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납부이연’제 적용하면 무리 없어
지난 달 '공유부 시대가 왔다' 세미나가 열렸고 금민 소장의 소개글이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고된 바 있다. 본고는 토지공유부이자 최근에 관심사가 되고 있는 보유세에 대해 정리한 글이다.
로마시대의 도시들을 접하다 보면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귀족이나 부자들이 아낌없이 공공시설을 지어서 국가에 희사한다는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아피아가도나 콜로세움이나 공중목욕탕, 트레비분수 등 웬만한 공공시설은 세금이 아닌 기부에 의해 지어졌고 시민들은 그 혜택을 누구나 누렸다는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기부자의 명예도 있었지만 그 바닥에는 자신이 획득한 부가 로마의 시민들 공동의 노력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암묵지가 작동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당시에는 그러한 공유부일지라도 계정이 정확하게 구분될 수 없었고, 귀족이나 부자들의 호주머니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있었을 터이다. 그런 상황을 서로가 인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관습이었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그런 공유부 배분의 행태와 구조가 로마 전성기의 사회적 분위기였으리라.
반면 오늘날에는 그런 기부정신은 옅어지고 거꾸로 ‘봉이 김선달’식의 독식이 행세하는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융부문이다. 즉, 사기업인 영업은행이 ‘대출’이라는 행위를 하면, 그 자체가 ‘화폐발권’ 행위가 된다. 금고에 돈이 없어도 대출장부에 기록하는 걸로 화폐가 발행되는 것이다. 국가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지급준비율’이라는 정책으로 보증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업은행은 이자수입을 올린다. 원금이 상환된 후에도 그 이자수입은 은행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국가가 보증해줌으로써 발생한 이익인 공유부(共有富, Common Wealth)가 독식되는 상황이다. 이것이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다. 그런 폭리가 일상적으로 발발해왔기에 2023년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횡재세’라는 이름으로 이의 회수를 추진하려고 했던 것이다.

공유부를 독식하는 ‘지대형 봉이 김선달’
토지(부동산) 지대 상승분의 독식도 현대판 봉이 김선달의 사례다. 지가앙등은 공동체 전체의 노력에 의한 공유부다. 물과 공기 같은 자연물이면서도 점유가 가능한 한정재인 토지는 개인의 노력으로 값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인구집중이나 도로개설 문화환경의 조성 등 공동체의 노력에 의해서 주로 값이 오른다. 적절한 수준에서 그 이득이 환수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소유했다는 그 자체로 공유부가 독식되고 있는 것이다.
세금을 혐오하는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조차 부동산보유세는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부동산보유세 부담은 이스라엘에 비하면 약 1/8, 미국에 비하면 약 1/6, 캐나다에 비하면 약 1/4에 불과하다. 특히 윤석열 정권에서 실효세율이 크게 떨어졌다. 서울은 비싼 아파트라도 세금이 뉴욕의 1/9~1/4 수준인 것이다. 공짜나 다름없다. 투자가 아닌 투기성 자금이 몰린다. 한마디로 한국전체의 경제역량이 강남땅으로 집중되어, 공유부가 되어야 할 몫이 개인 혹은 법인의 호주머니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을 방치하면 더 심각한 문제는, 양극화뿐 아니라 경제활동주체(법인)들이 재투자에 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경제선순환효과가 소멸하는 것이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도 보유세의 합리성을 강조하면서 최근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직시한다.
“종합부동산에는 2024년 기준 주택보유자 1,562만 명 중 2.9%에 불과한 46만 명 정도만이 세금을 냅니다. 이에 비해 재산세는 일정 가액 이상의 주택 소유자가 모두 내는 매우 광범위하게 부과되는 세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산세를 강화하는 것은 전국적으로 어마어마한 조세저항을 불러 일으킬 위험성이 있습니다. (~중략) '똘똘한 한 채'를 포함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종합부동산세의 중과밖에 없습니다. 1주택이라 할지라도 초고가 주택에 대해서는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다주택자에게도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고가의 1주택자에게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해서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물로 내놓을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합니다. 그러나 그런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높은 세금부담이 수반된다는 사실이 지불하려는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낼 것이기 때문에 똘똘한 한 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재산세는 주택 하나 하나에 개별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이기 때문에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투기 목적의 다주택자에 세금을 중과해 살지 않는 주택을 팔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재산세보다는 종합부동산세가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세금임이 분명합니다.”
