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늦게 걸려왔습니다. 이탈리아 친구, 지금은 교황청립대학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오랜 길동무 신부입니다. 한국의 계엄령 상황 그리고 노벨문학상 한강의 수상소감을 듣고 감동을 잔뜩 받았는지, 저보다 더 들떠 있는 음성으로 축하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계엄령 뒤에 숨어있는 한 여인, 무속의 힘으로 국정을 농단하는 여사 “킴”을 소환했습니다. 그의 놀라운 통찰력은 “한 여인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이 온통 혼란과 불안의 구렁텅이로 들어갔는데, 한 여인에게서 대한민국은 놀라운 치유력을 보여주며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네”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12.3 계엄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노벨상 수상 중계를 바라보며 인문학의 향연, 축제의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추하고 탐욕스러울 수 있으며, 또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김건희는 2022년 1월, <서울의 소리> 언론과의 통화에서 "내가 정권 잡으면" 이라는 발언으로 큰 논란을 만들었습니다. 대통령 부인은 민간인 신분입니다. 아무런 공적 지위가 없습니다. 권한은 물론 전문성도 없는 김 여사가 한강경찰대까지 찾아가 현장을 지휘하며 ‘이래라, 저래라’, ‘구체적 대응’까지 주문합니다. 그녀의 말 안에는 탐욕과 야망, 권력을 통한 보복이나 제재, 권력 남용에 대한 가시들이 박혀있었고, 그것은 이미 현실화되어 우리를 찌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12.3 불법 계엄으로 국민은 불안의 시간을 보내며 국회에서의 탄핵절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녀는 정치에, 국토개발에, 국정 전반에 개입하며, 천박하고 부끄러운 말들과 태도를 감추질 못했습니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어렸을 적 일기에 적었던 사랑을 인용하며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그녀는 마치 성경의 한 구절같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 이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품게 된다.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라고 말합니다. 문학이 인간을 연결하고 그 안에 깊은 진실을 발견하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소설 쓰는 일은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인간 존재와 삶의 고통에 대한 깊은 성찰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삶의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수상식에 나온 작가 한강의 모습은 세월의 흔적과 자연스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주름과 눈빛, 그리고 꾸밈없는 스타일은 그녀의 내면의 깊이를 반영했고,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삶의 철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외모에 집착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글과 사유로써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겸손한 모습은 내면의 성숙함과 진정성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가? 그녀는 마음 안에서 생각을 굴리고, 말을 굴리며, 세상과 소통했고,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고통받는 이들과 나약한 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자신의 글에 담아내며 그들과 또 자기의 깊은 내면과 소통하고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김건희의 외모는 치밀하게 계산된 돋보이기 위한 과장된 이미지, 가짜 ‘나’였습니다. 보여지는 ‘나’, 남들의 눈에 돋보이는 ‘나’를 만들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고, 경력을 위조하고, 얼굴을 위조하며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려고 위장했습니다. 그녀는 매끄러운 피부,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값비싼 명품 의상과 명품백을 통해 대중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금방 알아챘습니다. 얼굴은 ‘얼의 꼴’입니다, 마음(얼)의 꼴이 얼굴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꾸밈과 위선은 자기 본연의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감추고, 외부의 평가와 기준에 맞춘 ‘위장되고 거짓된 자아’를 드러냈을 뿐이었습니다.
욕망과 초월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
현대 사회는 물질적 성공과 권력을 향한 욕망, ‘겉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작동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어쩌면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중요한 사유와 영감을 던져줍니다.
김건희는 아직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온갖 구설에 휘말려 있습니다. 주가조작,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명품백 수수 등 공적인 권력을 이용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했던 탐욕의 여인으로 대중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김의 ‘보여지는 삶’은 현대 사회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성공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부와 권력, 그리고 화려한 외적 이미지의 이면에는 수많은 논란과 비난이 이어집니다. 그녀를 둘러싼 여러 논란은 욕망을 넘어선 탐욕이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사회적 신뢰를 얼마나 쉽게 잠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면에, 우리는 한강 작가를 통해 완전히 다른 삶의 방향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고통, 억압, 그리고 인간의 연대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가진 내적 갈등과 사회적 비극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희망과 치유의 가능성을 찾아보려 합니다. 한강 작가의 삶과 문학은 물질적 욕망을 넘어선 인간성에 대한 고뇌, 인간 내면의 탐구와 성찰로 우리에게 존재에 대한 깊은 의문을 성숙하고 성장하게 합니다. 여느 수도자나 성직자보다 더욱 깊이 있는 생각과 말과 글을 길어 올렸습니다.
두 여인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한강 작가는 우리가 욕망을 넘어 초월적 가치를 추구해야 함을 일깨웁니다. 욕망은 당장의 성취를 가져올 수 있지만, 초월은 인간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게 합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의 질문은 우리를 압도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며, 때로는 타인을 배제하고 공동체를 희생시키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사람은 인간다움, 연대, 그리고 초월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욕망과 초월 사이에서 우리는 매일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나의 선택은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초월이란 단순히 물질적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사회와 공동체의 삶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물질적 성공과 권력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연대하는 길을 걸을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고, 그러한 선택으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며, ‘나’는 만들어지고 완성될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