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손꼽히는 해미읍성에 세워진 대통령 장승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교황 방문 이후 국내외적인 관심이 높아져 관광객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통령 얼굴을 본떠서 만든 장승들에 새겨진 국정표어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문제의 장승들은 충남 서산시 해미읍성 내 호서좌영 뒤편 청허정(정자) 주변에 세워진 역대 대통령의 얼굴을 본뜬 ‘대통령 장승’ 10기이다. 높이 3m 가량의 붉은 장승들은 초대 이승만부터 이명박까지 역대 대통령 10명의 얼굴이 조각돼있다. 또한 장승의 몸통에는 각 장승이 나타내는 대통령의 국정표어 문구가 적혀있다.
해미읍성 대통령 장승 안내판에는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수령 100~200년 이상의 소나무가 피해를 입었으며, 그 과정에서 소나무를 의미 있게 활용하고자 장승 동산을 계획하게 됐다”며 “그 당시 국정 지표를 장승에 새겨 역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일부 장승에 삽입된 국정표어에서 일부 대통령 미화와 역사 왜곡의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사사오입 개헌과 3·15부정선거를 벌여 4·19 혁명의 원인이 된 이승만 대통령 장승에 적힌 ‘민주주의’라는 문구와 재임 기간에 군부독재라는 비판을 받은 전두환 대통령 장승에 적힌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문구가 크게 논란이 됐다.
해미읍성을 찾은 관광객은 “해미 성지는 교황님이 방문하신 천주교 순교성지이고 동시에 일반 시민들도 찾는 역사 관광지인데, 역사적 사실과도 다른 대통령 장승을 세워놓고 역사자료로 사용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며 “교황님이 방문한 다음부터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문화답사가 크게 늘었는데, 논란이 될 만한 표기는 역사적인 평가를 철저히 고려해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광객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전두환 장승을 보니 말이 안 나온다. 천주교 성지에 장승을 만들도록 허락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며 한탄했다.
지역주민들도 대통령 장승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다. ‘신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해미읍성의 한 지역주민은 “읍성을 둘러보는 관광객 중 설치된 대통령 장승을 보고 심지어 침까지 뱉으며 욕설을 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며 “서산시가 대책을 마련해 관광객들의 불편한 심기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부터 병마절도사의 치소를 둔 곳으로 군사를 거느리는 무관 영장이 현감을 겸하여 지역 통치를 하던 곳이다. 1790년대부터 1880년대에 이르는 100년간 해미읍성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대량 처형한 장소다. 대박해로 기록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선이 천주교 탄압을 공식화 할 때는 물론, 비공식적인 박해에서도 해미읍성은 지속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들여 죽인 곳이다.
병인박해만 해도 기록된 천주교 신자 처형자 수가 1천여 명에 달하는 해미읍성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면서 천주교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 교황은 방문 당시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했고, 6,000여 명의 청년들이 해미읍성에서 미사를 드렸다. 이후 해미읍성은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국내외 관광객들도 찾는 관광지가 됐다. 천주교 측은 읍성 안에 교황 사진으로 만든 입간판과 교황 동상 등을 세워 교황 방한 당시의 감동을 되새기고자 노력했다.
서산시 문화관광과는 국정표어와 관련한 문제가 커지자 지난해 5월 장승에 표기된 문구를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근 ‘신아일보’와의 통화에서는 장승의 제작 당시에는 일각에서 잘했다는 의견도 있었다며 관광객들의 시각차이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에 답변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