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금요일(2024.11.15.) : 2요한 4-9; 루카 17,26-37
가을이 깊어지고 스멀스멀 추위가 다가오면서 김장철이 되었습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들었던 단풍잎들이 제 풀이 지쳐 떨어지면서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끝냈습니다. 11월에 맞이하고 있는 이 위령성월도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라는 전례적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 미사에서 들려 오는 하느님의 말씀도 우리네 인간의 근원적인 정체성을 깨달으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유구한 인류 역사 안에서 이천 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 삼 년 동안 나타나신 구세주의 존재가 말해주듯이,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과 당신의 나라로 이룩하시는 구원은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 잠겨 있다가 하느님의 은총과 우리의 믿음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의 뜻과 말씀을 알아 듣고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때에도 카인의 후예들은 시대의 징표에 나타나 있던 하느님의 뜻을 읽지 못하고 일상 생활 속에 몰두하다가 홍수에 휩쓸려 멸망 당했고,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의 심판으로 파멸되던 때에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전갈을 들을 수 있었던 롯과 그 일가는 간신히 피할 수 있었지만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죄를 저지르다가 모조리 멸망 당했습니다.
더욱 결정적인 상황은,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셔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때였는데, 이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아브라함 이래로 천년 이상이나 하느님을 믿어 온 그들이 정작 자신들을 찾아 오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 역사적인 수수께끼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이래서 결국,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도 구원 받지 못하게 만드는 죄가 됩니다. 이는 행위를 저질러서 짓는 죄가 아니라 인간이 과연 누구인지를 몰랐던 데에서 비롯한 존재의 죄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느님께서 인류를 찾아오신 때를 알지 못하고 자신이 일상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원받는 길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불특정한 사람, 즉 ‘선택받은 부인’(2요한 4)을 수신인으로 가정한 편지에서 믿음과 사랑이 구원의 길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이 찰라적인 인생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과 서로 간의 신뢰와 사회적인 신용을 조화롭게 간직하며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서로 사랑하는 삶이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신앙으로나 신뢰로나 신용으로나 도무지 믿음이 없는 자들이 제법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 없는 그 삶으로 죄를 저지르고 다른 이들, 특히 힘이 없는 이들을 괴롭힙니다. 그들은 남들도 괴롭히지만 정작 자신들이 저지르는 그 죄로 고통을 받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쾌락에 빠지고 돈의 노예가 되며 권력의 종살이를 하는 그 삶이 지옥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호강하고 영화를 누리는 것 같아 보이는 그 삶이 하느님 없이 살아간다는 점에서 지옥입니다. 믿음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멸망입니다.
이런 일상 속의 구원과 멸망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목숨의 진리에 대하여 일러주셨습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루카 17,33)이라고 가르치신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보존하려고 애쓰는 목숨이란 육신입니다. 그리고 믿는 이들이 얻을 목숨이란 영원한 생명입니다. 육신의 쾌락과 영예를 얻자고 일상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육신의 쾌락과 욕망을 죽인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 구원은 우리 인간의 자유와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스스로 하느님을 거부하고 믿음을 거절하는 자들은 버려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절이 하 수상한 이 때에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거절하고 천박한 무속과 주술에 의지하여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 자들이 바야흐로 민심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자들이 받을 운명이란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로 치루게 될 벌이겠지만, 정작 의롭고자 하고 선하고자 하는 이들이 세상의 빛을 비추지 못하면 또 다른 어둠의 세력이 권력의 공백을 차지하고자 할 것입니다.
무릇 세상의 어둠은 진리와 정의의 빛이 비추이기 전에는 결코 스스로 물러가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삶과 일의 현장에서 작고 희미하나마 빛을 비추십시오. 촛불을 드십시오. 그 촛불이 횃불이 되어 세상의 무지와 불신과 죄악의 어둠을 몰아내야만 시대의 징표는 그제서야 드러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