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3일 수요일, 하루 종일 비
“여보, 축대 위 도깨비방망이랑 쑥, 그리고 넝쿨잡초들 좀 걷어냅시다. 장미도 연산홍도 심지어 소나무까지 질식사하겠더라구요.”라는 말에 ‘성나중씨’의 대답은 역시나 “좀 있으면 겨울인데 그냥 놓아두지 그래? 어차피 얼어 죽을 건데...” 그러나 마당 화단에 설 때마다 호자덩쿨, 하늘타리, 새콩, 꼭두서니, 큰조롱꽃, 거기다 나팔꽃까지(“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라는 동요를 만들어낸 사람은 도대체 시골 살이를 해보기나 했을까?) 온통 세도를 부리는 바람에 잠자코 있을 수가 없다.
특히나 장미나 탱자나무를 감아 오르는 넝쿨들을 말리는 일이 제일 고역이다. 가시나무를 다루는 가죽장갑을 끼고 장미가지를 붙잡고서 토막낸 넝쿨은 가히 철사줄 같아서 장갑 낀 손마저 긁힐대로 긁혀 누가 내 손목을 본다면 동물원 사자한테 밥 주다 물린 줄 알 게다.
텃밭에 물주라는 부탁을 여러 날 전에 했건만 보스코가 텃밭으로 내려간 게 드디어 오늘 아침이다. “오늘 비 온다고 했는데?” “아냐, 흐리긴 하지만 안 올지도 몰라.” ‘성나중’씨가 맘먹고 내려가서 텃밭에 물을 주고나자 하늘 조루도 한두 방울 물을 흘리더니 지금 이 한 밤중까지, 무려 10시간 넘게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있다. 집안 살림에 관한 한, 보스코를 보면 언제나 웃음이 나오는 까닭은 뭘 하더라도 어김없이 뒷북을 친다는 것이다. 원, 그러고도 약도 안 오르는지...
나도 새벽부터 낫과 전지가위를 들고 축대위로 나섰다. 물 주는 보스코더러 “여보, 내가 베어낸 이 풀 좀 밑에서 긁어내려요.” 했더니만 마누라 극성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그도 낫을 들고 풀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아침도 거르고 장장 세 시간의 긴 공정 끝에 휴천재 축대가 일시 훤해졌다.
오후에 소담정에 잠시 들렀더니만 도미니카1의 우리 남편 평. “대사님은 정말 희안하셔요. 최고의 지성을 갖춘 예리한 두뇌를 가지셨나하면, 실생활에 관한 한 초딩들도 알만한 것마저 전혀 모르시더라구요, 정말 이해 안 되는 ‘비생활인’이시라구요. 사모님이 입안의 혀처럼 해드리다 보니 저렇게 무능한 남편을 만드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워낙 할 줄을 모르는 분이어서 사모님이 다 해 드리는 것 같기도 하구....”
'비둘기아저씨'의 아침식사
그니의 부부평은 더 이어진다. “내 보기에 두 분 다 개성이 그렇게나 강해 늘 팽팽한 것 같은데도 그렇게나 잘 사시는 게 참 묘해요.” 이번 여름의 여행에 일시 합류한 문선생 부부도 우리 둘을 “두 극이 팽팽하게 마주 돌아가는 행성” 같다는 평을 했었다. 여행 중에는 보스코가 자기도 개성이 있다는 표를 자주 드러내서 그 양극성을 새삼 경험했지만, 지리산으로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순한 양으로 돌아가고 말아서 나도 그를 연구 중이다, 결혼 40년이 지나고서 말이다.
‘손총각’(지금은 ‘다온이아빠’)이 추석빔과 공지영씨의 책을 보내왔고, 남원의 요한 선생이 우리 배농사가 망했다는 소문에 배를 한 상자 보내주셨다. 명절마다 이렇게 챙겨주는 분들이 있어 우리 집 한가위는 더욱 푸짐하기만 하다. 남원에서 부쳐온 배는 내일도 배달이 어려울 것 같다는 우체국의 탄식에 저녁나절에 내가 아예 우체국엘 가서 수령해 왔다.
오늘부터 효소단식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에서 너무 잘 먹어 몸에 맞는 옷이 없고, 이웃들이 준 효소도 많고, 내일부터 사람들을 거듭 만나 잘 먹을 일이 줄지은 데다 추석까지 끼어 있으니 걱정이 앞섰다. “중년 여자 한 번 살 붙기 시작하면 데굴데굴 구르는 공”이라는 말 땜에 7일 절식에 7일 보식을 마음먹었으니 보름 후 나를 몰라보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게다.
보스코에게 함께 단식하쟀더니 즉각 “너나 잘 하세요!”란다. 남자라 그럴까? 하지만 도정으로 배달 온 단호박을 가지러 갔다가 바람만 불면 날아갈 듯한 친구를 보고서는, “당신 배 좀 봐요, 배 좀 봐!”라던 구박에서 “실생활이 제아무리 무능력하고 '비둘기아저씨'(미루가 붙여드린 별명)처럼 배가 나와도 부디 건강만 하셔요.”로 내 구호가 잠정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