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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삶과 선교 활동, 아시아 대륙에서 새롭게 시작돼야
  • 이기우
  • 등록 2024-08-23 09: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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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간 금요일(2024.8.23.) : 에제 37,1-14; 마태 22,34-40 


오늘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사랑(신명 6,5)과 이웃 사랑(레위 19,18)의 이중 계명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한국교회 초기 순교자들을 복자품에 올리기 위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이야말로 이 ‘사랑의 이중 계명’을 증거한 신앙인들이라고 칭송하면서, 이를 기억하는 한편, 또 이를 계승함으로써 여타 다른 지역 교회들에게 희망을 주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 달라고 당부한 이것이 교황청의 여망을 대변한 메시지였습니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래 교황청이 한국교회에 기대하고 있는 아시아 복음화의 위대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아시아 대륙의 지역교회들에게 희망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일컫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시아의 지역교회들은 한국교회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아 온지 오래입니다. 백 년 박해를 이겨낸 순교 전통뿐만 아니라 평신도 사도직이 교회를 선도하는 이례적인 신앙의 활력, 소수로서도 사회를 주도하는 공신력까지 다 그렇습니다. 아시아 대륙 전체를 둘러보아도 사회의 주류에 대해 공신력 있게 영향을 미치며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교회는 한국교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한류 현상은 그 전조(前兆)일 뿐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은 사랑의 이중 계명을 ‘부활 신앙’과 ‘공동생활 양식’으로 증거함으로써 무수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박해하던 로마제국을 그리스도교화시키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초대교회가 맞닥뜨린 로마제국의 종교는 다신교요 또 그중에서도 황제를 숭배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황제권력으로부터 박해를 받기도 했지만 황제가 개종하면서 박해가 종식되고 신앙이 공인될 수 있었으며 국교로까지 인정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철학적 체계가 없이 원시 종교 일색이었던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과 달리, 아시아 대륙에서는 그리스도교보다 오래된 종교들을 만났으며, 유럽인들의 그리스·로마 문명보다 연륜이 깊은 철학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유럽 선교사들은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등 여타 종교를 우상을 숭배하는 이교 내지 야만적인 미신으로 간주하고는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켜야 할 이교인들로 간주했습니다. 문화적 충돌이 일어나고 박해가 초래된 사정이 이렇습니다. 


1974년 아시아주교회의를 결성한 아시아의 주교들은 사랑의 이중 계명에 따라서 아시아 선교의 역사를 성찰하고 숙고한 지 25년 만에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아시아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대화하는 사랑의 삼중 대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것이 아시아에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새로운 양식임을 1998년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건의하였습니다. 사랑의 삼중 대화란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보여주신 착한 사마리아인으로서의 삶에 바탕하여, 사랑의 이중 계명을 선교 명령에 따라 아시아적으로 해석한 결론입니다. 


즉, 첫째로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아시아의 모든 민족들을 제자가 아니라 이웃으로 삼아야 하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교세확장과 신자증가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세례를 베푸는 선교사들은 물론 세례를 받는 이들도 예수님처럼 살기를 다짐하고 당부하는 진솔한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아시아의 종교들과 함께 진리를 추구하고자 협력하는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유럽 백인들의 문화를 그리스도교 문화로 간단히 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아시아의 문화와도 대화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된 사랑의 문화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오랜 옛날부터 아시아인들은 모든 사물에 깃든 영의 존재를 숭배해 왔으며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이 이 영의 현실에 대해 올바른 진리를 계시받고 있으므로, 진솔한 사랑의 문화 속에서 대화를 해야만 서로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아시아 대륙에는 공포스러운 빈곤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독재와 왕정, 신정체제나 공산체제 등으로 이 빈곤의 미래는 밝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아 사회를 주도하는 엘리트들은 서구화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래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둔하고, 따라서 서구 세계가 이룩한 물질적 성과를 따라 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주교들은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이 종교적 전통이나 문화적 영성에 있어서는 엘리트들보다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들과 대화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아시아의 종교인들이나 엘리트들도 이 대열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아시아 주교들이 건의한 사랑의 삼중 대화와 새로운 존재양식 메시지에 강력한 동의를 표명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보여주신 사랑의 삶과 선교 활동은 이제 제3천년기에 들어선 지금 아시아 대륙에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1항). 


따라서 로마의 복음화를 위하여 초대교회가 증거했던 대로 아시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아시아의 복음화를 이룩하자면, 사랑의 삼중 대화로 새로운 존재양식을 이룩하는 사명이 필요한데, 이 사명을 선도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가 사랑의 이중 계명을 기억하고 희망을 선포해야 할 우리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자면 먼저 우리 겨레 안에서 이 삼중의 대화 선교를 착실하게 선도적으로 실천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홍익인간 문명을 내세우고 있는 전통 종교들과도 대화를 하고, 한과 정과 흥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숨결도 배우며, 흔히 주변부로 내몰리고 있는 가난한 이들과도 대화를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수를 늘리는 일보다 몇 배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와 겨레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살리는 한편 아시아의 복음화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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