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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와 사제, 추락할 때만 뉴스감이 되는...”
  • 전순란
  • 등록 2016-02-15 1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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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4일 일요일, 싸락눈


새벽녘 창 두드리는 소리에 어제의 가랑빈가 커튼을 열고 내다보니 사락눈이다. 잠시 창 앞에 서 있다 획 몸을 돌려 눈보라가 되어 달려가 버린다. 사순절 첫 주일이어서 어디로 미사를 갈까 궁리한다. 공소 신자들은 새로 온 주임신부와 상견례도 할 겸 본당으로 나가기로 정했나보다. 공소와 교우들에게 그토록 상처를 준 신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떠나고 후임이 왔다지만 마음 정리가 덜 된 사람은 교황님의 권유가 떠오를 게다.


“신부 보기 싫어 성당가지 않는다는 말씀이 적어도 우리 가톨릭신자들에게서는 안 나오기를 기도드립니다. 정 보기 싫어서 참을 수 없는 신부가 있다면 옆본당이라도 가셨으면 합니다.” 오랜 사목 경험을 한 성직자만 이런 말을 할 여유가 있다. 


“비행기와 사제, 추락할 때만 뉴스감이 되는 존재!”라는 말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는 말씀이다. 요즘 "사제단 신부 버스안 여신도 성추행"이라며 매춘언론이 신나게 대서특필하는 사건을 떠올린다. "버스 안에서 사제가 여신도를 어디까지 성추행할 수 있을까?" "버스 안에서 졸립다며 사제의 무릎을 베고 누운 23세의 여자는 누굴까?" "왜 1년 지나서 검사가 기소를 했을까? 그 사제가 세월호 1주년 미사에 나갔다는 사실만으로 '정의구현사제단' 전부를 성추행범으로 몰아가는 매춘언론의 작태라니..." 평범한 사람들도 이런저런 의문을 품게 만드는 보도다. 




아무래도 마음이 절로 가는 곳(“마음은 짚시”), 산청 성심원 미사에 가서 혼자 남아있을 이사야씨에게 점심대접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유림, 생초 쪽으로 차를 몰았다. 유신부님과 오신부님이 합동으로 미사를 드리고, ‘깜짝’으로 ‘귀요미’ 미루가 와 있었다!


나환우들이 경건히 (손가락 없는)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대부분 감기지 않는다) 경건하게 기도하는 얼굴(이목구비가 구분되지 않는)에서 나도 저절로 두 손을 합장하게 된다. 사순절과 십자가와 잿더미의 의미를 체감하며 “이 성당에 오길 참 잘했다!” 성심원은 금호강가여서 강바람을 송두리째 받아 안는 언덕이다. 이곳에 살아온 분들이 일평생 세상에서 받아온 냉대의 칼바람처럼 이 언덕에는 늘 강바람이 분다. 어젯밤에도 베르나르도라는 환우이자 봉사자가 돌아가셨다는 유신부님의 슬픔에 찬 공지...




성심원 소식지 지난달 치에 할머니 한 분이 유신부님께 음식을 떠먹이는 사진이 실려 내 가슴을 한참이나 먹먹하게 했다. 손가락은커녕 아예 손이 없어 손목에다 숟가락을 천으로 묶고 그 숟가락으로 떠서 드리는 음식을 반가이 받아 잡수시는 벽안의 사제... 미사 후에도 병자 봉성체를 해 주러 장백의를 입으신 채 “바람에 업혀가는 한 장 낙엽처럼”(이해인) 강풍에 수단과 장백의를 날리면서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시던 저 노인은 이 성심원과 환우들을 싸안는 하느님의 바람막이에 틀림없다.



사순절이어서 단식 중인 원장신부님께 차 대접을 받고 환담하다 오늘 김유철 시인이 부인과 함께 미루네를 방문하러 온다는 소식에 미루네 매장으로 갔다. '팽주' 미루의 차 대접을 받고 나가서 점심을 함께 먹고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 환담을 나누다보니 3시가 훌쩍 넘었다.


이 지역에서 시국 집회가 있을 적마다 우리가 만나 절규시를 듣는 ‘민중시인’의 아내는 커더란 연잎처럼 우국지사 남편의 활동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조손한 여인으로 우리가 주고받는 대담에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용서하시라

그대 곁에 사는 낮도깨비를... (김유철, “연 잎 닮은 당신에게”)


어제 경남민예총에서 “경남민족예술인상”을 받은 김시인은 아내에게 바치는 이 짧은 시처럼 아내를 ‘베이스캠프’로 자랑하면서 여러 편의 자작시를 우리에게 낭송해 주고 음악가들이 그분의 시를 작곡한 노래를 MP3로 들려주었다. “보스코는 그 베이스캠프를 늘 옆구리에다 끼고 다니는데...”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와병으로 문밖을 못나오는 옥규 어르신에게 문병을 하고, 신태 어르신을 보러 들렀더니 부산에 치료받으러 갔다 교통사고를 당해 그곳에 입원중이라는 현대아줌마 말씀. 두 부인 다 남편들의 오랜 병구완에 담담한 얼굴이어서 누렇게 시든 연잎도 꺼져가는 생명들을 소중한 그늘로 감싸 안아주는 넉넉한 품임을 절감하며 집으로 올라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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