▲ OECD 30개국의 부동산보유세 실효세율 (자료: 토지+자유연구소, 토지+자유 통계)이 교수의 내용과 유사하게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질타한다.
"경제학 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조세와 부동산 가격 안정화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견해는 명백히 틀렸다. 세금의 목적을 국가 재정 확보로 한정하고 세금을 다른 제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수요 과다(투기수요를 뜻하는 것 같다)로 집값이 오르면 수요는 손대지 않은 채 공급을 늘려서 대처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현대의 경제학 교과서 가운데 세금의 목적을 국가 재정 확보로 한정하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세금은 재정 확보 외에 경제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어디에든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세금 외에는 없다."
공유부를 합리적으로 환수하고 배분하는 국토보유세
그러면서 전 교수는, 지난 10월의 ‘공유부 시대가 왔다’ 세미나에서 토지공유부를 환수하는 방안으로서 ‘국토보유세’의 개념을 제시한다.
"낮은 보유세 부담은 부동산 소유주로 하여금 자신이 소유하는 토지를 완전한 사유물로 여기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토지의 공유부성을 강화하려면 일단 부동산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보유세 강화는 어떤 방법으로 추진해야 할까? 현행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동시에 강화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올리는 것이 옳은가. 그것도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보유세 강화를 추진하는 것이 옳은가?
재산세를 강화하는 것은 집 한 채 가지고 있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세 부담을 늘리는 것이어서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초과다 보유자를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늘리는 것은 재산세를 강화하는 것보다 정치적 부담은 적지만, 세수 증대 효과에 한계가 있고 문재인 정부 후반에 그랬던 것처럼 사회 기득권층으로 하여금 똘똘 뭉쳐 강력한 조세저항에 나서게 할 우려가 있다."
전 교수는 2022년에 자신이 발표한 논문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보유세 강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해왔다. 그 핵심은 현행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국토보유세를 도입하고, 세수(정확히는 세수 순증분)를 전액 모든 국민에게 1/n씩 기본소득(토지배당)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세금을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로 명명했다. 국토보유세는 전체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 사용료를 걷어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가진 전체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준다는 점에서 토지 공유부화 원리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국토보유세의 주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건물에는 과세하지 않고 토지에만 과세한다. 둘째, 극소수의 부동산 과다보유자가 아니라 전체 토지 소유자에게 부과한다. 셋째, 현행 보유세 제도가 채택하고 있는 용도별 차등과세를 폐지하는 대신 용도에 상관없이 모든 토지를 인별 합산하여 과세한다. 과표구간과 세율은 당연히 한 종류다. 단, 농지나 공장용지 등 생산적 용도로 사용되는 토지는 합산 시에 일정 비율을 할인하는 방법으로 특수 사정을 반영한다. 넷째, 국토보유세 도입에 따른 세수 순증분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분배한다.
국토보유세의 본질에 해당하지는 않고 과세 기술상의 고려에서 나온 몇 가지 부차적인 원칙이 있다. 첫째, 지방 보유세인 재산세는 현행대로 유지한다. 단, 재산세는 응익세(應益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점차 비례세로 전환해 간다. 둘째, 과세표준 산정 시에 사용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은 폐지하고, 공시지가 자체를 과세표준으로 삼는다. 셋째, 보유세 이중과세가 되지 않도록 재산세 납부액 중 토지분을 환급한다. 넷째, 현재의 종합부동산세 금액만큼을 따로 떼어서 계속 부동산교부세로 지방자치단체에 배분한다."
그리고 국토보유세 운영의시뮬레이션 결과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국토보유세를 도입해 전체 부동산보유세(재산세 포함) 실효세율을 0.37~0.76%로 높이고, 세수 순증분을 전액 기본소득으로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면, 순수혜 세대가 전체 세대의 83.4~85.9%에 달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비례세를 가정하고 계산한 결과로 만일 누진세 구조를 도입한다면, 순수혜 세대의 비중은 90%를 훌쩍 넘어설 것이다."
