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국가폭력의 무책임으로 학살을 당한 300여 명의 세월호 희생자들과 여전히 사회 안에서 차별로 희생당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기억하며 연대하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저희에게 무관심의 죄를 뉘우치고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과 장애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을 주시어 자비의 희년을 살아가게 하소서. 국가폭력과 자본폭력 그리고 문화폭력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저항의 힘을 내려주소서.
제1처.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가권력에 책임을 요구하고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와 부당한 부양의무제에 대해 이야기함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언론이 무책임하게 유가족들을 보상이나 바라는 사람들로 매도했습니다. 인터넷에선 희생자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글이 올라옵니다. 국가권력은 시늉만 했을 뿐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고 300여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잊으려고 덮으려 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고 자본은 이윤이 되지 않는다며 회피하고 있습니다. 2014년 유가족들이 노란 리본을 단 십자가를 안고 길을 나섰습니다.
예수님, 장애인들이 부양의무제로 독립생활의 꿈을 이루는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손상을 드러낸 의료적 낙인과 행정적 편의로 판정되는 장애등급제로 많은 장애인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제2처. 세월호 유가족들이 무관심과 배제의 무게에 고통 받음을 묵상합시다. 장애인들이 차별의 고통 받음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는 유가족들 앞을 국가권력이 가로막았습니다. 대중들은 동정을 하다가 어느새 냉소로 돌아섰습니다. 무관심으로 따돌리고 급기야 조롱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대중은 장애인들에게 동정을 느낍니다. 장애인들에게 극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장애인들은 비하와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대중은 장애인들에게 극복의 벽을 쌓고 넘어보라고 합니다. 장애인들은 극복과 동정이라는 벽, 차별과 혐오 속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제 3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과 장애인들이 차별과 무관심, 혐오의 무게에 넘어짐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앞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선 인간의 윤리를 저버린 조롱이 있었고 농성장을 불법으로 지정해 철거당할 위기를 겼기도 했습니다. 일부 친정부 파시스트 언론에 의해 보상을 바란다는 오해를 받게 되고 이제 그만하라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무관심의 무거움에 유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차별의 폭력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거리에선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없는 공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공간보다 시설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과 따돌림, 조롱, 차별입니다.
제4처. 세월호 유가족들이 교황님 만남을 묵상하고 주교들에게 대화를 거부당하고 쫓겨난 장애인들의 고통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희생자 유가족들이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걸었습니다. 2014년 8월 15일 대전 성모승천미사에서 유가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음날인 8월 16일 서울 광화문 순교자 시복미사 전 단식농성 중이던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도 교황님께 위로를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적극 다가가 위로했지만 이 땅의 공직자라와 주교라는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시기 전 장애인들은 주교들과 대화를 요구했습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거대장애인사업시설에 교황님이 방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는 장애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교황님의 뜻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교황대사와 이 땅의 주교들도 장애인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제 5처. 세월호 참사와 장애인 차별이 자기 일이라고 느낀 사람들이 연대함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길 가던 키레네 사람 시몬이 뜻밖에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된 것처럼, 세월호 참사가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전국 각지에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가 있었고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도 열렸습니다. 한국 수도회들은 세월호 미사를 1년 더 드리기로 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장애인들도 광화문 앞에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치며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롭게 저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문제가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제6처. 세월호 유가족들과 장애인들이 시민들에게 격려와 연대로 위로받음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세월호 유가족들이 비하와 조롱, 비난과 오해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십자가를 안고 길을 걷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집회와 미사를 통해서 많은 위로를 주었습니다. 지금은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힘들고 지쳐서 외면하고 있는 저희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유가족들을 외면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 많은 시민들이 장애인 차별도 자신들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연대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사회 안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차별로 눈물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길이 막힌다며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을 봅니다. 언어장애를 이유로, 지체장애를 이유로, 지적장애를 이유로, 뇌병변장애를 이유로, 정신장애를 이유로, 피부장애를 이유로 멸시와 소외 그리고 따돌린 저희와 사회의 잘못이 큽니다. 불편해 보이는 신체와 정신적인 이유로 '당신은 안 된다'고 차별한 저희를 용서하소서.
제 7처. 국가폭력이 세월호 진상규명 그리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의 목소리에 폭력으로 응답함을 묵상합시다.
예수님, 많은 시민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 나라 대통령이란 사람에게 진상규명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국가폭력과 대통령이란 사람은 폭력으로 응답했습니다. 광화문 근처에 경찰버스와 컨테이너를 동원해 시민들과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막았습니다. 시위를 하던 시민들을 명예훼손과 폭력집회를 이유로 잡아다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유가족들과 연대하던 인권운동가들을 감옥에 가두었고 유가족들 보호라는 명분으로 미행과 도청을 불법적으로 했습니다.
예수님, 장애인들의 절규에도 국가는 폭력으로 응답했습니다. 보호를 명분으로 경찰병력을 요청하고 동원해서 장애인들과의 대화를 막았습니다. 심지어 강제로 밖으로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해 대화를 거부당한 유가족과 장애인들을 위로해 주세요.