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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몇 살까지 사회주의자여야 하는가?
  • 전순란
  • 등록 2015-09-15 15: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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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4일 월요일


총각이 대문을 여는 소리가 딸깍 들린다. 이른 새벽이다. 이어서 골목길을  뛰어가는 발걸음 소리. 오늘도 늦었나? 그렇다고 잠이라도 푹 잔건 아닐 게다. 집안 청소를 들먹이면 “이모님은 제가 제일 게으를 거라고 보시죠? 그래도 제가 제 친구들 중에서는 중간은 간다구요. 중용(中庸)이라고 아시죠? 저보다 게으른 친구들이 아주 많아요.”라면서 너스레를 떤다.  


걔의 방은 킹사이즈 침대가 들어가는 크기니까 작은 방은 아니다. 게다가 웬만한 것들은 붙박이장으로 들어갈 수 있어 깔끔하게 정리할 만한 환경인데 요즘 걔 방은 모든 의상이 거치대에 걸려 있고 책상과 TV 외에도 운동기구들이 들어차더니 드디어 자전거까지 방안으로 들어와 있다!


“어째서 마차(馬車)까지 방안으로 들여다 놓았느냐?”니까 자기가 소유한 가장 비싼 것이 비바람을 맞고 한데에 서 있는 게 너무 가슴 아파서란다(저런 감성으로 말하자면 제 엄마 정옥씨를 닮았다). 그가 첫 차로 마티스 한 대 새 차로 사면 그것도 방안에 들여다 놓을까?


그 섬세하고 여리고 착한 마음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급여가 적다고 다른 회사로 옮겨간 친구들이 자꾸만 전화해서 자기네 회사로 오라고 유혹하나 본데 자기는 사장이 자르기 전에는, 회사가 망하기 전에는 그대로 있을 테니까 그런 일로는 전화하지 말라고 자른단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으로 충실하지만 마냥 무르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월급은 적게 줘도 줄 날짜에 칼날 같이 달라는 조건을 사장한테 요구할 줄도 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서 대기업에 들어가서도 일년을 버티는 젊은이가 매우 적다는 요즘 세태에서 보기 드문 젊은이다. 오늘 저녁에도 9시에 돌아와서(평소에는 자정이 자 되어서 퇴근해 들어오니까 오늘은 훨~ 빠른 퇴근이다) 나랑 일층 대청소를 했다. 어제 가구 대이동으로 집안이 난장판이었기 때문이다.


보스코는 내일 아침 화성 봉담에서 천주섭리 수녀회에서 행할 강연 땜에 오후에 전철로 떠났다. 모처럼의 여가를 얻은 나는 ‘모자 체칠리아’를 만나기로 했다(우리가 아는 지인들 가운데 체칠리아라는 세례명이 많아서 ‘체칠리아 장장장장’, ‘수산나네 체칠리아’, ‘도정 체칠리아’, ‘로마 체칠리아’ 등등으로 구분해서 부른다). 수유역에서 만나 미루가 매일같이 자랑하는 예의 그 빙수를 찾아서 노원 롯데 백화점까지 갔었지만 못 찾아내고 그냥 아이스크림만 사먹으면서 주변 얘기만 실컷 하다가 매장을 닫을 시간에 즈음에서 몇 가지 식품만 사들고 돌아왔다.



오늘따라 일찍 돌아온 엽이가 생선말이로 저녁을 먹으면서 하는 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노라면 몸 안으로부터 희열이 솟아요.” 어서 좋은 처자 만나 알콩달콩 색시가 해주는 밥을 먹는 희열을 누려야 할 텐데... 요즘 애 치고는 아직도 여친이 나타난 기미가 안 보인다.


오늘 낮에 책상에 앉아 있던 보스코가 과학철학자 칼 포퍼를두고 얘기하다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안 되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30대에 아직도 사회주의자라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껄껄 웃었는데 사람은 몇 살까지 사회주의자여야 하는가? 70대에도 사회주의자라는 혐의를 교회인사들에게서 받는 보스코나 첫 회칙 '복음의 기쁨'을 내자마자 '순수한 마르크스주의자‘(= 순빨갱이)라는 욕을 얻어먹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연  어디가 문제일까? 교황은 ”나더러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말은 욕이 아니고 칭찬이에요. 내 주변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많은데 다들 선량한 사람들이거든요.“ 라고 응수하였지만 말이다.


문주교님의 첫미사가 세월호 가족과 아픔을 나누는 자리였다니... (퍼온 사진)


이 사람들 속에도 가톨릭신자들이 끼어 있다는 소문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퍼온 사진)



이번 수원교구에 보좌주교로 새로 서품 받은 문희종 주교님이 주교 서품(9월 10일) 후 드린 첫 미사를 어제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집전했다는 소식이 떴다. 그리스도의 ‘데뷔 설교’가 자기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있었고 뒤적뒤적 이사야서를 찾더니만 “주님의 영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대목을 읽으신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앞으로 이 젊은 주교님이 어느 길을 걸어갈지, 누구를 편들어 살지 한 눈에 보인다.


문주교님의 설교는 “세월호 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곳이 있다··· 신앙인은 진실 위해 노력해야 한다”였다.(관련기사보기: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1208) 보스코 말처럼, “사람은 진실을 알면 사랑한다.”는 그리스인들의 철학에 “사람이 사랑하면 진실을 알게 된다.”는 명제를 내세웠다는 아우구스티누스! 거기에 한 마디 보태서 “사람이 누구와 함께 서 있느냐에 따라서 진실을 알게 된다.”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자답게 인간미있는 심장을 가진 주교님이 한국교회에 한 분 더 나왔다는 소식이 반갑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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