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1일 일요일, 맑음
목포의 아침은 온도계로는 지리산보다 더 높지만 바닷바람과 습기가 가져오는 체감온도는 지리산보다 더 춥다. 어젯밤 들어선 리타네 알뜰 집은 영상 16도! ‘내 칭고’집은 '냉장고.' 난 너무 추워 겉옷을 못 벗겠는데 그닌 “집안이 제법 훈훈하지?” 그럼 항상 영상 22도를 유지하는 우리 집은 열대지방이란 말인가? 너무 추워 잠을 못 자겠다니까 “바깥 온도와 실내 온도의 차이가 안 많으면 감기가 안 걸린다.”는 그니의 변.
닭이 맨발로 다니면, 오리가 멱감으면 리타는 오뉴월인줄 아나보다
여하튼 내 엄살을 못 이기고 리타가 보일러를 올리면서 덥다고 이마를 닦고 바닥의 비닐 장판도 부어오르고 하는 새 우리 둘은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는 얘기를 접고, 싱글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편하게 널널하게 따숩게 잠을 청했었다. 보스코도 살레시오 수녀원의 경건하고 널따란 사제관에서 자정이 되도록 아우구스티누스 교정쇄를 읽었을 게다.
목포에서 제일 크다는 옥암동 성당 8시 30분 주일미사엘 갔다. 보좌 정비오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는데 나도 파스칼 형부처럼 ‘주일미사 성당순례’하는 심정이 되니 여간 신선하지 않다! 얼굴부터 선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강론을 하면서 오늘이 해외원조주일이라면서 세상의 가난한 이들이 어떻게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연명을 하는지 조목조목 일러 신앙인들의 양심을 일깨운다. 음성과 표정에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수치에도 설득력이 있다.
“유럽국가들이 일으키거나 배후에서 조종하는 전쟁으로 고향과 조국을 떠난 ‘전쟁난민’들이 6000만명! 전세계 인구 8억이 만성적 기아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비극(하루에평균 10만명)! 질병과 기아로 죽는 영유아가 하루에 3만명! 곡물가격을 유지하려고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식량 3분의 1일 태워버리거나 바다에다 쏟아버리는 미국 곡물상들! 하루에 2.5달러로 연명하는 사람이 전인류의 절반이 넘는 35억명!” 이 사람들이 전부 우리 이웃이다. 그들에게 하고 안 하고 에 따라 하느님의 심판이 우리 위에 떨어지는!
“전기가 부족하면 아껴 써라는 교황님의 호소에도 우리는 발전소, 더구나 핵발전소를 지을 생각만 한다. 그 일로 생기는 이상기후로 가난한 국민들이 얼어 죽거나 홍수로 죽고 있는데... 우리의 탐욕이 전 세계 물을 오염시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식수와 음식과 미래를 빼앗고 있는데... 입을 옷이 옷장에 가득한데도 자꾸만 새 옷을 사들이는 사치스런 돈으로는 살가죽 옷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우리 하룻밤 술값이 빈민국가 가정의 한 달 치 일년 치 생활비가 된다! 우리 애들은 학원으로 전전하는데, 어린 나이에 코발트 광산에서 일하느라 몸이 산 채로 썩어가며 노동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말씀에 찔려 헌금행렬에 들어서면서 어젯밤에 리타랑 봐 두었던 예쁜 옷을 아침에 가서 사기로 한 내 욕심은 접어야 했다, 맨살각죽 패션 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서....
미사 후 인사를 나누며 보니까 그 신부님은 빵고 신부의 2년 후배란다. 더구나 주임 이영헌 신부님을 리타가 입에 침 마르게 칭찬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 본당 교우들은 참 복도 많다. 어떤 성당은 주임신부의 갑질로 교우들이 ‘주일미사 성당순례’를 떠나야 하고, 어떤 성당은 평일미사에도 주일만큼 교우들이 성당에 들어차서 신부님의 강론에 귀를 기울이고...
매월동 수녀원에서 잠을 잔 보스코는 아침에 준이서방님이 몰고 온 트럭을 타고 장성 선산에 가서 우리 집안의 납골당을 둘러보고 내려왔고, 나는 그 동안 목포를 떠나 리타랑 장성 삼계 사창으로 올라가서 보스코 형제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나이 들면 하나같이 자기와 피붙이들이 묻힐 묘자리를 챙기는 걸 보면 남자들의 심리는 참 이상하다. 나는 화장해서 휴천재 나무들 밑에 뿌려져 훨훨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싶은데... 캄캄한 땅속에, 석실에 갇혀 있는 건 비록 보스코 유골 곁이라도 참 싫은데...
오늘이 성요한보스코 성인 대축일이어서 아침부터 축하에 축하를 거듭거듭 받고 흐뭇한 보스코! 수녀원의 아침미사에 이어 아침식당에서 축하박수와 살레시오 수녀님들의 노래와 축하 케이크에 선물보따리!
더구나 점심 후 장성을 떠나 담양으로 가서 두 달 전 이사간 ‘성삼의 딸들’에게 들렀더니 성당에서 모금 운동을 하고 막 들어오는 가난한 수녀님들에게서 차대접과 축하선물, 수녀님들의 합창으로 다시 축하를 받은 보스코!
김희중 대주교님, 파스칼 형부, 김상옥 수녀님, 최엘리사벳 수녀님, 아들들의 축하전화! 페친들이나 카친들로부터의 축하인사까지 세면 오늘은 그의 평생 아마도 가장 화려한 영명축일이었을 게다. (그의 영명축일 선물로 나는 보쉬 전동드릴을 사주었다. 주부 생일에 냉장고나 세탁기 선물받는 사람의 심경이리라. 반가울지 난감할지...)
20년 만에 휴천재를 다시 찾아온 리타랑 얘기를 나누는 지금 지리산의 별자리도 한참 기울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