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2일 해남 두륜산 일지암에서 <자전에세이 쓰기 템플스테이>를 4박 5일간 진행한 일이 있습니다. 법인스님은 이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냈을 뿐만 아니라 일지암 전체를 참가자들에게 온전히 베풀어주었습니다. 참가자의 구성은 다양했습니다. 고위 공무원, 교장, 중소기업 경영자 출신에서부터 직장인, 주부, 귀농자, 대학생까지.
아침저녁 예불을 올리고 스님 말씀을 듣고 함께 밥을 지어 먹고 아침저녁으로 두 번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그것을 글로 옮겼습니다. ‘내가 과연 글을 쓸 수 있을까?’ 스스로 믿지 못하던 사람들까지 꾸준히 펜을 움직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펜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법인스님 앞에서 발표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소기업 경영자 이 선생님이 먼저 발표했습니다. 담담하게 어머니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던 목소리가 이내 깊이 잠겨 버렸습니다. 사이사이 울먹임이 느껴졌습니다. 예순을 넘겨 눈물조차 말라버린 줄 알았던 분이 말입니다.
공기업 직원 이 선생님은 단편소설 가까운 분량의 글을 썼습니다. 장티푸스로 걸을 수조차 없게 된 어머님이 다 나아 꽃신을 신고 자신 앞에 다시 서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모셔야 하는 이유로 사귀던 여자들을 떠나보내고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된 사연을 읽어가는 대목에선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귀농자 홍 선생님은 자신이 아이를 때린 사건을 이야기하며 통곡했습니다. 글로써라도 아이에게 사죄를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그의 고백과 아픔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꼭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모두 삶의 민낯을 마주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민낯을 두려움 없이 똑바로 바라보고 모두에게 기꺼이 고백한 시간이었습니다. 내 인생은 도대체 어디만큼 왔을까?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지암을 떠나 각자 삶터로 돌아가는 그들의 얼굴이 밝고 가벼워 보였습니다.
백승권 ㅣ 화쟁문화아카데미 상임운영위원, 백승권글쓰기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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