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화쟁시민칼럼] 견(見)과 문(聞)에 대한 생각
  • 편집국
  • 등록 2015-11-24 16:51:11
  • 수정 2015-11-24 16:51:35

기사수정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0년 성철 스님의 조계종 종정 취임 법어는 세간에까지 화제였다. 이 말씀은 각자의 지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또한 초인적인 궤적까지 알려지며 초월적 신비의 경지로 읽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법어의 전문을 다 기억하지 않는다. 


“원각이 보조하니”로 시작된 법어 중에 나는 지금도 다음 구절에 마음이 머문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고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대중은 알겠는가?” 이는 사견과 편견이 사라진 마음으로 세상 삶의 모습을 보고 듣는다면, ‘지금 여기’가 청정하고, 존엄하고, 광명이 가득한 세계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우리의 삶은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이 접촉하는, 그러니까 나와 세계가 만나서 발생하는 지금, 여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한 층 더 깊이 생각해 본다. 수행이라는 것이 사견과 편견이 사라진 마음자리에만 목적을 두어야 할까? 관심과 연민으로 세상 삶에 마음 두고 시선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무심과 관심이 수레의 두 바퀴로 굴러갈 때 마침내 대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금강경에서 ‘그 무엇에도 갇히지 않고 마음을 내는’ 가르침에 부합하는 일이 아닌가?


하여,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느냐가 중요하다. 많은 수행자가 맑고 수려한 산에 살고 있다. 마음을 쉬는 일에는 좋은 환경이겠지만 산문 너머 숱한 고통과 요구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계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자발적인 나아감이 필요하다. 


지난 11월 7일, 공주 태화산 한국문화연수원에서는 뜻 깊은 템플스테이가 열렸다. 장애인 불자들의 모임 ‘보리수 아래’ 회원 10명과 중앙승가대학교 동아리 ‘자비나눔’ 학인 스님 15명이 함께 했다. 학인 스님들이 산책과 신행 등 모든 일정에 손과 발이 되어 함께 했다. 


어느 불자는 스님들 부축 덕분으로 평생 대웅전에서 예불을 올렸다고 울먹였다. 특히 내가 크게 감동한 것은 학인 스님들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장애 불자들과 함께 한방에서 잠을 자청한 것이다. 목욕을 시켜 주고 이불을 깔아 주고 도란도란 말을 나누었다. 


다음 날 차담 시간에 학인 스님들의 소감은 한결 같았다. 한방에서 잠을 같이 자고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변했고 가슴에 큰 울림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소리를 듣는가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달라진다. 보고 듣는 자리가 진리의 도량임을 확신하는 환희의 법석이었다.



법인스님 ㅣ 화쟁문화아카데미 상임운영위원, 참여연대 공동대표



[필진정보]
화쟁시민칼럼은 화쟁문화아카데미(http://goo.gl/1UX8Y9)에 올라옵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