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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망령' 되살리는 신규 원전 건설
  • 이원영
  • 등록 2026-01-29 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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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마디로 자본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 있는 듯하다.    


10여 년 전 4대강 사업을 돌아보자. 정부는 “강을 살린다”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거대 건설자본에 수조 원을 쏟아붓는 정책이었다. 감사원은 당시 국토부가 대통령실의 “운하 재추진 대비” 지시에 따라 사업 마스터플랜을 세웠다고 밝혔다.  


경부운하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대형 건설사들이 그대로 4대강 사업에 뛰어들어 담합했으며, 공정위는 8개사에 과징금 1115억 원을 부과했다. 낙찰률은 평소의 두 배에 가깝고, 22조원 예산이 건설사로 흘러들었다. “강살리기”라는 구호 아래, 정치권과 자본이 서로를 먹여 살리는 공생 구조가 작동했다.  


이제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이 그 망령을 되살린다. 찬성론은 탄소중립과 전력수요 증가를 이유로 하지만, 반대론은 송전망 제약·입지 충돌·재정 부담 등을 들어 “또 다른 토건 프로젝트”로 본다.    


가장 눈에 띄는 현실은 송전망 포화다.  


2024년 제도 개편 이후, 인천에 신청된 24개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모두 “전력망 여유 부족”으로 불허됐다. 동해안의 송전망 적정용량은 11GW 수준인데, 신한울 2호기 가동 전에도 13.6GW의 발전설비가 얹혀 이미 과포화 상태였다.  


2025년 상반기에는 전국에서 약 160GWh의 전력이 송전 제약으로 유실됐다. 수도권으로 향하는 남서부 송전선로도 포화되어 호남 지역의 태양광 설비는 역으로 감발 조치를 받는다. 정부는 70조 원 규모의 송변전 설비 확충을 예고했지만, 주요 사업 절반 이상이 아직 착공조차 못한 상태다.  


이 상황에서 원전 2기가 추가되면, 실제로는 가동 시점보다 공사비 집행 시점이 더 중요한 구조가 된다. 송전망 완비 전에 준공되는 원전은 ‘돌리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짓기 위한 사업’이 된다. 4대강을 추억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사진출처=기후에너지환경부)


양당정치와 자본 포획의 구조  


한국의 거대 양당은 단순한 정치조직이 아니라 거대 자산을 운용하는 기업형 시스템이 되었다. 막대한 선거비용을 감당하느라 정당은 시민이 아닌 자본의 후원에 의존하고, 자본은 그 대가로 정책을 통제한다.  


정치가 자본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정치를 고용하는, 도덕의 전도가 일상화되었다.  


정치에 돈이 필요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돈의 주인이 누구냐이다. 지금은 대기업과 재벌의 돈이다.  정치의 생명줄을 시민의 부로 다시 물려주지 않는 한, 국토 정책과 에너지 정책은 계속 자본의 논리에 끌려다닐 것이다. 


이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하나, 바로 ‘사적 자본’에서 ‘공적 공유부’로의 대전환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공유부 정치'는 무엇인가  


공유부(共有富) 정치는 시민이 함께 만들어낸 부를 기반으로 정치의 재정을 꾸리고, 그 결정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 구조를 뜻한다. 공동체가 축적한 부 중 누구의 독점도 허용되지 않는 몫, 곧 모두의 몫을 정치의 토대로 삼는 것이다.  


이는 이상론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미 실행 중인 '돈의 주인을 바꾸는' 제도적 실험이 존재한다.  


1. 시애틀의 민주주의 바우처 제도  


시애틀은 모든 시민에게 매년 100달러치 정치 바우처를 지급한다. 시민은 이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줄 수 있고, 후보는 시민 바우처만으로 선거자금을 마련한다.  


정치의 생명줄이 기업에서 시민으로 옮겨간 셈이다. 한국에서도 시민 1인당 연 10만 원 상당의 바우처를 지급한다면, 정당 재정의 판도는 완전히 뒤집힐 것이다.  


2. 뉴욕의 공공 매칭 펀드 제도 


뉴욕시는 10만 원 이하의 시민 기부금에 정부가 6~8배를 매칭해 준다. 소액의 기부가 모여 대규모 후원금보다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이로써 정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여성·청년 후보의 비율도 늘었다.  


3. 공유부 배당의 활용


알래스카주는 석유 수익을 모아 ‘영구기금’을 만들고, 모든 주민에게 매년 배당한다. 시민의 기본소득이자 자원의 정치적 분배다. 한국 역시 부동산 지대나 금융이자를 공유부로 보고, 정책기금과 정당 보조금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당이 기업후원 없이 서는 재정 독립의 토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정권 구조를 바꾸는 길은 시민의회 실험과 제도권의 병행  


그러나 재정의 공공화만으로는 정치 포획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 정치 결정 자체가 폐쇄된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주목받는 제도가 추첨 시민의회다.  


아일랜드의 시민의회는 낙태금지 조항처럼 해묵은 갈등 사안을 99명의 무작위 시민에게 맡겼고, 숙의 과정을 거쳐 헌법 개정을 권고했다. 이 권고안이 국민투표로 이어져 66% 찬성으로 통과됐다.  


프랑스의 기후 시민의회 역시 150명의 시민이 9개월간 숙의해 탄소감축 정책 149가지를 제안했다. 일부만 수용되었지만, 정치권의 독점적 의사결정을 흔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에서는 지역 에너지 시민의회와 협동조합이 결합해 분산형 에너지 전환을 이끌고 있다. 그 과정에서 로비자본 대신 시민집단이 정책의 실질적 주체로 부상했다.  


이 제도는 기존 의회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도권 의회와 병행해 작동하는 보완적 축으로서 의미가 있다. 시민의회가 정책 초안을 만들고, 제도권 의회가 이를 심의·입법화하거나 국민투표와 연동하는 방식이다.  


이런 2중 구조는 숙의와 대표의 기능을 상호 보완하게 만들고, 양당 정치가 독점해 온 정책결정의 폐쇄성을 완화한다. 지방정부 단계에서 시범적으로 운용한다면, 시민참여와 제도권 정치의 접점을 제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정치를 시민의 손으로 


정치는 더 이상 돈 가진 자들의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4대강의 망령이 신규 원전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지 않게 하려면, 사업 논리의 수술이 아니라 정치 구조의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  


정치의 재정적·의사결정적 기반을 사적 자본에서 공적 공유부로 옮길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공유부 정치는 꿈이 아니다. 시애틀, 알래스카, 아일랜드, 독일의 경험이 그것을 입증한다. 한국에서도 지방정부 차원의 시민 바우처와 시민의회를 시범 운영하고, 효과를 확인한 뒤 국회와 중앙정치로 확장할 수 있다.  


그럴 때 국토는 투기의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에너지는 자본의 전유물이 아닌 생명의 기반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치권에 묻자. 당신들은 누구의 돈으로 정치를 하고 있으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이젠 초심으로 돌아가자. 공유부의 시대는 이미 문턱에 와 있다.  시민의 상상력이 민주주의의 다음 문을 연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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