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대한성공회에겐 여러모로 뜻 깊은 해다. 먼저 영국성공회 존 코프 신부가 한국 선교를 시작한지 올해로 꼭 125주년이다. 이어 최초 한인사제인 고 김희준 마가 신부 서품 100주년, 첫 한인주교인 고 이천환 바우로 주교 서품 50주년을 맞는다. 게다가 국세청 남대문 별관 철거로 서울 정동 주교좌성당이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는 성공회에겐 감사함으로 기념할 주제들이 많은 해인 셈이다.
이에 성공회는 10월3일(토) 오전 서울 정동 주교좌성당에서 선교 125주년 감사성찬례(이하 성찬례)를 봉헌했다. 성찬례엔 전국 각 교구의 사제 및 신도를 비롯해 영국 성공회 도널드 알리스터 피터보로 교구 주교, 암브로시우스 한국정교회 주교,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한용길 CBS 사장 등 종교, 사회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성찬례는 고 김희준 마가 신부 흉상 제막식으로부터 시작됐다. 고 김 신부의 후손인 김진세 신부는 인사말을 통해 “고 김 신부의 후손이지만 얼굴 뵌 일도 없고 아는 것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분이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했고, 교회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기까지 사랑했던 사제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제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예배를 섬기고 성도 하나하나를 섬기는 참된 목자의 흉내를 내면서 살고자 한다”는 뜻을 전했다.
흉상 제막식에 이어 성찬례가 봉헌됐다. 성공회는 선교 125주년의 화두로 ‘화해’를 꺼내 들었다. 선교 125주년 주제도 ‘자연·사람·하느님과의 화해’로 정했다. 성찬례를 집전한 김근상 주교의 설교는 이 같은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김 주교의 설교 가운데 일부다.
“분단, 양극화, 갈등, 대립, 맘몬이 다스리는 절망의 시대 속에서 선교 125주년을 맞이한다. 선교 125주년을 맞아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교명령은 화해다. 이 시대는 빨리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 이는 탐욕을 채우고자 자연과 사람을 희생시키며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주는 준엄한 경고다.
이제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고 자연과 화해하라는 주님의 요청에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화해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먼저 평화통일을 위한 헌신이다. 아무리 장애가 많더라도 통일 디딤돌이 되는 일에는 우리 모두가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된다. (중략) 또한 사회통합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보다 확대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아직도 비통해 하는 유가족, 불안한 삶에 힘들어하는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못한 채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등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헌신하는 화해자의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기도순서에서도 이 같은 메시지는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기도자들은 차례로 창조질서 보존과 사회적 약자, 그리고 통일과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했다.
사제·신도들, 125주년 자축
세계 각국에서 온 사제들은 대한성공회 선교 125주년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영국성공회 피터버로 교구장이며 캔터베리 대주교의 대사자격으로 온 도널드 알리스터 주교는 “영국성공회는 오랜 기간 대한성공회를 위해 기도해왔다. 대한성공회가 건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기쁘기 그지없다”고 칭찬했다.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성공회에서 주교로 선출된 신앨런 뉴욕교구 보좌주교도 “1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이다”라면서 “대한성공회가 여러모로 사회복지에 열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라서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더욱 더 열심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이어 나가기를 기원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대한성공회 사제들과 신도들의 경우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영등포교회에서 시무 중인 한주희 사제는 “125주년 감사성찬례에서 기도했던 제목 그대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나 통일에 대한 기여 등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면 한다”고 했고, 남양주교회의 여정훈 씨는 “이웃들 안에서 성육신 하는 교회, 그리고 125주년을 계기로 세상으로 나가 선교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내비쳤다.
신도들과 사제들은 성찬례 후 주교좌성당 마당에서 식사를 같이하며 친교를 나눴다. 이어 기념공연과 만찬으로 125주년을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