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2024.11.30.) : 로마 10,9-18; 마태 4,18-22
2024년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안드레아는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먼저 부르신 제자입니다. 그런데 그 경위에 대해서는 복음서마다 조금씩 차이나는 보도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서는 형 베드로와 함께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부르심을 듣자 이에 응답하여 따라갔고 곧 이어 제베데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여 따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마태 4,18-22; 마르 1,16-20), 요한복음서에는 원래 요한 세례자의 제자였다가 스승의 천거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 형 베드로를 이끌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요한 1,40-42). 마르코가 기록한 보도에서 한 당사자였던 요한의 기록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요한 1,35-37.40)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제자들이 보인 활동상에 있어서도 공관복음서의 기록 안에서는 안드레아의 활약은 형인 베드로나 야고보와 요한 형제 등 함께 부르심을 받은 동료들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저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예수님께서 종말의 파괴를 예언하시자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지 또 그때에 어떤 징표가 생겨날 것인지를 여쭈었다(마르 13,3)고 언급될 뿐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의 기록 안에서는 돋보이지 않지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실세로 나옵니다. 즉,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 사건 당시에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던 소년을 파악하고 있던 제자가 안드레아입니다(요한 6,9). 그가 어떻게 그 많은 군중 가운데에서 그 소년의 처지와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짐작해 보면, 그는 제자들 가운데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상황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던 듯합니다.
또 멀리서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그리스인들이 필립보에게 면담을 청하자 필립보는 안드레아를 통해 그분께 말씀드렸다는 것을 보아도 안드레아가 대외적인 업무도 관장하고 있었거나 비서실장격의 역할도 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요한 12,20-22 참조). 그가 비록 어부 출신이기는 하지만 한때 요한 세례자의 제자였다는 정황을 감안하면 그의 시국관이 남달라 보일 수밖에 없고 상황 관리 역할을 생각해 보면 업무처리능력도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요한복음서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요한 세례자의 제자로 있다가 스승의 천거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인물이고, 그가 자신의 형인 시몬을 추천했을 뿐만 아니라 시몬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고 수제자로 임명을 받아 제자들을 대표하는 가운데에서도 실질적으로 제자들을 이끄는 중요한 실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의. 제자로 있으면서 의로움의 가치를 대변하는 노선을 걷다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거룩함의 가치를 배우는 사도의 길을 걸은 셈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그리스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할 당시에 그리스어로 ‘그리스도(χριστος)’의 첫 글자인 X자로 된 십자가에서 처형되기를 원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후에도 그를 존경하는 러시아, 스코틀랜드의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안드레아χ의 십자가로서 X자 깃발을 존중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안드레아를 처음에 제자로 부르실 때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고 말씀하셨습니다. 물고기가 어부의 그물에 낚이면 죽을 운명에 놓이지만, 사람이 사도의 그물에 낚이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처지로 구원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새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주어지기 전에는 동물과 다를 바 없이 현세를 살아가다가 죽으면 그만이지만, 이 믿음을 받아들인 후에는 현세에서는 영성을 지닌 육신 생명으로 살다가 죽은 후 내세에서는 육신성을 지닌 영혼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이토록 중요한 운명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고 제자들을 불러 사도로 양성하셨으며, 이 사도들이 교회를 세워 세상 끝 날까지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증언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로마 10,9) 곧 마음으로 믿어 얻는 의로움과 입으로 고백하여 얻는 구원의 실체는, 현세에서는 인생과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거룩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영성을 지닌 육신 생명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얻는 것이요, 죽은 후 내세에서는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리면서 아직 현세에 남아 있는 이들을 돕는 천사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삶의 질이 현격히 높은 차원으로 들어감으로써 고차원의 생명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직분이 바로 사도직입니다.
교우 여러분!
사도 안드레아가 우리에게 비추어주는 빛에서 보듯이, 의로움은 거룩함으로 드높여져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시대적 요청은 중차대합니다. 우리는 주말마다 촛불을 켜서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외침 속에서 하느님의 이끄심을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민심이 천심으로까지 승화되려면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는 의로움의 촛불을 들어서 우리 각자의 삶에서 거룩함의 횃불로 키워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