과연 그렇다. 공유부의 환수와 배당이 합리적으로 선순환하면서 시행되는 흐름이다. 종부세는 혜택을 입는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소수 기득권층의 조세저항을 막아설 사회세력이 등장하기 어려웠지만 국토보유세는 순수혜자가 될 90% 이상이 되면 다르다. 대다수 국민은 소수의 순부담자들이 벌일 조세저항을 막아설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처럼 납부이연의 방식도 가능하도록 하자
보유세에 대해 반발하는 이들의 주장을 보면, ‘보유세는 미실현 소득이므로 과세가 부당하다’는 것이지만 지가가 오르면 금융담보능력도 상승하여 실효적 혜택이 발생하고 있으므로 그 주장은 옳지 않다.
다만 과세 방식에서 현금징수와 납부이연(사후납부)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이 선택의 운영 여부가 실제적인 저항을 최소화할 것이다. 미실현소득에 대한 과세이므로 원리적으로는 현금징수보다 소유권의 변동이 발생했을 때 징수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양도세로만 징수하는 것은 누적된 불로소득 전체가 아닌 거래시점의 신고가액에 의해 좌우된 사적인 소득이므로 보유세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기 십상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과거 민주당 정부의 실패 때문에 보유세 현실화에 주저하고 있지만 그 실패는 징수의 방법이 세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징수가 원리적으로 이치에 합당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징수방식을 어떻게 하고 있을까? 현금징수가 아닌 납부이연( Deferral) 방식도 꽤 많이 채택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는 특정 계층의 납세 의무자가 보유세를 당장 현금으로 납부하는 대신, 소유권 이전 시점까지 납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운영한다. 주로 저소득 고령층이나 장애인 등 유동성(현금 흐름)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계층을 대상으로 납부 연기된 세금과 그에 따른 이자가 매년 누적되어 해당 부동산에 대한 조세 담보(Tax Lien)로 설정되는데, 누적된 연기 세금과 이자가 주택 공정 시장 가치(Fair Cash Value)의 일정 비율(예: 50%)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텍사스주와 일리노이주는 고령자 또는 장애인 등에게 주택 보유세 납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세금은 취소되지 않고 연 3~5%의 이자와 함께 누적되며, 소유자가 더 이상 해당 주택에 거주하거나 소유하지 않을 때 납부한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덴마크가 보유세 납부이연 제도의 선구자다. 65세 이상의 납세자 등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에게 토지세(Land Tax) 납부를 연기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 연기된 세금은 해당 부동산에 대한 담보(Lien)로 설정된다. 거래나 상속 등 소유권 이전 시점에 청산된다. 아일랜드도 소득 기준에 따라 전액 연기(Full Deferral) 또는 부분 연기(Partial Deferral, 50%)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북미와 유럽의 납부이연 제도들을 적용하면 고가의 ‘똘똘한 한 채’를 가진 자에 대해서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보유세를 과세하고 유연하게 납부토록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매년 평가해서 매기는 보유세는 그 자체로 지가안정에 유효하고 세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공유부가 독식되는 일도 막는 것은 물론이고, 국토보유세 개념으로 가면 분배의 정의가 실현된다.
전강수 교수는 해방 직후부터 논의되어 6.25 직전에 시행된 농지개혁을 높이 평가한다. “농지개혁에 의해 대한민국의 모든 농민은 자기 땅을 소유함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평등지권을 누리게 되었다. 이 권리를 갖게 된 수많은 농민들은 그 돈으로 자녀들을 공부시켰다. 농지개혁으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교육이 발전해 우수 노동력이 대거 양성되었으며, 신흥 자본가도 출현하였다. 농지개혁은 한국경제의 놀라운 고도성장을 가능케 한 ‘아래로부터의 동력’을 창출했던 것이다.” 즉, 한국의 경제성장은 교육열에 의한 것이고, 국민 전체에 걸쳐 평균적인 높은 교육수준은 바로 농지개혁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공유부를 소수가 독식하지 않고 공유부 배당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면 공유부의 환원도 원활해지기 마련이다. 가진 자는 공유부를 독식한다는 불명예도 벗을 수 있고 기부와 비슷한 보람이 주어질 수 있다. 마치 로마의 귀족이나 부자 같은. 이젠 보유세 시행을 자신 있게 추진하자.
이원영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