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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시민칼럼] 새로운 삶은 가능한가
  • 편집국
  • 등록 2016-02-17 10: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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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다. 설과 졸업, 입학의 이 달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다짐을 준다. 그러나 새로운 삶은 시기에 관계없이 늘 우리의 주변에서 선택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작가 어슐러 K. 르귄은 SF소설로 유명하지만 그녀 작품 속에는 인류의 문화적 현상이나 사회 체계에 대한 사유가 들어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인터뷰에서는 종종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소신 발언’을 볼 수 있다. 단편소설「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단순한 이야기면서 독자에게 커다란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유토피아인 오멜라스를 묘사하면서 시작되는데, 그곳은 이성적이고 평화로우며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 그런데 단 하나, 지하실에 어린아이 한 명이 가둬져 있다. 아이는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는 존재(“it”)다. 아이는 벌거벗었으며 옥수수 가루와 기름 반 그릇이 그에게 주어지는 하루의 식량이다. 아이는 자신이 왜 이곳에 갇혀 있는지 모르며 내보내주기를 애원하지만, 이 아이 한 명의 희생이 오멜라스의 행복을 보장하기에 모든 사람들은 그 아이의 존재를 알면서도 침묵한다. 공리주의적 계약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주 긴 침묵에 잠겨 있다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아이를 구해 주느냐 그대로 두느냐의 이분법적 선택이 아닌 자아가 고통 받는 여정인 제 3의 길을 선택한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을 가졌다. 유토피아를 떠나는 사람들은 유토피아란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오멜라스에 몰입했던 독자도 결말에서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떤 삶의 선택을 할 것인가?


새로운 삶의 방식은 도처에 깔려 있고, 나는 인문적 사고가 그것이라 믿는 사람이고, 그것은 문학 작품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지난달부터 사간동 시민행성에서 황현산 선생님의 ‘상징주의의 새로운 이해’라는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작품을 읽으면서 상징주의에서 초현실주의를 느껴보고, 현대시와의 접점까지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오십 명 가까이,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시를 읽는다. 문학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읽기’가 아니라 ‘사건’이다. 작품과, 그것을 읽고 있는 우리 내면의 마주침이란 사건. 강의가 끝나고 그 좁은 공간에서 각지로 흩어지는 모두의 뒷모습에서 나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본다. 작품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소중히 곱씹는 것,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이 이 ‘헬조선’에서 당당히 새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



정소연 ㅣ 시민행성 청년위원, 대학생



[필진정보]
화쟁시민칼럼은 화쟁문화아카데미(http://goo.gl/1UX8Y9)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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