 동지들 ⓒ 이원영

▲ 강풍에 날아가버린 밀짚모자를 동지들이 새 모자로 선물해준다. ⓒ 이원영

▲ 잊을 수 없는 아이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 이원영

이 사진을 찍기 전에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소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가을들녁을 견학하러 왔다. 그 행렬이 마침 필자와 마주쳤다. 필자는 이때를 놓칠세라 '방사능오염수버리지마'의 빨간 수직플래카드가 잘 보이게 팽팽하게 들었다. 그러자 하나둘 플래카드를 올려다보기 시작한다. 이 장면과 글자가 신기한듯 몇몇 아이들은 마침 목에 걸고 있는 패드와 스마트폰으로 필자를 향해 사진을 찍는다. 굉장한 시대다. 

하나둘 찍는 아이가 늘어났다. 그러자 인솔하는 선생님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저지하면서 본래의 이동하는 행렬로 대오를 갖추어 걸어가도록 하기 시작한다.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니 아이들도 걸어가면서도 마주 흔들어준다. 아이들이 지나가고 나서야 저만치 멀어진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

필자를 찍은 아이들은 사진의 내용을 엄마에게 물을 것이다. 결국에는 무슨 뜻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필자는 걸으면서 느낀다. 지난 8월24일 오염수를 방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열흘남짓. 만나는 시민들의 표정이 어두워졌음을. 일본정부는 이정윤선생의 지적처럼 국제법을 어긴 댓가를 치러야 한다. 지구촌에는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에도 바이든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국민은 그 댓가가 커지기 전에 하루 빨리 중단하도록 정부에게 명령해야 한다.

▲ 도쿄까지 88키로 남았다. 나흘 거리다. ⓒ 이원영

▲ 이른 새벽에 혼자 걷고 있는 인물을 만난다.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슬로건을 몸에 걸고 걷고 있다. 걸어서 행진하면서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필자와 비슷하다. ⓒ 이원영

▲ ⓒ 이원영

▲ 오키나와의 辺野古(헤노코)의 위치. 미군기지가 건설될 예정이어서 이를 반대하는 행진이다. ⓒ 이원영

▲ 곳곳에 있는 편의점 덕분에 도보행진이 수월하다. 마실 물은 물론이고 먹을 것과 커피를 시원한 자리에서 마실 수 있다. ⓒ 이원영

지나고 보니 일본의 평균적 지식인의 침묵이 너무나 이상하다. 언론이 문제라고? 요즘처럼 SNS와 1인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파괴에 괴로워 해야할 지식인과 종교인이 침묵하고 았으니 대중 또한 어리둥절 눈치만 보고 있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기성세대의 거짓과 기만이 세상의 법칙인 줄 알고 자랄 것 아닌가? 아이들이 위험한 것은 방사능위험에 둘러싸인 육체뿐 아니다. 정신적인 면도 위험한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미래에 희망이 없다. 일본시민은 스스로 막아야 한다.

▲ 길에서 만난 학생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곧바로 알아차린다. ⓒ 이원영

▲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온 나그네에게 친절하다. ⓒ 이원영

가나카와와현에서 만난 학생들. 왕성한 호기심을 보여주길래 상세히 설명해주고는 기념셀피. 역시 학생들은 어른과 다르다. 이 학생들은 일본정부의 거짓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명언이 있다. '한사람을 영원히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많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속이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언제까지나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속은 것을 안, 이 학생들이 언젠가는 자신을 속인 일본정부과 기득권에 분노할 것이다. 그리고 침묵한 지식인과 기성세대에 분노할 것이다. 그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국토미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