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균태 신부의 오늘 미사 (15.08.16)
  • 이균태 신부
  • 등록 2015-08-16 11:07:28
  • 수정 2015-08-16 12:05:58

기사수정


예수님께서 언젠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 여러분이 겨자씨같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저 산더러 이리 옮겨지라고 말하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 오늘날 천주교 신자나 개신교 신자나 겨자씨같은 믿음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도로공사에서 앞 다투어서 스카웃해가려고 난리를 떨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울산-영천 간 경부 고속도로 확장공사에 벌써 투입이 되었을 것이고, 벌써 몇 년째 공사 중인 울산-포항 간 고속도로도 이미 다 뚫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 실제로 산이 옮겨진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믿기는 하지만’, 더 이상 경탄하지는 않는 것 같다. 놀랍고도 중대한 사실들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되어버릴 만큼 ‘타성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어떤 놀라운 사건도 우리 생활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그저 타성에 젖어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우리 삶의 힘의 원동력임을 알지만, 그 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자주 잊고 산다. 쌀 한 톨, 한 톨이 농부들의 피와 땀이 어려 있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그 밥 안에 농부들의 ‘얼’과 ‘정신’과 그들의 ‘정성’이 들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나 밥을 정성스러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지는 않는다.


최첨단 냉장고에다, 최첨단 밥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물들이 너무나도 풍족하다 보니, 먹다 남은 음식물이 썩어 뭉그러진 채로 버려지고 있다. 그 음식물 찌꺼기로 말미암아 환경이 오염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먹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6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많은 돈이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밥의 소중함을, 밥의 고귀함을 쉽사리 잊는다. 그리고는 배가 부르니까, 더 이상 못 먹겠다 하고는 오늘도 밥공기에 두어 숟가락분의 밥알들을 남겨 버리고, 반찬들을 남겨서 버린다.


이러한 밥 이야기는 성체성사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아주 잘 드러내주고 있는 듯하다. 모든 일들이 일상화되어 버리고, 타성화 되어 버려서 놀랍고도 중대한 일조차도 그저 한때 지나가는 일들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성체 성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ocn 방송에서 옛날에 방영했던 영화들을 재탕, 삼탕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없는 것 같다.



입으로는 머리로는 미사를 통해, 미사 안에서 저 생명 없는 빵과 포도주가 생명 있는 하느님의 아들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것을 믿고, 또 그렇게 알아듣지만, 그 성체를 받아 모시는 이들도 그 성체 덕분에 자신들의 몸이 성체가 되고, 자신들의 피가 성혈이 된다고 믿고, 또 그렇게 알아듣지만, 그러한 성변화가 얼마나 엄청난 사건인지,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그래서일까? 성체성사에 참례함으로써, 곧 성체를 받아먹음으로써 그리스도에게 결합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이 진리는 결코 훼손될 수도 없고, 모독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진리가 실체화된 우리, 성체가 된 우리는 이 땅의 현실로 말미암아 훼손당할 수도 있고, 모독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성체가 되어 살아가듯이, 적어도 천주교 신앙을 고백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똑같이 성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땅의 현실, 성체가 된 사람들이 모욕을 당할 수도 있고, 인간 이하의 대우를 당할 수도 있는 이 땅의 현실 속에서 나만 모욕을 당하지 않으면 되고, 나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성체가 되어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모독하는 일이고, 자기 자신을 인간 이하로 대우한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신앙인들은 미사를 통해, 미사 안에서 성체와 성혈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그 영성체를 통해 내가 네가 우리들 모두가 또 하나의 예수로 변화된다는 이 진실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 믿음은 성체를 영하는 우리들 모두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예수로, 마리아로 변모될 것임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며, 생각하면 할수록 오묘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만 있어도 산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일이 생기는 것처럼, 성체 성사에 대한 믿음은 성체를 받아 모시는 모든 사람을 예수로, 마리아로 변화시키는, 그야말로 인간의 신성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이 믿음은 또한 희망과 사랑을 가능케 하는 원천이 된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부활과 종말에 대한 신앙. 죽더라도 우리는 부활할 것이며, 세상 마지막 날에 우리의 주님께서는 모든 악한 것들을 쳐부수고, 이 세상을 이기시는 분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신앙, 이 신앙이 우리를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하고,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영성체를 두고 우리가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하고 우리가 사랑을 그만 두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하느님의 아들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빵이 되어 우리에게 먹히기 위해 다가오는 하느님의 사랑임을 깨닫게 한다.


그 빵을 먹으면서 내가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신앙이라는 은총에 힘입어 내가 희망의 사람이 되고, 사랑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내팽개치고, 그저 마음의 평안이나 얻으려고, 그저 현세의 복락이나 좀 얻으려고 신자 노릇하며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이런 기도를 바치고자 한다. 나의 기도에 여러분도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


주님, 저희는 오늘도 당신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신의 몸을 받아 모시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모여왔나이다. 당신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저희도 당신을 따라 성체가 되기 위해 여기 이렇게 모여왔나이다.


이러한 저희들에게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시며 희망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로 하여금 눈물 나도록 서러운 이 세상, 온갖 악이 창궐하고 있는 세상, 거짓과 불의와 차별과 모욕과 업신여김이 난무하는 세상을 아름다운 세상, 당신의 나라를 닮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